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타로 카드를 따라 그리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요일 아침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친구 오리와 그림을 그린 지 9개월이 넘어간다. 숙제로 일주일에 사람 10명씩 그리다 200명을 넘길 때쯤 다음 목표는 타로 카드를 그리는 것이 됐다. 타로 카드에는 인물, 동물, 물건, 배경 등 따라 그릴 게 많아 연습하기 좋았고 78장이나 되니 다 그리고 나면 엄청 뿌듯할 것 같았다. 예술로 프로젝트에 한 팀으로 참여 중인 친구에게 타로를 몇 번 봐주다가 타로를 주제로 뭔가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2장씩 두 달 동안 카드를 그려서 예술로 프로젝트 기간 내에 전시와 상담을 하는 ‘속셈 타로’를 기획했다. 어차피 그림 연습은 해야하는 거고, 예술로 활동에서도 티 나게 뭔가 하면 좋고, 이번 기회에 그림을 전시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계속 블로그 글쓰기만 해오다가 책으로 글을 엮어 손에 쥐는 순간의 감동이 있듯이, 내 컴퓨터에만 있는 그림을 작은 규모로나마 그럴듯하게 걸어본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부끄럽고 민망할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계획을 세우고 성실히 지키는 일, 매일 꾸준하게 숙제를 해내는 건 자신 있었다. 다짐을 실행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표다. 할 일의 목록은 정해졌다. 매일 수행해야 할 과업의 양도 정해져 있다. 주말은 쉬고 주중 5일 동안 2장씩 그리면 8주 후에 78장을 다 그릴 수 있다. 매일 꾸준히 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뿌듯함을 느껴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기 위해서는 한눈에 진척 상황이 보여야 좋다. 7월과 8월의 달력을 그리고 그림을 그린 날에 동그라미를 쳤다. 매일 타로카드로 오늘의 운세를 보기도 하고 그날 그날 마음에 쓰이는 주제로 질문을 만들어 카드를 뽑아 그렸다. 뭘 그리고 안 그렸는지 확인하면서 그려야 하니 달력 옆에 그린 카드를 체크하는 표를 하나 더 만들었다. 매일 그린 그림은 인스타그림에 올렸다.
타로 카드는 총 78장, 길 떠나는 사람으로 시작해 여사제, 여왕, 교황, 연인들, 수레바퀴, 달과 별 등 인물 중심의 메이저 카드 22장과 마이너 카드 56장으로 구성된다. 마이너카드는 완즈, 스워드, 컵, 펜타클이라는 4가지 원소로 분류할 수 있는데 각각의 원소별로 1부터 10까지의 숫자카드, 소년-기사-왕-여왕으로 이어지는 4장의 코트 카드가 있다. 가로에는 칸마다 4원소를, 세로에는 숫자와 명칭을 14줄로 넣었다. 메이저카드에는 0부터 21까지 숫자가 붙어 있고, 10을 기준으로 카드의 의미가 크게 변한다. 0은 1과 다른 의미의 시작이라 줄을 나누었다. 1부터 10을 한 줄에, 11부터 21을 다음 줄에 써넣어 세 줄의 표를 만들었다.
달력에 동그라미 친 날이 많아질수록 그린 카드 칸도 채워져갔다. 앞으로 그릴 게 여전히 많이 남아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하루 하루 한 장 한 장 그려야할 그림이 줄어드니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그림으로 표를 만들어서 성취감과 동기부여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8장의 전체 카드가 하나의 표에 다 들어가면 얼마나 보기에 좋을까. 당장 표를 만들었다. 나중에 출력해서 볼 수도 있으니 A4용지에 맞게 그렸다.
위아래로 메이저카드 22장과 마이너카드 56장을 구분했다. 이번엔 메이저카드에서 시작과 끝 2장의 카드를 따로 빼고 1-10,11-20까지 두 줄로 늘어놓았다. 마이너카드를 원소별로 구분해서 4구역으로 나누고, 거기서 숫자 1-10과 코트카드 4종을 구분해야했는데 한 줄로 만들기는 너무 길어서 먼저 숫자카드만 세로로 1-5, 6-10까지 총 8줄로 놓았다. 코트카드는 더 특별한 상징과 의미를 가지므로 10번 카드 이후에 붙였다. 지금까지 그린 카드를 해당 칸에 넣어본다. 아직 빈칸이 너무 많다.
타로카드 2장을 그리는 데는 2시간 정도 걸린다. 밤 9시나 10시에 급하게 그림을 그린 날도 많았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급하게 오늘치 그림을 그려야 한다. 표를 만들고 일주일이 더 지났지만 아직 반도 못 그렸다. 그나마 조금씩 표가 채워지는 재미로 버텨본다. 시간의 흐름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달력에 동그라미 치는 색연필의 색을 바꾸어본다. 이렇게 2주일, 두 사이클이 지나면 끝이 나긴 할 테지. 지겨워도 한 걸음 한 걸음 가본다.
한 주가 더 지났다. 이제 절반을 넘겼다. 여기까지 온 것만큼만 가면 된다. 지난 시간이 뿌듯하다. 지금껏 그린 그림을 보고 또 본다.
빈 칸이 그림보다 적어졌다. 할 수 있다.
해냈다. 2024년 7월 8일부터 8월 30일까지 39일 동안 78장의 카드를 드디어 다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