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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옥 Mar 19. 2021

모녀 여행(4)

여행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반둥(Bandung)은 자카르타에서 150km 떨어진 자바섬의 도시다. 높은 화산 분지에 있어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보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거리도 적당하고, 무더위를 벗어날 수도 있어 옥섭 씨와의 여행지로 반둥을 택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갔다. 옥섭 씨와 여행도 처음이지만, 인도네시아 기차여행도 처음이라 설렜다.


#한식당

관광지로 유명한 곳인 만큼 반둥에서 가고 싶은 곳은 많았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내가 열일 제쳐 두고 할 일은 한식당 찾기였다. 옥섭 씨는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화장품 냄새가 난다'며 잘 넘기지 못했다. 미리 반둥에서 유명하다는 한식당 주소를 알아왔지만, 인도네시아에 정확한 정보란 없다! 지도 어플을 여러 번 새로고침 하고 길을 물어물어 간신히 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리뷰에 적힌 대로 마음이 탁 트이는 넓은 가든형 공간이었다. 이미 지친 데다 허기도 져서 자리에 앉자마자 몇 가지 푸짐하게 주문을 했다. 


"한국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지? 대단하지 않니?"


자카르타에 한국식당이 즐비해서 그랬나, 나는 한 번도 감탄하지 않았던 지점이었다. 옥섭 씨의 새로운 시각에 오히려 감탄했다. 곧 식당 사장님이 음식이 입에 맞느냐며 우리 테이블로 왔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두 아주머니의 폭풍 수다! 옥섭 씨는 머나먼 타향에서 어찌 이런 음식 맛을 낼 수 있는지 칭찬을 했다. "고맙습니다", 한 마디로 끝날 줄 알았던 사장님의 대답은 인도네시아 이주 역사로 연결됐다. 어떻게 이 나라에 왔으며, 남편이 어찌했고, 어떻게 살았고, 여기는 어떻게 일궜다 등.


"어머, 대단하세요 정말."


옥섭 씨의 맞장구에 대화는 또 끝없이 이어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두 분은 이미 알고 지낸 친구처럼 즐겁게 이야기했다. '갈 곳이 많은데...' 나는 속이 좀 탔지만, 옥섭 씨가 편한 모습이 보기 좋아 조용히 기다렸다. 밥을 다 먹고 수다 시간만 족히 한 시간을 넘겼다!


#깜풍나가

식당을 나와 순다족 전통가옥 지역인 깜풍나가(Kampung Naga)라는 곳에 갔다. 주민들은 대대손손 이어온 방식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이어간다. 논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우리 옛집처럼 나무, 흙과 같은 자연 재료로 지은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마을 자체로 장관이었다. 우리는 연실 "와아 여기 정말 예쁘다" 감탄을 하며 천천히 동네 구경을 했다. 


잠시 후 그곳 토박이라는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자기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여행의 잔뼈가 굵은 나는 관광객의 돈을 노린 수법이 아닐까 움찔했다. 옥섭 씨는 "한 번 가보자"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그분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본인의 집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저씨의 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집안은 밖보다 깜깜했고, 천장이 꽤 낮았다. 가구라고는 없는 정말 단출한 살림이었다. 아저씨는 친절하게 집의 구조며 마을 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나는 귀찮기도 하고, 순다족 인도네시아어를 잘 못 알아듣기도 해서 통역을 잘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옥섭 씨는 그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이 뭐라 하면 옥섭 씨는 한국어와 손짓으로 대답을 하고, 그들은 또 거기에 답을 했다. 


곧 아내 분이 우리나라 떡과 비슷한 간식을 내주었다. 한입 베어 먹고 나는 영 맛이 없어 뒤로 조용히 뱉어냈는데, 옥섭 씨는 그걸 다 먹고 또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그 집에서 한참 머물다 나왔다. 나오면서 옥섭 씨는 가족들과 일일이 두 손으로 악수를 하며 연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고, 여러 번 그 집을 돌아봤다. 


#나

예전부터 여행은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정의 내렸었다.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여행을 했던가, 옥섭 씨의 태도를 보고 많이 반성했다. 들어주고, 품어주어야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 그건 마음이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숱한 시간 동안 나는 머리로만 생각하는 여행을 했다. 마음으로 이해하는 법을 옥섭 씨에게 배웠다. 이것은 그녀의 첫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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