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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26. 2023

서울 경기 찍고, 이번엔 부산이야?

경제적 자유 이루러 어디까지 가야 하나



같은 목표 아래 단단해지던 우리 부부는 2019년의 마지막 밤에 마주 앉아 버킷리스트를 작성. 그때 나 이탈리아 여행하기와 주말농장, 책 출판하기를 썼고 남편은 다주택자 되기를 꼽았다.


감성적인 버킷리스트에 어울리지 않는 다주택자라니! 문과여자는 다시 태어나도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차원의 리스트였지만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남편에게 '다주택자'는 필수불가결의 목표가 분명했다. 다만 실천 불가능하다는 게 유일한 문제였다. 대출만 2억을 끼고 있던 집이 자산의 전부였고 그나마도 깔고 앉아 있던 걸 생각한다면 다주택자는 버킷리스트에 오래오래 담겨만 있을 리스트였다.



변화가 생긴 건 바로 다음 해부터였다. 조금씩 오르던 집이 2021년 가을을 넘기며 9억대가 되었다. 남편은 호언장담한 결과였지만 내 입장에선 뜻밖이라 조금 놀랐다. 남편은 10억 5천에 집을 내놓고 집이 팔리면 주거비용을 낮추고 남는 돈으로 투자를 하자고 했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한두 정거장만 이동하면 1502호보다 조금 더 오래된 아파트들, 그렇지만 학교가 가깝고 도서관이 지척이며 이미 상권이 발달해 주거로 손색이 없던 마을이 있었다. 5억 전후의 아파트들을 떠올리며 나는 곧장 남편의 의견에 동의했다. 대출을 모두 갚을 수 있는 데다 편의성까지 갖춘 곳으로 이사! 그건 누구보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러나 남편의 관심은 옆동네에 있지 않았다. 남편은 멀리,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곳에 우리 미래를 그려놓고 있었다. 



"부산 어때? 거긴 대도시라서 교육도 괜찮고 살기도 편할 거야."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아니, 농담으로 듣고 넘기려고 했다.

이런 나를 잘 안다는 듯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다음말을 이었다.


"거기서 살면 우리가 원하는 에어비앤비도 해 볼 수 있어"



2019년의 마지막날 우리가 모스카토다스티를 마시며 적었던 버킷리스트는 많고 많았다. 그중에 유일하게 겹쳤던 딱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건 '외국에서 한 달간 살아보기'와 '에어비앤비 운영'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항목은 이미 앞에 간절한 리스트를 나열한 뒤 재미 삼아 써 내려갔던, 정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부산이라니, 그건 더 당황스러웠다. 경기도도 아니고 충청도도 아니고 부산이었다! 남편은 부산에 가서 주거를 위한 아파트 한 채를 산 뒤 허름하고 무너져가는 집을 사들여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남은 돈으로 투자도 가능하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가 드디어 사표를 던질 수 있고, 우린 다주택자의 꿈을 이루는 동시에 에어비앤비로 수익구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이 솔깃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줄곧 자라온 내가 갑자기 터전을 부산으로 옮기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부산에서 살아볼까, 싶다가도 '가긴 어딜 가!' 하고 고개를 내저어가며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나는 그만 우연히 본 부산의 영도에 운명처럼 반하고 말았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속에서 만나는 영도바다는 아름다웠다. 바다 뒤로 오밀조밀한 골목들 사이사이에 자리한 개성 있는 에어비앤비와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카페는 생기가 넘치다 못해 사랑스러웠다. 그곳에 집 한 채를 구해 화이트와 우드가 어우러진 인테리어로 채울 생각을 하면 조금 설렜다. 그쯤 나는 우리의 결혼 1막이 지나고, 자영업자로 변신해 결혼 2막을 여는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직 젊은데 못해볼 것도 없지 않나, 싶은 마음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부산에서 사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



내가 화이트와 우드가 어우러진 실내, 중정과 통창을 가지고 있으며 마당에는 새하얀 조약돌과 대나무로 둘러싸인 노천탕이 있는 숙소를 지을 생각을 해보는 동안 남편은 좀 더 현실적인 면에서 접근했다. 그는 네이버 부동산으로 영도, 그중에서도 바다와 근접한 동네에 나온 매물들을 따로 뽑아 리스트업 했고, 우리가 거주할만한 지역을 점찍어 예산을 수립하는 동시에 괜찮은 건축사무소도 찾아뒀다. 나는 문과여자답게 그런 것들엔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남편에게 질세라 미리 에어비앤비의 이름을 정하느라 분주했다. 고민 끝에 '어느 날 부산' '하루 부산'이라는 뜻을 가진 원데이비(onedayB)를 생각해 냈고 주저하지 않고 인스타 계정도 만들었다. 그곳에 부산 이주의 모든 과정을 옮겨 기록할 예정이었다. 



한 달 사이 또 3천이나 오른 아파트가 우리 마음에 희망을 거세게 불어다 주었다. 남편이 그토록 원했던 경제적 자유와 더불어 에어비앤비를 하는 낭만적인 삶을 꿈꾸는 동안 코로나로 지쳐가는 내 마음과 생활에도 전에 없던 활기가 찾아왔다. 어떤 희망은 대책도 없이 좋은 면만을 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채, 우리는 부산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유튜브를 틀고 매일밤 부산의 구석구석을 구경했고,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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