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Aug 09. 2022

서울 대홍수: 신대방 반지하 침수기

그날 밤, 나의 반지하 감성은 산산조각 났다


2022년 8월 8일 오후 6시, 내가 살고 있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시간당 140mm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비는 80년 만의 역대급 물폭탄이었다. 수도권 일대에는 호우주의보가 발령됐고 산사태와 침수 피해에 주의하라는 경보가 내려졌다.


나는 그 시각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운동을 하고 돌아가는 길,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에이, 뭐 조금 있다가 그치겠지"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인도는 걷기 힘들 정도로 물살이 불어나 있었고 도로의 차들은 물에 잠겨 오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물살을 거슬러 겨우 집에 도착했다.


2022년 8월 8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동작상떼빌 아파트 1층 현관이 물에 잠겼다


반지하인 내 방이 걱정됐다. 집주인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수십 년 동안 침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지만 엄청난 물살을 보니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급히 집에 들어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쪽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다행히 큰 일은 없었다. 비가 많이 내려 창문과 닿은  지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크게 들린 것이었다. 한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시간은 저녁 8시 30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근처 새로 생긴 영화관에 '탑건:매버릭'을 예매해둔 상황이었다. 고민이 됐다.


"에라 모르겠다. 영화나 보러 갈까?"  

"에이, 지금 무슨 영화는 영화야..."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이 낯설고 철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산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거센 빗소리에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9시쯤, 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2022년 8월 8일 서울 신대방역 부근
2022년 8월 8일 서울 신대방역 부근


"(재난 문자) 도림천이 범람해 침수될 위험이 있으니 도림천 근처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은 혹시 모를 피해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휴식처이자 낭만이었던 도림천은 공포로 다가오고 있었다. 불안에 떤 지 2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화장실 변기의 물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물이 솟구칠 것만 같은 감이 들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10분 후 변기에서 진갈색의 정화조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신대방동 반지하방 화장실


당황한 나는 허겁지겁 화장실에 있던 양동이로 똥물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다른 층의 집을 두드려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난 물이 방 안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물을 퍼 날랐다.


40분 정도 물과의 사투를 벌였을까 집주인 할머니와 그 아들이 내려왔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 역류된 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2022년 8월 8일 서울 대림사거리 일대, 80년 만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도시가 물에 잠겼다


"이게 무슨 일 이래... 20년 동안 살면서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러게요..."  

"아이고, 어떻게 놀랐겠어... (집을 살짝 둘러본 후) 그런데 총각이 나보다 깨끗이 하고 사네"  


화장실은 온통 정화조 냄새가득했다. 집주인 할머니와 아들은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다시 집으로 올라가버렸다.


난 잠시 의자에 앉아 멍하니 화장실을 바라봤다. 그런 후 생각을 비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새벽 2시경 청소를 끝내고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놀랜 마음을 달래려고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다.


"(방송) 밤새 비가 더 쏟아질 확률이 있어..."


뉴스는 온통 비 피해 소식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재난 방송과 함께 울리는 빗소리를 견디며 겨우 잠에 들었다.


하루가 지난 아침. 여전히 창밖엔 빗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멍했다. "생각보다 많이 놀랐구나" 싶었다. 문득 4년 신촌에 살던 시절 불이 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비슷한 증상을 겪었었다.



친구가 준 향을 피우며 마음을 달랬다


"인생 참 쉽지 않구나..."  

 

지난 밤, 나의 반지하 감성은 그렇게 산산조각 났다. 유난히 고난이 많은 요즘이다.


오늘 밤은 무사히 흘러가기를. 그리고 부디 모두 안전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사촌형이 죽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