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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옥 Mar 17. 2021

모녀 여행(2)

그녀가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줄, 몰랐다

생판 낯선 땅, 단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고,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곳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막막한가? 


옥섭 씨의 자카르타 입성일, 불안한 마음에 일찌감치 공항에 나갔다. 그녀가 이민국을 제대로 통과나 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자카르타 공항 내에는 출국 비행기 표를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뒷돈을 주면 모든 게 가능한 나라가 인도네시아다. 나는 나의 소피르(Sopir, 운전기사)에게 돈을 쥐여주면서, 이 돈으로 게이트 가드를 꼬드겨 공항 안으로 들어가서 '미세스 변'을 잘 찾아 모시고 나오라는 특명을 내렸다. 체구로만 보면 가드보다 더 거구인 우리 기사는 엄지 척을 내보이며 기세 등등 공항으로 들어갔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늠름한 소피르와 그의 옆에 찰싹 붙어 나오는 작은 체구의 옥섭 씨가 보였다. 


"와아, 엄마!"

"아이고, 우리 딸, 우리 딸!"


반가운 얼굴, 그리운 품, 우리는 한참 동안 얼싸안았다. 비행은 힘들지 않았는지, 그간의 삶은 어땠는지, 희경 씨는 건강한지 짧은 시간에 많은 대화가 오갔다. 곧 나의 소피르가 몰고 온 차에 올랐다. 


"아까 도장 찍는데 저 양반이 들어와서 네 이름과 내 이름을 딱딱 말하길래 놀랐어. 주위 사람들도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고. 오라니까 따라오긴 했는데 회사 직원이야?"

"내 운전기사야. 변 여사 오시는 데 특별히 모셔오라 내가 애 좀 썼지. 아무나 그렇게 못할 걸?"

"고맙네, 고마워. 그런데 너 전용 운전기사가 있니?"

"자카르타에 사는 외국인은 다 자가용과 운전기사가 있어. 교통도 엉망이고 땅도 커서 안 그러면 살 수 없어. 앞으로 일주일 동안 우리 소피르가 엄마를 잘 모실 거니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자동차도 운전기사도 회사에서 제공한 것이고, 나는 뒷돈 몇만 원 썼을 뿐이지만 어쩐지 으쓱했다. 한국에서는 가져본 적 없는 성공의 한 단면을 떡하니 보여준 느낌이랄까. 이것이 허세의 기쁨이로다. 옥섭 씨는 모든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자카르타 시내로 들어오는 내내 열심히 창 밖을 내다봤다,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거대한 빌딩, 그 사이사이 국수를 파는 작은 노점상, 국수를 먹는 히잡 쓴 여인, 도로 가득한 오토바이 등 그녀의 눈에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나는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했다. 내가 옥섭 씨보다 더 많이 아는 게 생겼구나,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뽀대 나는' 생활상을 '쇼잉'했다. 당시 우리 사무실은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빌딩에 있었는데, 오전 근무를 마치고 소피르를 시켜 옥섭 씨를 모셔왔다. 미리 부탁한 대로 직원들이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했다. 현지인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일제히 인사를 하니 그녀도 "안녕하세요", 기쁜 인사로 답했다. 그리곤 곧 자카르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통창으로 둘러싸인 내 방도 자랑스레 보였다. 창으로 시내를 바라보며 옥섭 씨가 말했다. "우와 대단하구나, 우리 딸".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의기양양해진 나는 옥섭 씨와 함께 근처 레스토랑에 갔다. 양송이 소스를 곁들인 미듐-레어 스테이크를 시켰다. 한식만 먹어 온 옥섭 씨가 느끼해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그녀는 핏기 서린 고기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거의 매주 가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그날처럼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적은 없었다. 신이 났다. 밥을 먹고는 동남아 관광의 필수 코스인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어깨가 아팠는데, 그게 많이 풀렸다. 좋다, 얘". 그 말에 또 기뻤다.


"우리 딸이 이렇게 인도네시아 말도 잘하고 잘 살고 있는 줄 몰랐네. 대단해."

"엄마 딸이니까 그렇지."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서로 칭찬하는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말 그대로 즐거운 하루였다.


잠자리에 들어 가만가만 오늘을 돌아봤다. 문득 왜 서울에서 그 흔한 스테이크 한 번 같이 먹지 않았나, 나는 왜 엄마 어깨를 한 번도 주물러 준 적이 없던가,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나 엄청 잘 살고 있어'라고 옥섭 씨에게 인정받고자 했지만, 내가 얼마나 모진 딸이었나 스스로 인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그 밤, 나는 옥섭 씨에게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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