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은 Nov 13. 2024

파뤼피플의 후예



엄마는 역시 현찰이 최고라고 40년째 말하고 있지만 낭만적인 아빠 귀에 그런 세속적인 말이 닿을리 없다. 지치지도 않고 아빠는 엄마에게 현찰 대신 꽃을 안겨준다. 엄마의 떨떠름한 표정 따위 알게 뭔가, 아빠에게 모름지기 축하는 ‘꽃’이다.      



나도 아빠에 버금가는 ‘낭만가’지만 꽃보단 케이크가 좋다. 케이크에 초를 올려 후욱-불어줘야 기쁨을 같이 공유하는 맛이 난다. 케이크를 조각내서 같이 먹으며 기쁨을 곱씹을때면 오래오래 행복한 기분이다. 딸의 첫니가 빠졌을 때도 곧장 케이크를 사러 나섰다. 덕분에 이 빠진 귀여운 얼굴로 케이크 앞에서 활짝 웃는 일곱 살 딸의 사진이 남았다. 생일은 너무나 당연했고, 아들이 유치원에 처음 간 날이 감격스러워서, 집을 사서 기쁘고, 대출금을 다 갚아서 뿌듯해서, 딸이 학급회장이 돼서, 한 해가 무탈하게 잘 지나가서, 나는 심심치 않게 케이크를 샀다. 생일파티, 축하파티를 짠-하고 열었을 때, 행복 앞에 선 아이들의 벅찬 표정이 좋아서, 아이들과 나란히 손을 모으고 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비는 남편의 모습이 귀여워서 소소한 축하가 이어진다.     





많은 케이크를 샀지만, 남편의 스물다섯번째 생일에 샀던 케이크만은 잊을 수 없다. 그는 케이크 앞에서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초를 불고 말했다. “나 생일파티 처음이야” “뭐어? 어째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20대를 맞았던 나는, 남편의 고백이 놀라웠다. 그는 생일에 외식을 하거나 용돈을 받은 적은 있어도 케이크를 두고 초를 불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한가!’싶게 나는 작은 일에도 요란법석을 떠는 집안에서 자랐다. 부모님, 할머니, 고모, 삼촌까지 누구하나 무심하지 않았다. 사춘기 때는 그게 피곤하다고 느꼈고, 차라리 진중하고 과묵한 사람이 낫겠다 싶어 남편과 결혼했지만 보고 자란 게 무섭다고 당연한 수순처럼 파뤼피플의 후예가 되었다. 덕분에 감동을 받아 먹먹한 표정을 지었던 20대의 남편은 40대가 되는 동안 축하를 퍼붓는 내 곁에서 질리도록 계속되는 파티, 플랜카드와 풍선, 케이크에 묻혀 살고 있다.      








그가 내 곁에서 겪었던 가장 감동적인 생일파티는 아마 시부모님의 생신이 아니었을까. 결혼하니 또 다른 파뤼피플의 후예 형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프티콘 대신 스케치북에 ‘생일 축하해요’를 써서 조카와 같이 찍은 사진을 다정히 보내주던 형님은 나의 가장 든든한 파티 동지가 됐다. 우리는 시부모님 생신을 두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케이크부터 찾았다. 형님이 미리 준비해 둔 화려한 초는 매해 생일파티를 더 뜨겁게 달궜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는 왁자한 날이 사진에 담길 때, 점점 가족이 늘어 손자 손녀들의 목소리가 더해질 때, 아버님은 한날처럼 매번 눈물을 훔치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첫 생신파티 후 남편은 ‘결혼하니까 우리 부모님도 케이크를 앞에 두는 생일을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게 고맙다는 뜻인걸, 나는 알았다.     


반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픈 나를 제외하고 가장 놀란 사람은 남편이었다. 주변에서 ‘그렇게 너를 위하는지 몰랐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당연하지. 돈을 벌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모르는 사람, 묵묵하고 성실하기만 했지 언제 삶에 쉼표를 찍어야 할지, 함께 둘러앉아 케이크를 앞에 두고 행복을 말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는 사람. 그에게 내가 없는 삶은 축하와 기쁨이 사라진 삶이었을 거다. ‘애들이 학기를 무사히 마쳤으니 케이크를 사러 가자! 단풍 여행을 떠나자! 연말 케이크를 예약하자! 그의 삶에 들어앉아 끊임없이 질척대면서 행복해보자고 말하는 내가 아파 누워있으니 그는 어느 타이밍에 케이크를 사들고 와야할지 몰랐을거고, 그래서 슬펐을거다.      



내가 털고 일어난 뒤 남편은 다시 심드렁하고 무뚝뚝한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왔다. 나의 퇴원기념 케이크, 다시 활기를 찾은 것에 대한 축하는 없었다. 아무도 나의 소소하고 자잘한 기쁨에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나는 같이 사는 이들의 수고와 작은 성취를 축하해 주는 사람을 자처한다. 매일 비슷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사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역할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케이크가 나날이 비싸져서 파뤼피플로서 유감스럽지만, 우리에겐 초코파이도 오예스도 있으니 촛불을 켜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행이라니, 그것도 위로라고 건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