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섭 씨, 나이스 샷"
"저 구석에 있는 건 골프 채니? 너 골프도 쳐?"
방 한편에 놓인 골프세트를 보고 옥섭 씨는 눈을 반짝거렸다. 골프란 여유 있는 사람이나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 바쁜 우리와는 별개의 세계 아닌가. 옥섭 씨에게 골프란 그토록 먼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골프가 비즈니스의 필수야. 사장님이 연습 열심히 해야 한다고 아예 세트로 사주셨어. 높은 분들 따라서 필드에 몇 번 가봤는데, 잔디밭이 쫙 펼쳐진 게 진짜 좋긴 좋더라. 엄마도 한 번 쳐볼래?"
"할 줄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하니?"
"그냥 저 봉으로 공 때리면 되는 거야. 별거 없어. 연습장 갑시다".
끝까지 내키지 않아 할 줄 알았는데, 옥섭 씨는 금세 매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훤히 보였다. 당장 운전기사를 불러, 집에서 가까운 골프연습장으로 가자고 부탁했다. 그런데, 차가 아파트를 빠져나가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꽉 막혔다. 한 번 막히면 풀릴 길 막막한 것이 자카르타 공포의 교통체증이다. 평소에 10분, 20분 걸리던 거리인데, 그날은 한 시간이 넘도록 도로에 갇혔다. 괜히 죄스러웠다.
"오늘따라 엄청 막히네. 그냥 갈까?"
"괜찮아. 이것도 다 경험이고 여행이지. 어차피 돌아갈 길도 막혔잖니?"
옥섭 씨가 이렇게 골프에 진심인 줄은 몰랐다. 불타는 의지에 내가 더 의지가 되었다. 무려 두 시간이 걸려 간신히 연습장에 도착했다.
"엄마, 골프는 팔을 휘두르는 게 아니야. 스윙의 핵심은 이렇게 샤악, 샤악, 허리를 돌리는 데에 있는 거라고."
나도 초보이지만, 명색이 필드에 나가본 사람 아닌가. 새벽마다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출신 코치에게 시간당 삼사만 원짜리 레슨도 받았더랬다. 코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옥섭 씨에게 자랑스럽게 시범을 보였다. 몇 번 내가 치는 모습을 보고 곧 옥섭 씨가 골프채를 잡았다.
"탕~!"
하아, 장쾌하다. 골프공은 청명한 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갔다. 나는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옆 자리 아저씨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옥섭 씨도 함박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 샷도, 그다음 샷도 탕탕 호쾌한 소리를 내며 공이 큰 포물선을 그렸다.
"싸모니임, 나이스 샤앗!"
나는 콧소리를 섞어가며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골프 씬 흉내를 냈다. 옥섭 씨도 신이 나 연신 즐거워했다. 깔깔 웃으며, 탕탕 공치며 우리는 신나게 놀았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옥섭 씨의 '나이샷'은 이어졌다.
"계모임 친구들이 맨날 여기로, 저기로 골프 치러 간다고 그렇게 자랑을 했거든. 내 평생 언제 그런 골프를 쳐보나 했는데, 우리 딸 덕분에 오늘 소원을 풀었다. 아주 재밌었어."
골프놀이를 끝내고 한국식 치킨 집에서 치맥을 하며 옥섭 씨의 진심을 들었다. '우리 엄마가 이런 부러움을 갖고 살았구나. 그래서 오늘 그렇게 좋아했구나' 처음 알았다. 내 소원은 언젠가 옥섭 씨와 단둘이 치맥 데이를 갖는 것이었다. 우리 둘 다 소원 한 가지씩을 풀었다!
집에 오는 길에 옥섭 씨의 골프 치는 사진을 SNS에 올리며 '우리 엄마가 이곳에서 난생처음 골프를 아주 잘 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곧 자카르타 외국인 친구들이 좋아요 하트를 퐁퐁 눌렀다. 자랑스럽게 옥섭 씨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는 이제 월드스타야. 겨우 동네 계모임 아주머니들한테 쫄 것 없어!"
우리는 또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