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dac Oct 24. 2024

시간 일지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 활동 시간 기록

보통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예술로 사업에 참여하는 동료 예술인들을 만난다.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 - 예술로’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10년째 예술인과 사회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예술가의 활동비 즉 인건비를 지급하고 예술가와 함께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 기업 또는 기관과 예술인을 연결한다. 대전에서는 대전문화재단이 주관하여 지역의 기관과 예술인을 연결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비용이나 네트워크 없이 지역의 예술인과 무언가를 도모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안 하던 서류 업무나 회의 참석 의무 등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성과를 장담할 수 없어서 굳이 참여를 크게 원하지는 않는다. 영리 기업에서는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한 번 하고 두 번 다시 참여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비영리 조직에서는 예술인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하지만 부과되는 업무가 많아지니 모든 단체가 환영하진 않는다. 기업과 기관에게는 크게 매력적인 사업이 아닌 셈이다.


반면 예술인에게는 인기가 많고 경쟁률이 높다. 주최 기관에서는 제발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사업의 취지를 강조하지만 대다수 예술인에게는 5개월 동안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다는 게 가장 큰 참여의 이유다. 한 팀으로 구성된 동료 예술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혼자라면 못했을 작업을 함께 도전하고 시도해본 다는 점에서 본인의 예술 세계에 자극과 영향을 받는 게 두 번째 이유 정도가 될까, 물론  ‘사회에서 다양한 예술직무 영역을 개발하여 예술인의 사회적 가치를 확장’한다는 사업의 원래 취지에 맞게 예술인만의 분리된 예술 생태계를 넘어 사회에서 활동하고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실 모든 일에 단 한 가지의 이유만 있지는 않은 것처럼 나 역시 활동비의 달콤함이 제일 크고, 새롭게 지역의 예술인을 사귀는 재미와 지역 내 네트워크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참여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예술인들끼리 엄청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예술인과 기업이나 기관 쪽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다른 분야가 만났으니 사용하는 언어도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작년에도 올해도 함께 작업하기 좋은 팀원을 만나 즐겁게 활동한다. 기업의 담당자도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예술인을 존중해주어 어려움이 거의 없다.

예술로에 참여하는 예술인은 월 10일 동안 30시간을 활동하고 세전 120만원을 받는다. 매달 활동 증빙이 가능한 사진과 활동 내용을 첨부한 활동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활동에는 다른 예술인들과 함께 만나는 협업 활동과 혼자서 작업하는 개인 활동이 있는데, 협업 활동은 최소 5일, 15시간 이상이 필수다. 나머지 시간은 개인 활동을 하면 된다.


협업 활동을 단기간에 몰아서 하지 않도록 5일 이상이라는 조건도 꼭 채워야 한다. 그렇다고 꼭 하루에 세 시간씩 열흘 동안 뭘 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어떤 날 회의가 길어지면 5시간 짜리 활동 내역이 생긴다. 협업 활동과 개인 활동을 같은 날에 하는 경우에는 활동 시간만 인정되고, 전체 구성원이 모인 협업 활동을 먼저 하고 만난 김에 그 중 일부와 협업 활동을 하면 협업 일자는 하루이고 활동 시간은 그만큼 늘어난다. 협업 활동을 5일 이상 하게 되면 개인 활동을 그만큼 줄여도 된다. 이런 식으로 활동 일자와 시간을 맞추는 게 복잡하니 계산하기 좋게 3시간씩 10일 동안 협업활동 5일, 개인활동 5일로 나눠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번 만나면 금방 서너 시간이 넘어가니 세 시간만 고집할 수 없다. 게다가 필수 조건으로 모든 예술인이 모이는 협업활동은 최소 1회, 기관 담당자까지 모이는 협업 활동도 최소 1회, 그 둘은 같은 날이어서는 안 된다. 챙겨야 할 게 많다. 그래서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엑셀로 만든 표다. 활동 일자와 시간을 활동별로 구분해서 잘 정리해두면 된다.

표는 활동 일자 연번, 시작 시간, 종료 시간, 소요 시간, 장소, 참여자, 활동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개인 활동과 협업 활동으로 나누고 협업 활동 먼저 정리한다. 넋 놓고 있다가 월말에 몰아서 개인 활동 시간을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면 필요한 날 수보다 남은 날이 적을 수도 있으니 미리 미리 활동 시간을 챙겨둔다.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는 특정 어플을 통해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활동 시작과 끝에 찍어 첨부해야 한다. 추측하건데 처음엔 사진만 찍다가 같은 날 여러 날에 만난 척 증빙 사진을 찍는 부정 사례가 많아지니 시간이 기록되는 사진으로 규정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휴대폰의 시간 설정을 바꾸어서 사진을 조작하는 경우가 있었는지 시간을 절대 수정할 수 없는 특정한 어플로 찍은 사진만 인정된다. 작업을 하고서고 사진을 찍지 않으면 활동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작업을 하지 않고 사진만 찍어서 활동을 챙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더더욱 한눈에 볼 수 있는 활동일지가 필요하다.

그 날의 활동 내용도 간략히 적어둔다. 그래야 나중에 활동 보고서를 작성할 때 편하다. 미리 사진만 찍어 챙겨둔 개인 활동은 협업 활동 일자와 시간이 충분하면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표에는 시간 계산 함수와 합계 함수를 걸었다.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소요 시간이 계산된다. 몇 시간 몇 분으로 정확하게 나와야 해서 찾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계산하는 함수는 못 찾아서 시간을 적을 땐 24시간 기준으로 써야 한다. 협업 활동 합계를 먼저 내고 부족한 시간을 개인 활동으로 채운다. 하루에 몰아서 할 수 없으니 시간과 일자를 적절히 나눠서 총 10일을 채운다. 이미 챙겨 놓은 개인 활동이 있으니 시간이 남아도 새로 개인 활동 사진을 만들지(?) 않고 총 활동 시간이 넘으면 넘는대로 기록한다. 2023년 활동 일지 파일이 있으니 복사해서 사용하는데 매월마다 별도의 시트로 관리하고 해당 월의 시트를 가장 앞으로 둔다.


어차피 정리해야 마음이 편해서 팀 회의록도 내가 작성한다고 했다. 작년에는 이 표를 너무 자랑하고 싶고, 활동 시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보기 편할 거 같아서 협업 활동 부분만 보이는 표를 따로 만들어서 팀원들에게 공유했는데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올해는 안한다. 그냥 혼자 봐도 좋다.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만 넣으면 총 소요시간이 딱딱 나오니까 얼마나 재밌어. 한 줄 채울 때마다 합계도 딱 나오니까 얼마나 신기해. (물론 활동 일지를 올리는 웹페이지에서도 된다. 하지만 한눈에 보이진 않는다고! 내 표가 훨씬 예쁘다.) 끝.



이전 04화 업무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