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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06. 2023

경제적 자유? 도대체 그게 뭔데!

나더러 지금 남이 입던 옷을 주워 입고 살라는 말이니






20대에 재미 삼아 친구들과 몰려간 사주카페에서 '쇠(金)를 가까이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개량한복을 걸쳐서인지 덥수룩한 수염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사주엔 금이 없으니 꼭 쇠를 가까이하라던 역술가의 말이 아주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설마 그래서였을까! 나는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무려 철강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결혼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쇠를 가까이하라는 조언을 이보다 더 잘 실천할 수는 없게 된 셈이다.


남편의 사주에는 정말 금이 넘치는 모양인지, 어린 남편을 본 한 스님은 장차 커서 돈을 아주 많이 벌게 될 거란 말을 남겼다고 했다. 돈은 많지만 좀 일찍 죽을 거라는 찝찝한 첨언과 함께.




남편이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완전 틀렸어, 지금 부자도 아니고 앞으로도 별로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없으니까 가늘고 길게 오래 살 거야!'라고 말해왔다. 그가 그놈의 부동산책을 끼고 살기 전까지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남편은 퇴근을 하면 자신이 모시듯 다뤄야 하는 3번과 4번 디스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자세로 가로로 눕거나 세로로 엎드려 책을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 대부분 돈으로 시작했고, 부자나 부동산으로 이어졌으며 공부나 법칙, 사라! 같은 말들로 맺어졌다. 한동안 그렇게 출퇴근길에 비슷비슷한 책을 닳도록 읽던 남편은 어느 날 선언하듯 말했다.



"나는 10년 안에 경제적 자유를 이룰 거야!"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남편은 꽤나 비장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때 나는 육아로 온몸과 마음이 바스러지던 시기였다. 남편의 입에서 나온 '경제적 자유'란 말은 안드로메다에서 갑자기 내 눈앞에 쾅하고 떨어진 낯선 단어의 조합일 뿐이었다.



남편이 의욕적이고 친절하게 설명을 보탰지만 딱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경제적 자유를 경제적 독립으로 오해해서 '우리 이미 부모님 도움 없이 잘 사는데?'라고 물었던, 다시 생각해도 무지함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순간뿐이다.




처음엔 남편이 경제적 자유를 원하든 파이어족이 되고 싶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도 다른 나라에서 한 달 정도 살다오고 싶고, 방으로도 부족해 거실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으니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판타지가 있는 법이고 아주 힘들고 지친 날 우리는 신기루 같은 판타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또 하루를 견디는 힘을 내곤 하니까. 그렇게 나는 경제적 자유가 그만의 판타지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겨우 24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 아파트조차 온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방 두 칸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이 은행의 것이었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의 남편은 아주 간절하고 절박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외벌이로 살다가 재테크에 눈을 뜬 여성들이 집안을 일으킨 책들을 추천하며 읽어보라고 권했고, 그런 마음으로 살면 우리도 결국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 여자는 어떻게 사는데?'라고.


기다렸다는 듯 남편의 입에서 어느 주부님이 자산을 불린 성공기가 줄줄 읊어져 나왔다. 어쩌면 그건 남편이 처음 말한 것처럼 행동보다는 마인드에 중점을 둔 설명이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돈을 거의 안 쓰는 거지. 옷도 동생이나 친구가 주는 옷을 얻어 입거나'라는 말이 나온 순간 나는 천진한 남편을 향해 날카롭게 되물었다.



'뭐? 지금 나더러 남이 입던 옷을 주워 입고 살라는 말이니?'



그쯤 첫 아이이는 유치원에 다녔고, 둘째는 돌이 채 안되던 시기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작은 회사의 '팀장님'이었던 나는 가는 곳마다 '어머님'이라고 불렸고, 그렇게 어머님일 때의 나는 조금도 우아하거나 여유롭거나 즐거울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봐도 남이 봐도 짠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해 온 내 취향의 지분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던 참이었다. 오션뷰나 특정 컬러에 얼마든지 돈을 지불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다르게 몇 만 원을 더 주고 오직 시각만을 만족시키는 일이 과연 경제적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니! 선택의 폭은 더욱 줄고 취향이랄 것도 없는 무색무취의 삶. 오직 경제적 안정만을 위해 안 쓰고 사는 인생을 향해 가자니, 나는 조용히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짓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아주 모난 마음이 되었고, 그만큼 날카로워져 외쳤다.


경제적 독립, 아니 아니 경제적 자유! 내가 그거 하나 봐라!


남편은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목에서 발을 떼기도 전에 가장 강력한 장애물을 만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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