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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Nov 25. 2023

기후위기가 대체 뭔 상관이라고

2011년 어느 일요일 낮, 할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차가운 유리컵에 담긴 빙수를 뜨며 ‘생전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난 빙수의 얼음 알갱이가 차가워 (스-읍) 입안의 한기를 내뿜으며 ‘여름은 매번 더웠다’고 답했다. 그때, TV 속 뉴스 앵커가 말했다. ”100년 만의 폭염으로 가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 100년 만이라니. 진짜 할아버지 생애 첫 최악의 무더위였다. 앉아있던 가죽 소파는 금세 내 온기에 뜨-끈-뜨끈 해졌고, 뉴스는 바짝-바-짝 말라버린 농가의 저수지를 보여줬다.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인 1960년생과 비교할 때, 평생 폭염을 경험할 확률이 6.8배 이상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홍수와 흉작은 2.8배, 가뭄은 2.6배, 산불은 2배 더 겪는 등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챙기며 지구를 살리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그럼에도 편리함과 익숙함 때문에 우리는 곧잘 지구를 잊는다.


봄이 시작되면서 회사 옥상 텃밭에 상추와 깻잎 모종을 심었다. 과연 이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잘 자랄까 싶었다. 상추는 대여섯 번 솎아 직원들과 점심에 함께 먹었고, 깻잎도 여러 번 뜯어 나눴다. 마침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자 깻잎은 어느새 나무처럼 훌쩍 커버렸다. 내리쬐는 태양과 쏟아붓는 빗줄기 속에서도, 어느 화창하고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날이면 깻잎은 바람에 흔-들흔-들 춤을 췄다. 그리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바질의 잎이 삐-쭉 흙 위로 올라왔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식물은 잎을 피우고, 벌은 꽃을 찾았다. 그렇게 제 할 일을 하는 순간들이 한없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기후위기가 대체 뭔 상관이라고” 하던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해 여름은 두피의 모공이 활-짝 열릴 만큼 뜨겁고, 겨울은 한여름 공포체험보다 더 오싹-할 만큼 추웠다. 슈퍼 엘리뇨가 몰려온다는 뉴스는 어느새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이들에게 묻혀버렸다. 한여름 무더위보다야 비가 낫지, 싶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여름, 하와이의 섬이 뜨거운 화염에 모든 것이 타버려 바스락 부서지고 있을 그때, 한국은 물에 잠긴 버스와 사람들의 눈물 가득한 사연이 뉴스를 채웠다.


우리는 어떤 지구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어떤 지구를 남길 것인지, 망가져가는 이 지구를 바꿀 수는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과연 최선을 다했을까.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어쩌면 괜찮을 것 같은 인생이지만, 내 수명보다 지구가 먼저 망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의 최대의 관심사는 기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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