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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Oct 24. 2024

연재 마감 일정표

3주마다 매번 다른 주제로 쓰기 위해 연재 원고 마감하는 법

’연재’는 잇다을 연連에 실을 재載를 쓰는 한자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신문이나 잡지에 연이어 계속 글을 내보인다는 뜻이란다.  요즘에야 종이에 인쇄하지 않고 온라인상으로만 유통하기도 하니 인터넷 연재라는 말도 가능하다. 종이 신문 보는 사람 거의 없듯, 웹진이나 홈페이지 등 온라인 플랫폼이 오프라인보다 훨씬 활발하기도 하다. 웹툰 연재라는 말은 써도 웹드라마 연재라는 말은 없는 걸로 봐서, 글이나 만화 같은 2차원 콘텐츠에 어울리는 표현 같다. 연재가 무슨 뜻인지, 어느 지면 혹은 매체에 공개되는 것만이 연재인지 확실히 하려고 사전을 찾아본 건 아니었다. 연재의 의미는 ‘잇달아’ ‘계속’ 낸다는 점에 있다. 연재 중인 이는 일간, 주간, 격주간, 월간, 격월간, 계간 등 주기에 맞춰 한 번씩 마감을 하고 또 한다. 다음 마감은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금방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마감을 하고 나서 바로 다음에 뭘 쓸까 고민해야한다.

완주에 살던 2017년쯤 월간 마을 신문 <완두콩>에 글과 그림을 2년 넘게 연재했다. 코너명은 완주 곳곳을 걸어 다닌다는 뜻의 <완주행보>였다. 그때그때 동네 풍경이나 내 주변 일을 소재로 삼아 가볍게 사는 이야기를 썼다. 지난해 같은 계절에 한 이야기를 또 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목록을 살피긴 했지만 표로 정리할 필요까진 못 느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아직 가보지 않은 곳, 경험하지 않은 것이 많았고,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터라 모든 일에 생생한 감정을 느꼈다. 쓸 말이 계속 있었다. 감탄하고 두려워하고 신기해하며 완주 생활에 대해 술술술 써나갔다.


2021년 가을에는 <귀촌하는 법>을 출간하고 2달 동안 <조선일보>의 <일사일언> 코너에 주간 연재를 했다. 나름 영향력이 있는 일간지인 데다 귀촌 에세이를 쓴 저자에게 시골 생활을 주제로 의뢰한 원고이니 <완주행보>를 쓸 때보다 긴장했다. 신문의 독자가 대도시에만 있는 게 아닐 텐데, 우리 동네보다 깐깐할 것 같은 미지의 독자와 서울의 편집부에 잘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야 늘 있었지만, 이때부터 글감을 찾거나 영감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안 가본 동네에도 굳이 가보고 더 깊고 넓게 오래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연재 기간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거기서 연재해봤다고 말할 수 있어서 엄마한테는 조금 면이 섰다.


2022년부터는 드디어 나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구독형 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간 이슬아>의 대성공 이후, 많은 작가가 매체에서 청탁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구독자를 모아 메일로 글을 보낸다. 생산자 직배송 콘텐츠 서비스다. 만화, 음악 등 장르도 확장되었다. 그런데 나는 한때 지나가는 유행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글이 유통되는 경로는 책이거나 최소한 책에 준하는 매체여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메일이라는 매체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특별한 콘텐츠여야 했다. 남들 한다고 다 하기는 싫고,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싫고, 같은 방식이라면 뛰어나게 잘해야 하는데 잘할 자신은 없고, 남들하고는 달라지고 싶고, 그러면서도 잘하고 싶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다 보면 끝도 없다. 그러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구독자가 몇 명이라도 상관 없고, 글의 완성도고 뭐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순간, 오직 쓰기만이 필요한 순간을 맞닥뜨렸다. 오늘의 불안을 잠재우고 내일의 용기를 내기 위해 써야만 했다. 당장 쓰기 시작했고 계속 쓰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마감을 정했다. 혼자만의 약속이나 일기보다는 독자를 상정하는 쓰기, 공개적인 선포가 더 힘이 세다. 나는 이사갈 집을 알아볼 겁니다 라고 어제 쓰고, 막 집을 보고 왔습니다 라고 오늘 쓰는 식이다. 구독자를 모아 매일매일 <이사 이야기>를 써서 보내며 겨우 이사를 치러냈다. 뉴스레터 연재의 힘은 마감과 독자가 한꺼번에 생기는 데 있었다. 이후 badacmoves라는 글배달 서비스를 이어갔고 <오늘 또 미가옥>을 또 썼다. 2023년에는 <예전엔 안 이랬는데>를, 2024년에는 <소탐대전>을 쓰고 있다.  시즌이 더해질 수록 구독자가 줄어서 지금은 딱 서른 명,  구독료도 책정하지 않았다. 후원하듯 보내고 싶을 때 보내달라고 계좌번호를 공개해 두었더니 가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게서 구독료가 입금된다. 구독자가 줄어들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할 것 같지만 당장은 미뤄둔다. 꾸준히 쓸 수 있어서, 마감을 정할 수 있어서, 게다가 메일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 중 몇몇은 읽어줄 테니 감사하다. 지금은 그것으로 족하다.


<소탐대전>은 대전의 가볼만한 장소를 찾아다니면서 내 맘대로 편하게 쓰는 동네 여행기다. <완주행보>랑 비슷한데 ‘유유자적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사는 나’의 이야기보다 내가 ‘대전을 작게 탐험’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추후에 대전시의 문화관광 부서나 로컬콘텐츠 관련 기관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처음부터 조금 꾀를 부렸다. 그랬더니 내 맘대로 어디든 가고 아무거나 해도 이야기 거리가 넘쳐나던 때와 달리, 기획력을 발휘해서 소재를 선별하고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나로 살며 내가 생각하는 게 글이 되던 때와는 다르다. 게다가 직접 그린 그림을 한두 장 덧붙이고 있어서 그리기 좋은 자료 사진도 꼭 있어야 한다. 뭘 쓸지, 어떻게 그릴지, 자연스럽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매주 아주 골치가 아프다.


처음에는 내가 즐겨 가는 장소 위주로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동네의 단골 식당, 좋아하는 공원, 편히 이용하는 시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단상을 적으려고 했는데 글을 모아 책을 낼 생각을 하니 식당, 카페, 미술관과 박물관 같은 문화예술 공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원 등 다양한 성격의 공간이 골고루 포함시키고 싶어졌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표를 그려야 한다.


 아이템이 몇 개 모이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구분할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많고 중요한 건 맛집, 단골 식당은 가장 먼저 단독 카테고리를 차지한다. 카페와 서점은 왠지 비슷한 느낌이라 한 항목으로 분류했다. 추후 아이템이 더 많아지면 세분화시킬 예정이다.


우선 글 20개만 모이면 얇게나마 책으로 만들려고 한다. 대전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에 공모하여 제작비도 확보했다. 만들어 두면 어디라도 쓸 데가 있겠지. 지역도 고려하고 싶지만 지금은 내가 사는 중구가 제일 많으니 위치별 분배는 이번엔 모른 척 하고 이후에 <소탐대전-동구/서구/중구/대덕구/유성구> <소탐대전-전통시장> <소탐대전-독립서점> <소탐대전-공원> 식으로 주제별, 지역별로 확장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

주간 연재는 바삐 돌아오기는 해도 마감을 잊어버릴 걱정은 없는데, 격주 혹은 3주에 한 번 연재할 때는 마감일을 잘 챙겨야 한다. 2022년 10월부터 디지털 뉴스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의 <사까마까>라는 코너에서 1인 가구 생활정보에 대한 글을 쓴다. 처음엔 격주 연재였다가 필진이 한 명 더 늘면서 3주에 한 번 마감이 돌아온다. 일요일에 글이 공개되므로 늦어도 목요일까지는 마감을 해야하고, 마감이 있는 주에 담당자가 월요일부터 원고는 언제 주실거냐, 뭐에 대해 쓰실거냐 물어온다. 나는 이런 알림이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계속 연락을 준다. 그래서 요즘은 월요일 오전에 미리 보내버린다.


처음에는 한 코너에 필진이 여럿이라 소재가 겹치지 않도록 구글 스프레드로 미리 글의 내용을 서로 공유했는데 담당자가 여러번 바뀌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필진은 2명이 되었는데 여전히 연재 주기는 3주에 한 번이라서 마감일과 게재일이 헷갈린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나 혼자라도 표를 만든다.



개제일을 기준으로 마감일은 정리한다. 원고를 작성할 때와 보낼 때 원고 번호를 적고 있으니 회차도 기입한다. 역시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건 무슨 내용을 쓰는가다. 내가 쓴 원고와 실제로 편집자를 거쳐 공개된 원고의 제목은 다를 때가 많은데, 발행 이후 꼼꼼히 제목을 옮겨오는 수고는 생각날 때 하기도 하고, 그냥 두기도 한다.


2024년의 새 필진은 ‘음식’이라는 고유의 주제로 글을 쓰는 것 같으니 나는 그 분야를 제외한 모든 1인 가구의 생활에 대해 쓸 수 있다. 그런데 작년에 쓴 걸 또 쓰면 안 되니 그동안의 글목록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야 하고, 시의 적절한 글을 써야 하니 게재일이 언제인지 보면서 원고의 아이템을 대략적으로 정하고 나서 마감임이 임박하면 구체화한다. 게재일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그 기준으로 다음달에 원고료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번 달엔 두 번 발행이구나, 지난달보다 원고료가 두 배 들어오겠군, 하면서 조금이나마 기뻐할 수 있다.


<사까마까> 원고의 주제가 어렵지는 않다. 1인 가구로 살아 왔고, 살고 있으니, 내가 경험하는 생활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 그런데 편하게 쓰던 원고도 1년 반이 넘어가니 쓸 게 없는 느낌이다. 계절별로 챙길 것 위주로 소재를 찾았더니 뻔한 것만 떠오른다. 뭐야, 정신이 빠져가지곤! 빨래, 정리정돈, 청소, 생활용품 추천, 집수리, 건강 관리, 돈 관리 등 할 얘기는 무궁무진 할 거다. 두루뭉술 적당히 좋은 말 쓸 생각말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인들에게 들은 진짜 생활의 이야기, 생생한 우리 이야기를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더 써야겠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가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깊게, 오래, 생활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밍밍하고 슴슴한 음식의 맛은 여러번 먹어보고 자극적인 맛에 적응해 무뎌진 미각을 되살려야 느낄 수 있다. 나와 주변, 평범한 생활인의 삶을 찬찬히 관찰하고 오래오래 생각하며 글감을 찾아야겠다. 물론 표를 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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