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예정일 D-30
임신을 해서 배가 막 불러오고 후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정말 겁이 덜컥 났다. 태동은 점점 세지면서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뱃속에 심장이 뛰는 생명이 있다니!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무거워진 몸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 또한 점점 커진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산통의 무서움보다 막연히 이 작은 생명을 멀쩡한 인간으로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짓누른다. 놀아주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훈육은? 아이가 아플 땐? 생활 루틴? 나도 그런 거 없는 거 같은데...? 부모는 아이의 거울? 거울이 좀.. 상했는데? 자꾸 작아만 진다.
배가 막 불러서 혼자 뒤뚱뒤뚱 카페에 가서 푸짐하게 딸기가 얹어진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높이 올라간 오피스텔 건물을 보며 '가벼운 몸으로 저 오피스텔에 자유롭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아'라는 생각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서글퍼졌다. 그럼 나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나? 아기를 가진 것을, 결혼한 것을 후회하나? 결혼과 육아로 어떻게 변할지 모를 내 인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엄마가 되는 설렘을 가린다.
혼자 사는 것도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무심코 한 뒤로 자꾸 남편의 실수들, 부족함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는 버거운데, 파트너가 잘해줘야 하는데 저리도 내가 챙길 것이 많은 사람이라니... 남편을 등 지고 누워서 눈물을 막 쏟아냈다. 나 이대로 괜찮은지, 다 큰 사람과 커갈 사람을 책임지느라 시간을 다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이런 게 내가 원한 삶이었는지. 남편은 남편대로 나를 챙기고 있고,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나는 또 나대로 부족한 것이 있다는 걸 늘 알면서도 이렇게 가정에서의 역할에 부담을 느낄 때면 남편 탓을 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했다.
울면 울수록 아기가 막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보고 그만 울라고 하는 건지, 이제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하는 것인지 아기가 움직일수록 걱정으로 가득 찬 내가 자꾸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눈물이 더 왈칵 쏟아졌다. '나 이제 어떡하지? 바보같이 울기만 하는 내가 움직이는 애를 키워야 한다니' 그렇게 며칠밤 울었다. 우는 나를 달래느라 남편은 진을 다 뺐다. 아기를 나 혼자 키우는 게 아닌데 세상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남편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며칠밤 격한 감정을 다 쏟아내니 우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 이제는 정말 힘줘서 아기를 낳고, 어떻게든 길러내는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남편과 서로 가지고 있는 부담감을 대화로 나누며 육아에 있어 부부가 서로 발맞춰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귀중한 시간이 나를 단단해지게 만든다. 한 달 남은 지금은 눈앞에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하는 두려운 마음을 잠재우고 있다. 출산가방을 싸고, 아기방을 만들고, 운동, 그리고 유튜브로 공부하기! 또 오지 않을 자유로운 시간들을 즐기면서.... 조리원에서 나올 맛있는 밥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