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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니타 Oct 07. 2017

갑자기 공허하고 쓸쓸해서 쓰는 글

본가에서 돌아온 어느 연휴 아침날

전날 밤,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한 부담과 고민, 잡념을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본가에 내려갔다 온 느낌이었다.

엄마가 해주는 어딘가 조금 빈 듯 하지만, 슴슴하게 맛있는 밥을 먹고, 그 끝은 투닥거림일 지라도 오로지 내 편을 들어주는 가족들과 수다를 떨고, 이제는 내 방도 없는 본가지만 마루에서 요를 깔고 자는 잠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확인 한 건, 분실한 택배가 혹여 돌아오지 않았을까 문 앞 구석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아. 역시 분실된게 맞나보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인지 모를 스트레스가 밀려오면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정확히는 현실이 아니라 그냥 놓아두고 온 짐을 다시 내 등허리에 으차. 하고 짊어진 것 같달까. 더불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해서 재빠르게 집을 치우고 짐을 풀었다. 익숙한 향의 샴푸와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고 늘 바르던 수분크림을 꼼꼼하게 얼굴에 얹었다. 건조함이 덜한다 싶을 때 즈음 되서야 반갑다고 계속 애옹대던 우리집 고양이를 한참 예뻐해주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침 일곱시면 알람 없이도 자동으로 떠지는 눈에 억지로 다시 눈을 감아 세시간 정도를 더 잔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익숙한 향의 커피를 내리고, 본가에서 가져온 에어로치노로 두유를 데웠다. 그릇에 야채와 과일 빵을 가득 담아서 커피와 함께 자리에 앉아 먹고 있으려니, 정확히 서울로 돌아온지 12시간만에 정신없이 붕붕 떠다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휴가 절반이나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보게된 티비에서는 명절을 맞아 특별 편성된 효리네 민박이 전편 방송되고 있었다. 민박집 손님들이 북적이다가 조용해진 틈을 타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도중 흘러나오던 자우림의 위로 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상순은 ‘(지금 우리 상황이랑) 딱이네’ 라고 이야기 했다.


누군가 울면 누군가 웃고 누군가 오면 누군가 가고 위로하고 싶지만 딱히 생각이 안나

누가 있으면 누구는 없어 나를 잊으면 넌 기억되고 그런거 그런거

누군가 울면 누군가 웃고 너를 반기면 나는 떠나고 그런거 그런거


평소 몽환적인 음색의 자우림 노래를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함께 가사에 젖어 있자니 ‘딱이네’ 라고 이야기 했던 이상순씨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나긴 연휴를 보내러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지금은 잠들어 버린듯한 고요의 도시 서울. 이곳은 나의 집이다.

여기에 비로소 바빴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기분이 이상해져서, 연휴 전에 본가에 내려가기 귀찮다며 한숨 쉬었던 몇일 전의 내가 조금 웃기게 느껴졌다.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나의 터전으로 삼아 일상이 벌어지고 있는 이 곳에서의 나는 항상 외롭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만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면 위로 받고 싶어지는 자기 연민의 기분에 쉬이 빠지게 된다. 한동안은 애써 차곡차곡 마음을 다져 놓은 것이 무너질까봐 사람들을 새로 만나는 것을 꺼리고 심지어 가족들과도 연락을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점차 인간관계와 혼자의 시간을 분리시키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면서 조금씩 다시 연락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폭이 매우 좁은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 노래가사가 딱이다. 누군가 있으면 누군가 없게 되고 누군가에게 잊혀질때 쯤이면 누군가에겐 새롭게 기억되는. 그것이 바로 이 도시의 관계가 아닐까. 가족들을 떠나왔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에겐 반겨지는.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모처럼 집에서 직접 해먹을 수 있는. 다같이 즐겁게 외식하며 웃고 떠들수는 없지만, 모처럼 휴무를 받은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조용하게 수다떨 수 있는.



혼자 산다고 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고, 더불어 산다고 해서 마음이 충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빠듯하게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가 오롯이 혼자가 되었을 때에 밀려드는 공허함을 다스리는 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늘 내 편에 서서, 혹은 그 반대의 편에서 위로해주고 조언해주던 엄마 없이 다시 모든 부담과 짐을 어깨에 지고 스스로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도 익숙해지는 데에 더 많은 나날들이 필요하겠지.


오늘도 여전히 나는 혼자여도 괜찮은 방법을 터득해가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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