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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08. 2023

문과여자의 소비 생활

경제적 자유 그건 모르겠고, 일단 행복해야 하지 않겠니?



대책 없이 충동적이고 직관적이었던 20대에 그나마 잘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도 그게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비록 경제적 자유에 눈이 멀어 나에게 극한의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했을지언정, 눈치가 없거나 비상식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를 돌보던 내가 한숨을 쉬면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갈 줄 알았던 끈끈한 육아동지였으며, '힘들어서 밥 할 기운도 없다'고 무너지듯 소파에 앉을 땐 바로 엉덩이를 들고 '뭐 사 올까?' 묻던 남자였다.



이과남자는 입력값을 정확히 뱉어내는 따뜻한 로봇에 가까웠지만 다년간의 사회생활과 전여친이자 현배우자와의 긴 연애로 다져진 눈치는 꽤 쓸만한 편이었고, 기본적으로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의 결혼생활을 평화롭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의 경제적 자유 선언에 대해 기겁했던 반응으로 충분한 답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육아는 여전히 고됐으며,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던 시기였으니까. 큰돈 쓰는 것도 아닌데 소소한 소비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문화센터에 가기 위해 채도와 길이가 조금씩 다른 청바지를 샀고 아주 작은 하트가 달린 목걸이를 걸고 집 밖을 나섰다. 상체를 거의 가렸던 아기띠나 커다란 기저귀 가방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내가 아끼는 작가의 새 소설과 에세이를 사고 그보다 더 자주 배달앱을 켰다. 마트장바구니엔 국산 농산물과 한우만 담았고 아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유기농을 선호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사는 일이 좀 지친다 싶으면 가까운 호텔이나 리조트를 검색해 여행을 떠났다. 수입을 압도하지 않는 선에서 나와 가족을 만족시키는 소비생활, 그건 내 상식과 기준에서 당연했다.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얻는 경제적 자유가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옷도 얻어 입어야 하는 형편이라면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삶의 질을 낮춰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수많은 재테크 서적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 종잣돈을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교육비가 지출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된 지금에서야 그 말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땐 아이 둘 다 어렸던 시기였다. 몸이 고되던 육아를 하며 피로와 맞바꿨던 돈, 편의를 위해 기꺼이 했던 소비, 순간에 사라지고 말 행복에 썼던 금액을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비가 오던 가을날, 우산을 쓰고 뮤지엄 산을 걷던 길이 참 좋았다. 그 여행에서 자작나무 사이를 투명우산 받친 채 온몸으로 비를 느끼던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오랫동안 기억한다. 겨울에 청양의 알프스마을에 가서 눈밭을 뒹굴었던 기억, 유채꽃밭 뒤로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던 거제도 여행, 둘째 아이가 힘겹게 인생 첫 브이를 만들곤 나를 향해 웃어 보였던 수선화 밭. 벚꽃이 필 때 갔던 제주와 그곳에서 야외스냅을 촬영하며 남겼던 장면들, 그런 날들이 우리 삶에 선명한 점을 찍으며 한 해 한 해를 이어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추억을 갖기 위해 우리는 도로와 식당, 숙소에 백만 원 이상의 돈을 쓰고, 더 멀리 더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런 날들, 그런 기억이 없는 채로 사는 일은 생각만 해도 슬펐다.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지점과 견딜 수 없는 지점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었다.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경제적 자유를 위해 안 쓰는 생활을 시작했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데 썼을 것이다. 그때의 나를 살린 것은 테두리에 파란색 링을 두른 플레이트, 귀여운 바나나 무늬의 컵, 그런 것들을 자동으로 씻고 말려주었던 식기세척기. 무엇보다 가만히 기다려 주었던 남편이었다. 덕분에  육아우울증으로부터 안전하게 그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식기세척기, 청소와 걸레질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최신형 물걸레 청소기가 아니었다면 경제적 자유는커녕 우리의 미래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는 연애시절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나는 나를 말없이 기다려줬던 남자였다. 내가 밤낮도 없는 구성작가 생활을 할 때 그는 일층로비에 앉아 기약도 없었던 나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가 내게 강요한 것들은 거의 없었지만 묵묵히 기다리는 데는 선수였다.


생각해 보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것은 내쪽이었다. 웃음과 눈물을 오가고 밝음과 우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드나드는 감정적인 여자, 변덕을 부리며 결정을 뒤집었던 쪽은 늘 나였던 것이다. 따뜻한 로봇은 스스로에게 입력한 10년 후 경제적 자유란 입력값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이길 재간이 없었으므로 언제나 여지도 없이 우리 둘의 관계에 있어 변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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