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욕과 과시욕의 애정을 바라보며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건방진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모님들의 극성과 과도한 애정감을 한 번쯤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왜 강남의 엄마들은 매달 수십에서 수백만 원의 사교육비를 아이들에게 쏟아붓는지, 그것이 정서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지. 완벽한 인간상을 바라는 극성의 문화를 무시할 순 없는 것인지. 때론 "우리 아이가 로봇이나 괴물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공감에서 나오는 순수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떤 부모가 될지 함부로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잘 꾸려왔던 삶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으며, 자신의 모든 계획과 취미나 여가도 사라질 수 있다. 나름대로 잘 통제해 왔던 감정마저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한다. 막연히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도 없어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누구를 만나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갈지는 각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그 선택도 개인에게 맞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 이상하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인 걸 알면서도, 왜 우린 이 문제를 그리도 심각하게 자주 세상의 도마에 올려 고민하느냐는 것이다. 국가의 번영? 인류의 영속? 정말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일까. 그 초점이 어디에 있을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나 말하는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면, 보통의 책임도 져야 한다. 우리가 하는 고민의 대부분은 그 범주 안에서 일어난다. 선택과 책임의 괴리 속에서, 그 괴리를 좁히기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서 일어나는 70%의 사건은 순간 순간 나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고, 그 결과를 조금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방법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는 방법 밖에는 없다. 그리고 나머지 30%는 하늘에 맡길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