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은 Sep 22. 2023

남편의 '회사 가기 싫어증'

10억보다 20억보다 더 간절한 그것은 퇴사



남편이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면서 세운 목표는 '경제적 자유'였다. '10억 모으기'도 그것보다 좀 더 배포를 키워 '30억 모으기'도 목표가 될 수 있었지만 그는 부자가 되겠다는 꿈보다 '경제적 자유'를 갈망했다. 그가 부자 대신 경제적 자유를 선택했던 이유는 명료했다. 회사 가기가 죽도록 싫었기 때문이다. 



입사 10년 차가 넘어가면서 동일한 업무를 질리도록 해온 남편은 '지겹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아이가 둘인 상황에서 대안도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남편은 재테크 공부와 경제적 자유에 더욱 매달리며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당시 나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경제적 플랜 대신 '성실한 그가 설마 회사에서 잘리겠나'싶은 낙관에 기대어 살았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맞벌이를 할 수 있을 테고 대출로 구멍이 숭숭 뚫린 집이라 해도 가지고 있으니 이만하면 우리의 삶이 여유 있는 엔딩을 맺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뜻에 따라 대출을 많이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지만 솔직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선 그게 정말 현실적인 목표인지, 우리가 가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남편은 달랐다. 회사를 다니기 싫어하는 마음이 날로 커져 결국에는 그 마음이 기침이나 사랑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남편은 도통 숨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의 회사 동료들은 물론이며 양가의 부모님까지도 남편이 월요병을 넘어 '회사 가기 싫어증'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는 잠을 못 주무셨다. 그보다 일곱 살쯤 젊고 좀 더 활동적인 우리 엄마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볼까 고민하다가 점집을 예약했다. 용하기로 소문이 나서 몇 달 뒤에나 점을 볼 수 있다는 그 점쟁이가 남편의 번아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건지 알 길이 없었지만 마음이 복잡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여느 가장들과 다르게 회사에 가기 싫다고 온몸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의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이 괴롭기도 했다. 


나 또한 한때 직장인이었고, 그날들 중에 어떤 시기는 침대에 누우며 밤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랐을 만큼 괴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이 그 정도로 괴로운 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라고 권했다. 동시에 경력단절로 당장 남편만큼의 돈을 벌어올 수 없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남편을 보며 서운함이 들었던 한편 그가 측은하게도 느껴졌던 그 사이에서 여지없이 커져가는 불안을 감당하며 나 또한 스트레스로 뒤범벅된 날들을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코로나가 뒤흔들고 있었으며 그나마 남편이 대기업의 직장인이기에 가정이 무탈하던 시기였다. 책임감이 있는 남편이 갑자기 사표를 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당연한 듯 반복되는 매일을 살며 남편이 서서히 망가져갈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부모님들은 남편을 걱정하면서도 차츰 일상을 되찾으셨지만 나만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 사주를 보기 위해 전화기를 든 것은 뜻밖에도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대학 때 재미 삼아 사주카페에 가본 것이 전부였던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불안을 해소해 보고자 애썼다.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현금 3만 원을 결제하고 딱 15분 동안만 전화로 연결된 역술가에게 남편의 미래를 물을 작정이었다. 열다섯 명의 역술가 중 누구랑 통화를 할 것인지 후기를 꼼꼼하게 읽고 관상을 살펴가며, 그나마 나에게 상처가 될 말을 덜해줄 것 같은 온유하고 편안한 얼굴을 찾았다.


15분 간의 통화에서 역술가는 남편이 원래는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 할 팔자인데 그렇지 못해 마음을 잡지 못한다고 했다. 게다가 남편은 회사생활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2년 안에 퇴사를 하고 직업을 바꾸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2년이요?" 그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된다는 말인가! 나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막막해졌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남편을 뒤로하고 이번엔 나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제가 지금 육아 때문에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상태인데요!

나중엔 일도 하고 책도 내고 싶거든요. 그건 언제쯤 가능할까요?"


그분은 잠시 공백을 두고 말했다. 


"책..? 책이라면 그건 한 10년 정도 걸리겠네요."

역술가는 급할 것도 없다는 듯이 느긋했다. 놀란 쪽은 나였다.


"네? 10년이라고요??" 


기가 차서 거의 소리를 질렀던 나를 보며 당황했는지 그분은 책을 내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강조하면서 성사되려면 대운이 바뀌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요즘같이 책 한 권 내기가 쉬워진 시대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이 나오는데 강산이 한 번 변해야 한다니! 나는 이내 씁쓸한 마음이 되어 그분의 말을 하나도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되었고, 마침 약속한 15분이 다 된 바람에 제대로 인사조차 못하고 전화는 끊어졌다. 저희가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은 하지도 못했다.



그때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책 한 권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남편은 퇴사하는 직원에게 '그만둔다 그만둔다 하면서 이러다 임원까지 하겠다'는 카드를 받는 것도 모자라 얼마 전엔 근속 15주년을 맞이해 회사에서 금덩이를 받아왔다. 그는 회사 가기 싫어증을 극복하고 퇴사대신 근속을 선택했다. 그 배경에는 어쩌면 그조차도 의심해 왔던 '경제적 자유'가 희망으로 부풀던 낙관적인 날들이 있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재테크 책을 읽고 돈공부를 했던 남편. 수없이 많은 경제 채널과 유튜브를 보며 엑셀파일로 자산을 정리하고 단기와 장기 플랜을 세워 점검했던 남편의 방향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 자유에 곧바로 도착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희망'을 싹 틔우며 스스로를 번아웃에서 구해낼 수는 있었다.





우리가 이사를 했던 2019년의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2020년의 봄, 2021년의 여름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아파트가 신고가 행진을 기록하던 시기였고, 벼락거지란 말이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던 해였다. 무거운 대출을 감당하며 버티고 있던 1502호는 1년 만에 2억이 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억이 넘는 신고가를 기록했다. 


10억이라니, 책 <돈의 속성>에서 김승호 회장은 10억에 대해 '300만원을 받는 급여생활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27년이 걸리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겨우 4년 전쯤 전재산이 2억에 지나지 않던, 그저 월급쟁이에 불과한 우리에게 10억은 꿈의 자산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10억이 눈앞에 와 있었다. 그제야 나는 마음속에 일었던 의심을 지우고 희망적인 날들을 그려 볼 수 있었다.


'낙관이라면 내가 또 자신 있지'하는 마음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진짜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전 05화 온 우주가 나의 절약을 도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