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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27. 2023

부산, 그 꿈의 땅으로 결혼 10주년 여행

그냥 산토리니 갈 걸 그랬어




마침 2021년은 우리가 결혼한 지 딱 10년이 되던 해였다. 결혼 10주년엔 신혼여행지였던 산토리니를 다시 찾자고 약속했지만, 부산 영도에 마음을 두고 있던 우리가 당장 가야 할 곳은 산토리니가 아니라 부산이었다. 


결혼 10주년 여행지가 앞으로 살 터전이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생각하며 계획을 전면수정했다. 제2의 인생이 있다고 믿는 부산으로 여행을 하는 동시에 이사를 위한 답사 계획을 세세하게 짰다. 해운대에서 관광을 하고 하루 머문 뒤 영도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광명역에 주차를 하고 부산행 기차에 오르며 마치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도 그랬겠지만 나 또한 회사원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들을 했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수긍하면서 돈을 벌었던 날이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친구를 뒤로 한 채 부산에 갈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내가 꿈꾸는 건물을 짓고, 스스로 꾸려가는 인생. 살면서 한 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부산에서 가능하다면 나는 기꺼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산역에 내렸을 때만 해도 긍정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부산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여행지이며 경상도 출신 남편에겐 더 익숙한 장소였다. 



그러나 부산에서 머무는 날짜가 길어지고 그곳을 터전으로 생각하자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부산의 어마어마한 교통체증과 악명 높은 도로환경은 차지하더라도 영도에서 자던 밤, 온몸에 달라붙던 끈적한 공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아직 더웠던 9월, 창밖으로는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실내는 에어컨 제습을 아무리 돌려도 쾌적하지 않았다. 이미 많은 영상으로 영도에 대해 수없이 조사했다고 생각했지만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알아봤던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느꼈던 습도처럼 땅을 밟아야 알 수 있는 많은 지점이 소거되어 있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와 카페며 숙소를 열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환경이 열악했던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영상 속에서 봤던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골목은 편집되어 보였던 일부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걷거나 차를 타고 이동해야 만날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내가 묵었던 숙소 근처엔 빵한쪽 살 곳도 맛집도 없었다. 습한 공기와 높은 언덕들을 둘러보며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산의 학군지에서 거주할 생각이었는데 그곳의 집값은 생각보다 비쌌다. 부산 역시 눈만 뜨면 집값이 오르던 시기였다. 자료조사를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집값은 꾸준히 상승했고 막상 두 발 딛고 다니면서 괜찮다고 생각한 지역은 넘볼 수 없는 가격이었다.


거주지를 잘 정하지 않으면 에어비앤비를 위해 수없이 오가야 할 영도까지 빠른 이동도 쉽지 않아 보였다. 예산이 많았다면 부산은 더없이 완벽한 장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타이트하게 세워진 우리의 계획은 자꾸만 장애물을 만났다.


부산여행은 계속되었지만 남편과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우리가 계획으로 빛날 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농담을 건네며 웃을 일이 많았는데, 막상 부산에 와서 예상과 다른 면면을 마주치자 어디서부터 어떻게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때 남편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도의 끈적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내가 꿈꾸는 삶은 부산에 있지 않다는 걸 감지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더 이상 이 여행이 의미 없게 느껴졌고, 가슴속에서 점점 커져만 가는 그 말을 뱉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을성이 많지 않았던 나는 마침내 그 말을 뱉고야 말았다. '자기야, 난 이건 아닌 거 같아'



나의 말과 동시에 경제적 자유를 향한 남편의 길이 허물어져 가는 게 눈앞에 보였지만,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를 끼워가며 모든 과정을 수정하는 일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남편 또한 부산에서 분명한 한계를 목격했을 것이다. 우리는 별다른 말없이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왔고 아무렇지도 않게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떠 늘 지속하던 일상을 시작했다. 어제까지 우리를 감싸던 생기는 사라졌고 미래를 향한 계획은 지표를 잃었다. 그러나 이럴 때조차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낼 줄 아는 게 결국 어른이라서 별 수 없이 또 살아야 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로 하면서 우리가 시도했던 일들과 세웠던 계획, 그것들을 허물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0으로 돌아가는 일은 많았다. 남편은 어느 날 스마트스토어를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스마트스토어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한편 이름을 고민했고 부족한 포토샵 실력으로 내가 로고까지 만들어두었지만 손익을 따지고 생활공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 끝에 그 일을 포기했다. 매달 꼬박꼬박 넣었던 주식을 한 번에 정리했던 일이나, 비트코인으로 돈을 날려본 경험 같은 건 너무 흔해 기록할 가치조차 없는 실패담 중 하나일 뿐이다. 재테크 서적에 나오는 앱테크, 중고나라에 무언가를 팔아보는 일, 직구대행도 고민했지만 '우리 가족'이라는 중심을 지킬 수 없던 일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든 간에 포기했다.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가도 다시 0이 되는 과정은 며칠간 남편과 나를 바람 빠진 공처럼 만들었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다른 계획을 세우고 또 다른 삶을 꿈꿨다. 이후의 삶에서도 실패는 계속됐다. 한 번씩 벽에 부딪칠 때마다 시간과 꿈을 잃는 기분이 되었지만 이렇게 켜켜이 쌓인 날들이 결국 다른 시도를 할 때 우리의 가장 아래 밑바닥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새로운 얼굴로 다음을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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