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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an 02. 2024

알면 더 좋아지는 그림과 전시장

헤레디움 - 안젤름키퍼Anselm Kiefer <가을Hervst>

헤레디움과 안젤름키퍼 전시가 좋다는 소문을 들은 건 올해, 이젠 작년이 되어버린 2023년에 두 번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미술 하는 지인의 개인전과 단체전, 연극 하는 지인의 정기공연,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지인의 연주회 정도만 의리와 호기심으로 방문하는 편이었다. 마음으로는 매번 공연도 더 보러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보고, 미술관에도 가고, 새롭고 아름다운 공간에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겨우 겨우 대출기간 내에 읽지도 못 하고 반납하기 일쑤다. 그러다 제법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다른 미술 하는 언니와 안젤름 키퍼 전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걸 들었다.  좋다더라, 그런데 좀 비싸지 않니? 나한테 하는 말도 아니고 가보라고 추천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전 트위터에서 대전 여행 코스로 기차타고 대전 가서 근처 헤레디움에 들러 전시 보고 성심당 빵 사가면 딱이라는 글을 봤다. 트위터 추천이 늘 믿을만하진 않지만 여러 번 같은 말이 들려오면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게다가 슬금슬금 대전 곳곳을 유랑하듯 돌아다니겠다는 결심을 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헤레디움에 가보기로 했다.


가기 전에 가볍게 작가와 공간에 대해 검색했더니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으로 릴케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릴케의 시집을 읽고, 안젤름 키퍼와 헤레디움에 대해 조사와 공부를 충분히 하고 가지는 않았다. 가끔 여행을 준비할 때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을 찾아보고, 가기 전에 설레는 마음으로 역사를 읽어보곤 하는데 이번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서 그냥 보지 뭐. 때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뭘 모르면 보지도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여럿이 몰려다니는 것도 불편하고, 보통은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다.  


일요일 오후, 근처의 오씨칼국수에서 물총칼국수와 녹두전을 먹고 예약한 시간에 미술관에 입장했다. 참고로 동죽조개를 넣어 끓인 칼국수와 물총탕은 삼성동과 도룡점만 직접 운영한다는 오씨칼국수가 더 맛있는 것 같다. 헤레디움 근처 원동 오씨칼국수도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유명한 식당인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은 아니었다. 식당 이름이 같아서 헷갈렸다.


헤레디움은 일제시대 때 조선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세워졌던 동양척식회사 건물을 대전의 도시가스업체인 씨엔씨티에너지에서 매입하고 복원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2023년 5월에 개관하면서 <인동 100년 역사가 되다>라는 아카이브 전시를 했고, 9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안젤름키퍼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 깨끗하고 편리하고 신기한 새 것도 좋지만  시간을 품은 공간에 들어서기만 해도 압도되는 느낌이 있다. 건물의 역사와 의미를 이해할 수록, 100년 된 건물이라는 단순한 감탄을 넘어서는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더 풍부한 감상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음성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관람하지는 않았는데 동행한 친구가 자긴 어떤 그림이 왜 좋은지를 이야기해줄 때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나는 벽을 가득 채운 그림 앞에서 깊고 짙고 무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전시의 제목처럼 가을의 외로움이나 황폐함, 뭔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같은 것인 것도 같다. 나뭇가지와 잎, 길과 흙 같은 것들이 입체적으로, 다양한 기법들로 구현되어 있어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다고 했을 때 기대했을 법한 평범한 시간보다는 흥미로웠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더 풍요롭고 화려한 금빛 가을이 채워져 있었다. 한 가운데 벽돌로 낮은 벽이 세워진 설치 작품이 있었는데,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현장이자 달리 보면 재건이기도 한 벽돌이 뿜어내는 예술적인 그 무엇을 솔직히 느끼지는 못했다. 조용히 의아해하면서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여전히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와 전시장 반대쪽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깊숙히 들어오는 곳이었다. 머신을 쓰지 않아 아주 조용하고 기둥, 벽, 천장, 창이 모두 아름다웠다. 나중에 카페만 따로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카페의 아름다움은 그림의 아름다움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전시를 잘 소개한 신문기사와 정말이지 작품이 너무 좋아 강력 추천한다는 어떤 이의 후기를 읽었다. 뒤늦게 내게도 예술적인 무엇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늦은 감동도 나쁘지 않다. 입체적인 작품이라 관람객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안내를 받는다. 가까이 다가서면 전시장을 지키는 분들이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진다. 멀리 떨어지시라, 주의하시라 반복해서 안내하는 게 신경이 좀 쓰였지만 역시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관객들이 그림을 만끽 할 수 있도록 작품에 해설도 따로 붙이지 마라, 접근 금지선도 설치 하지 말라고 작가가 요구했다고 한다.  이런 늦은 이해도 역시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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