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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12. 2023

고르고 고른 꿈의 아파트

여기 진짜 오르는 거 맞아?






남편을 향해 '그래 우리 한번 경제적 자유를 향해 달려보자!'라든가, '그렇게 애쓰니 나도 동참할게!' 같은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다만 6년의 연애와 당시 9년쯤 되었던 결혼기간 동안 우리는 이미 서로의 눈빛과 행동에서 망설임과 결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이것은 때로 매우 불편했고 상대의 마음을 모르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귀찮은 상황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만은 유용했다)



더 이상 새벽 독서와 반신욕을 의아하고 우습게 여기지 않게 된 나의 태도나, 남편이 읽던 책에 관심을 보이고 그가 해주는 재테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아마 우리의 목표가 같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남편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주말마다 온 가족을 태우고 나가 매번 다른 아파트 앞에 멈춰 섰다. 아이들이 드라이브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있을 때, 남편은 천진한 얼굴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여기서 살면 어떨 거 같아?' '이 동네 마음에 들어?'


그렇게 일곱 살과 두 돌도 안 된 아이들을 하나씩 안고 업은 채 우리는 서울과 경기도의 많고 많은 아파트들을 돌고 돌며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그래서 결국엔 경제적 자유를 안겨 줄 아파트를 찾고 또 찾았다. 일곱 살이던 딸아이가 '또 동네구경이야! 이제 지겨워!!'라고 말할 때까지.



숱한 임장을 거쳐 마침내 남편은 GTX-C가 예정되어 있는 경기도의 지하철 앞 5년 된 신축아파트를 점찍었다. 학교까지 3분이면 갈 수 있는 초품아에 34평의 브랜드 아파트, 대한민국 3대 학군지가 지척인 그곳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거라고 장담했다.


산꼭대기에 있던 24평 아파트는 2년 만에 시세차익 1억을 남겼다. 그렇다고 해도 평형을 늘리고 향후 호재의 가능성이 있는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억이 넘는 돈을 대출해야 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집이 가진 조건, 집의 내부와 외부 또한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애초에 그 집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남편은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을 빚지면서까지 무리해서 아파트를 구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남편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응! 당연하지. 우리가 살 수 있는 최대치의 비싼 집을 사야 가격도 많이 뛰는 법이거든."



'엄마의 10억'을 쓴 김지영 작가는 세상에는 좋은 빚과 나쁜 빚이 있다고 말한다. 향후에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있는 집에 투자하는 대출은 좋은 빚이라고 했다. 오직 용기 있는 사람만이 그런 결정을 내리고 부자의 삶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고. 그러나 불안이 높고 걱정이 많은 내게 2억이 넘는 빚은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돌덩이가 될 게 뻔했다. 둘째 아이는 17개월이었고, 큰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당장 사회생활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분간 외벌이로 살아야 하는 우리가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합쳐서 10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들 중 무엇을 포기하고 그중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선택이라는 게 가능한 상황인 걸까, 여러 가능성들을 가늠해 보던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옷을 얻어 입었던 그분 또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어쩔 수없이 옷을 얻어 입어야 되는 상황이 오고야 만 거지.


 나는 미혼에 고소득자인 친동생을 떠올렸다. 동생 옷장에 줄지어 있는 명품백과 티셔츠들을 생각하며, 거기서 잘 안 입는 옷으로 분류된 것들을 한 아름 껴안고 돌아오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1502호'의 주인이 되었다.






남편과 정확히 반반의 결정권을 가진 결정권자로 끝까지 그 집을 사는 일을 반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이 안다는 것은 언제든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 집이 갖는 경제적 가치와 향후의 가능성에 대해 나는 확신할 수 있는 정보와 전망이 전혀 없었으므로 넓은 거실과 내가 좋아하는 색의 벽지가 발린 그 집으로 어서 이사 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조금은 분한 마음이 되어 가끔씩 남편의 뒤통수를 흘겨보면서 이사날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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