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대 신경과 전문의의 '조종당하는 인간'을 읽고
삶을 무너뜨리는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왜 고치고 싶은 습관을 반복할까?
강력한 의지로도 이길 수 없는 충동
조절하지 못한 게 아니라, 조작된 것이다.
-김석재, '조종당하는 인간' 中에서
내 삶이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게 거대한 '빅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를 통제하는 독재자)'가 아닐지라도 요즘은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중독 행위들,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되는 습관들. 술과 담배, 과식과 폭식,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미디어 중독까지... 정말로 이런 것들로부터 멀어진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동력을 현실이라고 믿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지헤롭게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어제는 오래간만에 회사에서 회식을 했다. 난 평소에 술을 먹지 않기에(두 달에 한 번 마실까 말까 한다) 어제는 '적당히' 먹어야지 하고 약간의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적당히라는 말이 어디 통할 리가 있나. 예전부터 늘 그랬듯, "한 잔만 마실게"는 없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는 게 중독의 섭리다. 심지어 동료 중에는 종종 통풍 증상이 있어 술을 멀리 해야 함에도 자연스럽게 술을 권하고 받는 모습에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그 순간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책(조종당하는 인간)은 이런 우리의 반복된 습관과 행동들이 모두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최근 들어 아주 유명해진 보상 자극제 '도파민'이나 행복 물질 '세로토닌'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호르몬들이 분비되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몰랐다. 저자인 신경과 전문의 선생님처럼 자세하게 알 순 없지만 읽어보면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될 듯하다.
▲감정을 믹싱하는 본능의 'DJ 편도체' ▲현명하지만 느린 심판관 '전전두엽' ▲보상의 예언자 '도파민' ▲충동을 진정시키는 명상가 '세로토닌' ▲위기 상황에 사이렌을 울리는 경보 요원 '노르에피네프린' ▲포옹의 마법사 관계의 접착제 '옥시토신'
우리를 조종하는 수많은 호르몬들이 있다. 전문의가 아니라서 이 호르몬들을 모두 자세히 파헤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알고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들이 분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지금 뇌 안에서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메타인지와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로 가득 찬 하루의 끝에 갑자기 맥주와 패스트푸드가 엄청나게 당긴다면, 그건 도파민이 나에게 신호를 주고, 편도체가 행동을 하라고 계속 나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인지만 해도 우리의 행동 패턴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는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고 솔직한 마음을 끄집어냈을 때, 우리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호르몬제와 약을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약을 그렇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약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처음부터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그 후에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약을 써보는 게 어떻냐는 말이다.
일기에 생각이나 감정을 기록하는 일. 이건 생각보다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인지가 뇌 안에서 발휘되는 호르몬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면, 그걸 가장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일기를 쓰는 것이다. 하루 속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고 끄집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아마 대부분 단 5분도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업무와 TODO, 미디어 앞에서 우리의 인지력은 무너지고 만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미지의 훈련소인 '정신과 시간의 방'이 다시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우리는 고뇌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호르몬을 이해하고 그들을 삶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저자는 "의지력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다짐보다, 호르몬을 이해하고 그 호르몬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분비될 수 있게 환경과 삶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좀 더 지혜롭게 재밌게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이건 내 탓이 아니야. 뇌 탓이야."
그는 뇌를 탓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핵심은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자신과 싸우는 대신 뇌와 협력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나의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뇌와 호르몬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