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 여성은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페미니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어요. 가부장제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랬을 때 남편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끝까지 모른 체한다면 그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근본적인 문제거든요.”
-책 요즘것들의 사생활 (저자 : 백구부부, 이혜민저) 中에서-
외국의 사례와 다르게 우리나라 부부관계가 악화되는 제일 큰 요소 중의 하나로 바로 고부갈등 이다. 시어머니 때매 힘들어하고 하소연이 결국 험담으로 까지 번지는 친구와 직장동료를 보면서 처음에는 고부갈등의 근원은 명백히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시댁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시부모님의 억지와 괴롭힘으로 아내가 힘들어 할 때 남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 졌다. 엄마와 아내의 갈등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고부갈등의 원인은 ‘시’집이 아니라 남편의 어리석음, 방관자적 태도, 그리고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하고 마마보이처럼 부모 뒤에 숨어 있는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좋게 만나던 남자가 있었다. 사소하고 다투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연애관계를 흔드는 문제는 바로 남자의 부모님과 남자의 관계가 비정상적 이라는 데 있었다. 상식적인 개념의 ‘효자아들’이 아니었다. 출근하는 아들에게 입을 내밀며 뽀뽀를 해달라는 엄마와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남자는 딴 세상, 그들만의 리그에서 행복해 했다. 남자는 아들이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 변했다며 “네 여자친구랑 행복하게 잘 살아라. 우리는 더 이상 너를 볼 이유가 없다. The End” 라고 카톡을 남기면 단톡방을 나가버리는 부모로부터 황당한 문자를 받고 극도로 불안해 하며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모님이 전화기를 꺼놓고 받지를 않자 나를 향해 분노하기 시작했다.
“네가 우리 부모님과 나 사이를 다 망쳐 놓았다. 내 인생에서 사라져 달라. 나는 한번도 부모님하고의 관계가 나빴던 적이 없다.”
나는 여자친구 편을 든다며 부모님의 태도보다 부모에게 손절 당할까봐 두려워 하고, 부모님을 향해야 하는 절망과 분노가 나를 향해 치닫는 걸 몇 번을 더 겪은 다음에야 마땅한 수순처럼 우리의 연인관계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는 끝까지 본인이 얼마나 효자인지를 나에게 강조하며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걸 극도의 죄악으로 여기는 남자였는데 자기의 부모에게 조차 정신적인 독립이 되어 있지 않은 남자와 만약 결혼을 강행했거나 결혼 이후에 이런 고부간의 갈등과 마마보이 기질의 남자임을 알았다면 파탄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조언을 타인에게는 아주 쉽게 해대면서 정작 나는 내가 마마보이 병에 걸린 한 남자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다음은 취준생 때 만나서 결혼 지 7년 차 된 승준/유라 부부의 결혼 파탄 이야기 이다. 아래의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당신은 유라의 입장에 있거나, 승준 혹은 이 둘의 중간 어느 곳에 어정쩡하게 위태로운 밧줄에 매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라와 승준, 둘은 동갑내기 같은 학번이다. 취준생 시절 스터디모임에서 만나서 비슷한 시기에 취업에 성공하면서 둘은 서로를 더욱 천생연분 이라고 여겼다. 양 쪽 부모님의 축복 속에서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전부터 유라는 사랑으로 넘쳐나는 승준의 부모님과 승준의 관계가 마냥 좋아보였다. 애정표현이 인색한 가정에서 자란 유라는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라는 대화와 카톡을 수시로 주고받는 승준의 가정을 보며 부러우면서도 신기했다. 또한 막연하게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아들에게 사랑을 쏟는 아빠일까 내심 기대를 했다.
양가의 경제적인 도움 없이 월세로 신혼 살림을 마련했다. 남들처럼 경제적 지원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는 친정 부모님과는 달리 시댁에서는 그저 장성한 아들의 결혼을 대견하게만 바라보았다. 여기까지는 유라도 단순한 집안의 가풍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유라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지방에 계셨기에 육아에 대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데에서 유라와 승준은 유라의 경력단절로 의견을 모았다. 맞벌이와 외벌이 모두 장단점이 있었지만 비록 경력이 단절 되고 수입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엄마의 사랑을 오롯이 쏟아 붇는 다는 점에서 모두를 위해 좋은 결정이라고 믿었다.
신혼 때처럼 달콤하진 않았지만 버거운 현실에서 아이는 둘 사이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증표임에는 분명했다. 살림이 빠듯해지면서 사랑한다는 말보다 돈에 대한 잔소리가 늘어갔고 자주 깨서 우는 아니 신생아 때문에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뭐 대한민국의 여타 다른 부부와 크게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유라 입장에서는 뭐든 도와 주시려는 친정 부모님과는 달리 손주에게 옷 한 벌 사주지 않는 시부모님에게 좀 섭섭함을 느꼈다. 외벌이 하는 아들 승준에 대한 걱정과 염려만 잔뜩 늘어놓은 채 며느리인 유라의 가사노동과 육아는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승준과 자주 다퉜다. 승준의 부모님이 매달 30만원씩 용돈을 요구하면서 유라는 인내심이 폭발했다. 그제서야 결혼전에 승준의 부모님이 아무런 노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 유라의 친구들이 결혼을 재고 하라고 했던 잔소리가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됐다. 문제는 부모님의 이런 강압적인 효도 강요에 대해서 승준이 아무런 불만 및 중재자가 되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승준의 부모님에 대한 극진한 효심에 유라는 점점 지쳐갔다. 남편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하니아이가 3살, 4살이 될 때까지 지속되는 각방쓰기는 물론이거니와 잠깐씩 스치는 스킨십 마저도 거부했다. 농담처럼 맘카페 회원들끼리 ‘이번 생은 글렀네요’ 라고 말을 하면서 버텨내고 있었다.
유라는 무엇보다도 승준의 부모님에 대한 과한 효도와 충성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무엇을 요구하던 절대 거절하지도 못했고, 본인이 알아서 적당히 커트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어보였다. 부모님의 계속 되는 금전요구에 힘들어 하며 유라를 붙잡고 하소연 하지도 않았다. 입을 꾹 다문 채 암묵적으로 부모님 의견에 동의를 표시하는 것만 같아서 유라는 꼭 3:1로 힘겹게 혼자 싸우는 것만 같았다.
승준은 입장은 또 달랐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랑 외동 아들 로서 연로하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장인 어른과 장모님에 대한 생각 역시 승준의 부모를 대할 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은퇴하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매달 용돈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 버겁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승준은 부모님에 대한 효와 장손에 대한 의무를 강요 받으면서 컸기에 부모님의 태도에 딱히 문제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마다 짜증을 내는 유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술과 담배를 줄이면서 본인의 용돈을 줄이는 것으로 유라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승준은 유라가 부모님, 특이 자기의 어머니를 몹시 싫어하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일일이 신경쓰면서 상처 받는 게 안타까웠다. ‘우리 어머니는 그냥 생각 없이 하신 말인데... 다 우리 부부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라고 받아쳤더니 어머니 편을 든다면서 싸잡아서 욕을 해댔다.
분명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돈을 벌고 있는데 유라로부터 어떤 수고와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승준과 유라는 서로 잘 쳐다 보지 않게 됐다. 대화도 한 두 마디 이상은 주고 받지 않았으며 단 둘이 있는 게 어색할 지경이었다. 승준은 이제 집 ‘안’에서 보다 ‘밖’에서 더 삶의 활력과 안정을 찾고 있었다.
승준과 유라의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3년 쯤 더 지나서 승준은 다른 여자를 만났고 유라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유라는 이혼소송 및 상간녀 소송을 진행했고 그 둘은 그렇게 혼인파탄 인정 되어 남남의 길을 걷게 됐다.
실제로 3040 부부들에게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혼인 파탄의 배경이 되는 얘기다. 법적으로만 놓고 보면 유책 사유가 승준에게 있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이미 깨져버린 항아리를 두고 누가 깼냐의 시비를 가리는 건 항아리의 복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위 같은 사례는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승준처럼 외도를 저질렀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혹은 외도가 발각됐을 경우와 아직 아내가 모르고 있는 상태 쯤으로 정체되어 있을 뿐이다. 고부갈등이 시발점이 되어 부부의 싸움이 잦아지고 이는 결국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불통을 낳았으며 여기서 이미 결혼관계는 끝이 났다. 억지로 아이가 더 클 때까지 연장해 나갈 것인가 외부의 요인으로 파탄의 시기를 앞당겨 진 것인가 즉,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차이만 가져올 뿐이다.
승준/유라 부부의 문제는 외도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이 시작될 때 소극적이고 방관적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았던 승준의 태도가 유라와의 관계에서 불화를 낳았고 이 사소한 씨앗이 그를 외도로 내몰았으며, 그렇게 면접교섭권을 통해서만 자식을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초례한 것이다.
부부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상황에 따라 가족 관계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었다. 승준의 경우 그게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승준이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더더욱 결혼과 동시에 승준과 유라가 만든 가족을 첫째로 두어야 했다. 승준의 어머니는 아들을 제대로 사랑한다면 성인이 된 이후 아들이 본인의 선택한 여자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놓아줄 수 있었어야 했다.
승준 어머니가 아들에게 집착하고 본인이 살아온 효의 가치관을 아들 며느리에게 강요할 때 승준은 어머니의 집착과 대리효도가 부부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그러나 심지어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지속적인 요구 및 효도에 대한 의무로 인해 유라가 고통 받는 다면 누구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야 할지 승준만 몰랐던 것이다. 남편과 아버지로써 가정을 지켜 냈어야 했다. 부모님께 이제는 당신들의 아들이기에 앞서서 한 여자의 남자이고 아버지 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인지 시킴으로써 유라를 지켜내고 안심 시켜야 했다. 만약 승준이 그런 ‘가장’의 노력을 보였다면 시부모님에 대한 유라의 적대심은 많이 줄어들 수 있었고 이렇게 불소통의 부부로 파탄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로 살다보면 크고 작은 당면 과제들이 놓이게 된다. 사소하게는 오늘 저녁 설거지를 누가 하냐의 문제부터 양가 부모님에 용돈을 얼마 드려야 하는 문제까지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부부사이가 소원해진 여러 가지 계기가 있을 것이다. 야금야금 무너지는 부부관계를 여러 불협화음 중 잔가지를 들어내고 들어보면 결국 돈과 성(性)문제 두 가지가 수면 위에 떠오른다.
시댁 부양에 대한 입장 승준의 무능한 대처와는 별개로 유라가 간과한 포인트가 있다. 남편인 승준은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외벌이로 혼자 가정의 경제 써포트 100퍼센트를 책임지고 자발적으로 용돈까지 줄여가며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은 분명 ‘승준-유라-아이’의 트라이앵글로 완성되는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즉, 경제 가장으로서의 묵묵한 아내의 인정이라는 당근 없이 가정불화, 잔소리라는 채찍의 체인 속에서 외도라는 무책임한 선택을 해 버린 것이다. 법적인 파탄의 책임은 승준에게 있는 게 분명하지만 유라 역시 드러낼 수 없는 파탄난 가정의 책임 소재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남편에 대한 사랑 없이 집에서 아이의 엄마로써만 존재해 왔지만 승준의 외도 문제가 겉으로 드러날 경우 유라는 갑자기 ‘정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피해자’로 포지셔닝 한다. 남편을 사랑하고 헌신하지 않았다는 윤리적인 지점에서는 유라 역시 법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 뿐 서로가 가해자 임과 동시에 피해자 이다. 이혼 소송에서 승소 했을지라도 한 가정이 끝났다는 점, 그리고 상처받는 아이가 있다는 점에서 결국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명백히 이해할 때, 이혼 위기의 골든 타임을 놓친 유라 역시 이혼의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