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우리 '번개' 할래요?
계획에 없던 시간 속에서 맞이한 깊은 대화들
"벙개 모임 하실 분!"
"저요!..."
요즘 말음표게임에서는 번개(벙개) 모임이 자주 열린다. 번개는 원래 계획에 없던 모임이라 성사율은 생각보다 낮다. 하지만 성사됐을 때의 느낌은 계획된 모임과는 또 다르다. 좀 더 편안하다고나 할까? 우리를 예상치 못한 대화로 인도하거나, 평소에 꺼내지 않았던 말들을 하게 만든다.
지난 주말 있었던 번개 모임도 그랬다. 옹기종기 모인 카페에서 질문카드를 꺼내 들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오가는 대화. 역시나 질문카드는 우리를 좀 더 깊숙한 내면 속으로 이끌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질문 하나.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있다면?" (인생 편)
자신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이었다. 물론 각자 마음을 연 정도는 다 달라서 이야기의 깊이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다수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편하게 얘기했다. 대화의 초점은 사람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와, 나는 알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나의 모습에 맞춰졌다.
"저는 겉으론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생각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물론 예민한 건 사실이에요."
"전 사람들에게 항상 웃고 친절하지만, 속으론 정반대의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저는 많이 소심하고 마음이 여린 편이에요. 그래서 겉으로는 더 아닌 척하려고 해요."
"저는 굳이 저에 대해 남에게 알리고 싶은 점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요? 누가 날 알아주느냐는 저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성격, 방어기제, 콤플렉스,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얘기를 누군가와 나누는 건 쉽지 않다. 꺼낼 기회도 없을뿐더러,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도 흔치 않다.
보통의 모임은 피상적인 대화에서 그치거나, 침묵 속에 눈치를 보다가 시선을 이내 스마트폰으로 빼앗긴다. 하지만 질문카드는 어떻게든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마음을 향하게 만든다.
또한 번개 모임은 이런 대화의 깊이를 더욱 극대화시키는 듯하다. "오늘은 무슨 대화를 할까? 이 얘기 해야겠다" 하고 미리 생각하고 오지 않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얘기를 꺼낼 수 있다. 물론 계획된 모임이라고 해서 대화의 깊이가 얕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개모임이라는 특성상 모두 여유로운 마음으로 왔을 가능성이 높기에, 분위기가 좀 더 편안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순간의 감정을 따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누군가를 경계하지 않고,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 9년 전 홀로 떠났던 배낭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동행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털어놓았던 추억이 전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 삶의 몇 안 되는 진정한 번개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으로 내 삶에 번개 모임처럼 편안한 만남이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든 생각인데, 앞으로 번개 모임을 좀 더 활성화시켜 볼 생각이다.
"우리 번개 하러 갈래요?"
"당신을 즐겁게 해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