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엄마, 나 사는 거 안 보고 싶어? 여기 한 번 와,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2년 정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생활했다. 타향살이 1년 고비를 넘겼을 때, 문득 옥섭 씨를 초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최초, 최고의 여행을 선물해 주리라.
옥섭 씨와 여러 번 조율해 7일의 여행 기간을 잡았다. 좀처럼 가게 일을 쉬어본 적 없는 옥섭 씨에게 일주일의 휴가는 일대 사건이었다. 간신히 날짜를 정하자마자 나는 서울~자카르타 구간 아시아나 비행기를 예약했다. 인도네시아 국적기인 가루다항공이 더 저렴하지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옥섭 씨는 무조건 우리나라 항공기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불안했다. 장장 7~8시간의 비행..., 비행기도 처음 타보는 그녀가 이 좁은 좌석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아, 비즈니스석을 끊어주지 못하는 내 마음이 쓰렸다.
걱정은 하나둘 늘어갔다. 옥섭 씨 혼자서 복잡한 출국 절차를 어떻게 할 것이며 더 복잡한 인도네시아 입국은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 끝에 나는 장문의 매뉴얼을 작성했다. 나는 옥섭 씨 몸에 빙의됐다고 생각하며 세상 물정 모르는 첫 여행자의 동선을 몇 번이고 상상했다. 짐 싸는 법, 비행기 안에 절대 가지고 오면 안 되는 것, 입국 카드에 적어야 할 것, 입국카드 작성은 영어로 해야 하니까 꼭 승무원에게 부탁할 것, 자카르타에 도착한 뒤 '이미그레이션'에서 묻는 말에 그냥 씽긋 웃을 것, 이곳의 날씨가 어떠하니 어떤 옷을 가져올 것, 쓸데없이 김치나 멸치 싸오지 말 것 등, 이 정도면 가히 <Go! Jakarta> 류의 여행 가이드북을 방불케 하는 스케일이었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막냇동생을 통해 옥섭 씨에게 매뉴얼을 보내고, 통화로 또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그래도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나의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무엇을 할지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자카르타 외 다른 도시 한 두 곳은 여행을 가야 하니, 그곳의 차편과 호텔, 관광할 곳을 일일이 알아보고 예약했다. 나 혼자 여행하면 결코 하지 않을 철저한 준비였다. 회사 직원들에게도 옥섭 씨의 방문을 알리고 깍듯이 대할 것을 부탁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청소였다. 폭풍 잔소리에 대비해 미리 구석구석 정리를 했다. 여행은 옥섭 씨가 오는 데, 하루하루 내가 더 긴장되고 설레었다.
드디어 비행기 뜨는 날, 나는 거래처와의 미팅 중간에 막냇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 내가 오늘 바빠서 아침에 연락을 못했어. 엄마 비행기 잘 탔지?
동생 : 비행기? 그거 다음 주 아니야?
헉..., 헉...!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나는 대충 미팅을 마무리 짓고 곧바로 컴퓨터로 달려와 재차 비행기표를 확인했다. 동생에게 연락해 바로 욕을 퍼부었다. "너 눈깔이 삐었어? 숫자도 제대로 못 봐?"
그렇게..., 비행기는 날아갔다...!
다행히 비행기 수수료 십 여만 원만 물고 그다음 주 것으로 다시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바빴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이며 기차표며 다 캔슬을 하거나 새로 부킹을 해야 했다. 사장님께 이런 얼토당토 한 상황을 설명하며 업무 스케줄도 다시 조정했다. 피 말리는 하루하루였다.
'시작이 반인데... 이 여행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반 이상 지난 것만 같네'.
'모녀 여행이란 원래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걸까? 괜히 오시라 했나?'
'과연 이번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옥섭 씨는 당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렇게 불안불안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