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날씨표와 기력 그래프로 상태 파악하기
2015년 9월 1일부터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그전에도 분명 일기를 썼을 텐데, 일기장을 다 모아두진 않았다. 학창 시절에 썼던 일기는 대학생 때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겨서 읽어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그것도 추억이라고 몇 년이나 물에 불었다가 마른 일기장과 편지를 가지고 있다가 겨우 버렸다. 매일 일기를 쓰기 전까지는 간단히 다이어리에 일정과 쓴 돈을 메모했고, 긴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블로그를 이용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으나 현실은 이글루스, 티스토리, 텀블러, 다음, 네이버 등 각종 플랫폼에 개설만 해놓고 쓰다 말다 했다. 그래도 여행을 갈 때만큼은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부지런히 매일 썼다. 1년짜리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도, 4년 동안 방황인 듯 여행인 듯 생활인 듯 애매하게 돌아다니며 살던 시기에도 부지런히 뭘 적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성실하게 일기를 쓰진 않았다. 2015년 8월 6일에 완주로 귀촌하고, 잠깐 친구집에 신세를 지다 9월부터 집을 구해 혼자 살았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진짜 독립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실감이 났다. 중학생때부터 자취했지만 작은 언니랑 함께였으니 혼자 살게 된 건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일기와 가계부를 매일 꼼꼼하게 쓰고 지금까지 잘 모아두었다. 새롭게 시작한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도 새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 시작만 하고 사라진 다른 블로그와 다르게 브런치에는 꾸준히 글을 쓴다.
이렇게 특별한 내용 없는 일기를 써서 무엇하나, 괴로워서 일기 쓸 힘조차 없다고 느끼던 몇 달 동안 건너뛴 적은 있지만, 그 시기를 제외하고는 매일 썼다. 2018년 이후로는 그런 시기도 없다. 바쁘거나 우울해서 일주일 정도 일기가 밀리면 대충 짧게라도 써서 채운다. 쓰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쓰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나 추억이 된다.
일기는 무선 노트와 유선 노트를 번갈아가면서 쓴다. 그림을 그리려면 무선이 좋은데, 아무래도 손 글씨를 적기에 유선이 편하기는 하다. 요즘은 표지가 예쁜 수첩, 재생지로 만든 노트, 친구가 선물한 드로잉 노트, 주간 일정표가 인쇄되어 있는 만년 다이어리 등 상관없이 쓴다. 초등학생 일기장 공책에는 날짜와 날씨 쓰는 난이 있는데, 나는 아무 표시가 없는 노트를 쓰기 때문에 날짜만 적고 바로 본문을 시작한다. 날씨 적는 걸 매번 까먹어서 아쉽다. 대신 일기를 다 쓰고 내 마음의 날씨를 -3에서 +3점까지 점수로 표시한다. ‘-3은 망했다. -2는 되게 별로인 하루. -1은 쫌 그런 날. 0은 보통의 날. +1은 좋은 편. +2는 진짜 좋아. +3은 아름답고 고마운 날.’
마음날씨표를 쓰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인데 트위터에서 ‘무드트래커’라고 오늘의 기분을 색깔로 표시하는 걸 보았다. ‘놀랍고 환상적인 날, 좋고 행복한 날, 보통의 날, 우울하고 슬픈 날, 피곤하고 지친 날, 스트레스가 많은 날’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내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많으면 피곤하고 우울하거나 슬퍼지고, 슬픈 날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정적인 감정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구분하려다가 더 피곤해질 거 같아서 긍정과 부정의 기운을 점수로 표시하기로 했다. 2019년에는 5점 척도로 ‘+2 아름다운 날, +1 좋은 날, 0 보통, -1 별로, -2 정말 싫다’로 표시했다가 너무 폭이 좁은 것 같아 2020년부터 7점 척도를 사용한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떠올려본다. 행복했나, 보통이었나, 힘들었나.
세상에! 5년이나 마음날씨표를 썼다. 우선 1년 동안 꾸준히 하루하루를 기록했다는 게 뿌듯하고, 모든 칸이 알록달록 특별한 의미로 채워져 아름답다. 해가 지날수록 힘든 날이 줄어드는지, 어느 계절에 많이 힘들어하는지 대략적인 경향성이 보이기도 하고, 이 고통과 괴로움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구나, 힘든 날과 좋은 날이 번갈아 오는 구나,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정확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달에 한번 말일에 월말정산 하는 기분으로 일기장을 죽 보면서 그날 적어놓은 마음의 온도를 마음날씨표에 한꺼번에 색칠한다. 그때 보면 힘들어서 죽겠다고 생각했던 날이 내가 느낀 것만큼 아주 많지는 않다. 하루하루는 고통스럽지만 조금 멀리서 보면, 한 달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나쁘지 않은 달이 많았다. 그렇게 인생을 배워가는 거라는 생각도 한다. 이렇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내 하루를 보는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에 전 같으면 0점을 주었을 텐데, 이제는 이런 하루가 참 감사하고 고맙고 행복하다는 편안한 마음이 들어 +1점, 어떤 날은 +2점까지도 주게 된다. 마음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이 줄었다. 아침부터 내내 안 좋은 일들이 생겨서 마음이 힘들었지만 저녁에 다정한 친구의 위로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날은 특별함을 기억하기 위해 -3점과 +3을 반반 나눠서 적거나, 이런 게 좋은 인생이지 싶은 마음에 +2로 적는다. 몇 점으로 기록할 것인가는 어차피 나의 기준과 판단과 편집이 들어가는 일이니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기로 한다.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다. 작년부터 어지간하면 +2~+3점을 주는 바람에 다 좋은 날이 되어간다. 이제는 어떻게 좋은지에 집중하기 위해 +5점까지 긍정부분 지표를 늘릴 예정이다.
글을 쓰면서 과거 일기와 기록을 뒤져보다가 ‘활력그래프’를 발견했다. 그럼 그렇지, 매일 일기를 쓰지 않던 시절에도 어떻게든 기록과 정리를 하고 있었다. 월말결산으로 사건이나 기분, 컨디션 등으로 활력을 기록해 두었다. (-5점부터 +5점까지 11점 척도였군.) 언제부터? 2011년부터. 세상에!
2011년은 회사를 그만두고, 아마 나는 회사에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실험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살기 시작한 때였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처럼 국내에서도 돌아다니면서 일하고 최소한으로 돈을 벌고 쓰면서 살았다. 시간과 돈과 체력과 기분 관리를 회사원일 때보다 능동적으로 해내야했는데 잘하지는 못한 것 같다. 다행히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롭냐, 우울하냐, 나는 왜 이러냐, 생각하고 고민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점수를 주고 그래프로 그려놨다. 지나고 보니 재미있구나. 요즘도 영 좋지는 않은데 지나고 나면 또 재미있겠지. 나중에 보게 최대한 많이 자세하게 잘 적어둬야지. 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