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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17. 2023

온 우주가 나의 절약을 도왔다

미니멀라이프와 당근마켓을 이긴 복병




10년의 결혼생활동안 내가 온갖 집안일에 두각을 나타내며 실력을 날로 키워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오직 청소에만 집중하며 청소만 잘하는 남자로 남았다. 청소담당자가 구입해야 할 품목은 기껏해야 욕실청소용품과 쓰레기봉지 정도였지만 그 외에 모든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나의 소비영역은 실로 넓고 방대했다.



우리가 공인인증서를 공유하고 통장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가계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해도 남편은 매일 어떤 물건이 택배로 도착하는지, 무엇이 사라지고 또 쌓이는지 알지 못했다. 같은 이유로 그가 아무리 가계절약을 바라고 있었다 해도 그는 어디서 소비를 줄여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와 동시에 절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태어나기를 infp로 태어난 것이 분명한데 치열한 사회생활의 결과인지, 가정을 이루면서 살다 보니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isfj가 되어버린 나는 '절약'을 향한 세부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마침 미니멀라이프라는 바람이 대전성기를 맞이할 때였다. 곤도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했고, 그 말에 따라 많은 물건을 집에 두지 않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우리도 이 바람을 함께 타며 신진기술로 아름답게 일궈진 당근밭에 많은 것을 팔아치우는 한편 미개봉 새 상품을 뽑아가며 절약에 힘을 실었다.



가계부도 공유했다. '모두의 가계부'라는 어플을 남편과 함께 다운받아 서로의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 어플은 각자의 카드와 계좌가 서로 연동되어 힘들이지 않고도 그 달의 지출과 수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현금을 쓸 때마다 직접 입력해야 하는 일이 좀 번거로웠는데 그쯤 절약에 마음을 모은 우리에겐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남편이 내가 마셨던 4000원의 커피값을 보는 일이 달갑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그를 잘 알았다. 그는 내가 어디서 뭘 마셨고, 뭘 먹었고 무엇을 샀는지에는 하나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오직 그달의 지출 총액 일 뿐. 나 역시도 처음엔 '이 사람 오늘 신선설농탕에서 점심 먹고 커피 마셨네' 하며 일일이 지출내역을 눌러봤지만 그런 사랑의 관심은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았다. 나는 그를 정말 사랑했고 그와 함께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10년의 결혼생활에 서로를 향해 남아있는 관심의 수준은 딱 일주일치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기엔 우리가 연애하고 살아온 기간이 꽤 길었고, 세상엔 남편의 행적보다 재밌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모두의 가계부 어플로 지출내역을 매달 점검하고 소비통계를 내면서 우리가 쓰는 돈의 규모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 전에 지출액 숫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자를 포함한 총지출내역이 450선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매달 가계부에는 600에서 700만 원의 금액이 찍혔다.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오면 숫자는 훨씬 더 커졌다. 어플이 이달의 카드지출과 정기적으로 나가는 이전 달 카드대금을 이중으로 집계해 금액이 커진 탓도 있었고, 매달 50-60만 원의 돈으로 꾸준히 사들였던 주식 또한 지출로 체크됐지만 그렇다 해도 생각보다 소비의 폭의 컸다. 뜻밖의 숫자를 보며 매달 충격은 좀 받았지만 소비를 줄여야하는 지점을 체크해 조금씩 지출 총액도 자리를 잡아갔다.





늘 사서 보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집에 이사하면서 생긴 고무적인 변화였다. 비록 경제성장이나 출판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우리 가족이 일주일에 읽어내는 책의 양이 꽤 많았던 편이라 가정경제 안정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으면서 뜻하지 않은 책육아에 발을 들였고 그건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각자 나름의 큰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우리 집 가계 절약에 큰 기여를 한 일등공신은 따로 있었다. 2019년은 코로나가 시작되던 해였다. 나아지겠지 했던 상황은 2020년에 들어서자 더욱 심각해졌다. 일주일에 두 번, 두 돌 아기와 갔던 문화센터 수업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그룹 지어 보내려 했던 큰 아이의 수영학원과 영어학원도 문을 닫았다. 어쩌다 예약한 여행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코로나로 그 해 우리는 집 밖에서보다 집안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채도가 다른 청바지를 번갈아 입고 나갈 일이 없어졌으며, 사교육에 돈을 쓰고 싶어도 저절로 지갑이 닫혔고 호텔과 리조트는 알아서 문을 닫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집에 머무는 시간동안 돈으로 대체할 수 있었던 교육과 여가, 살림의 모든 부분을 오직 나의 노동력으로만 채워가야다. 잠들기전에 삼시세끼 식단을 짜고 아이둘을 가정보육하며 놀이일과를 적어내려갔던 날들은 하루도 쉽지 않았다. 나는 정말이지 온 우주가 나의 빚을 걱정하며 절약을 도와주었던 그 암담한 시기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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