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important thing a father can do for his children is to love their mother.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Theodore Hesburgh
만약 아이가 없는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 한 쪽이 외도를 저지른 걸 알게 됐다면 어렵지 않게 ‘이혼’이라는 결론에 도달 할 것이다. 한 번 바람 피운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바람피운 사람은 없다는 속설을 정설로 삼을 수도 있고, 위자료와 재산분할 정리로 양 쪽 다 새 출발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라는 자기위로를 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나쁘지 않을 것이다. 길고 긴 인생에서 부부관계를 해치는 치명적인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에게 굳이 용서 하고 심리 치료를 받고 다시 관계회복을 위한 에너지를 쏟을 필요까지 있을까 의문을 갖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부 사이의 아이의 존재 유무는 향후 부부의 존속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사실이다. 이는 부부가 서로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며 혼인 관계를 지속시킬 대단한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더군다나 경제력이 없는 전업주부가 이혼을 망설이는 이유에는경제적 자립성이 없다는 이유와 함께 아빠 없는 아이를 만들 수 없다는 강한 모성애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부부에 대한 결속력을 다져주는 존재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부부관계는 부부가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고 그 사이에 자식을 제 1순위로 두면서 두면서 배우자를 대체 할 경우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칼렛 요한슨이 열연한 영화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 2019)를 보았다. 남자와 여자가 이혼 과정에서 겪는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아이에 대한 미안하고도 복잡한 과정이 적나라 하게 그려내며 평론가들과 대중의 호평을 모두 받은 작품이었다.
크게 공감하면서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혼과정에 크게 다른 점을 발견했다. 바로 우리 나라 이혼 정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쿨’함이다.
영화에서는 협의이혼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소송이 진행되면서 서로 밑바닥을 드러내고 분노를 드러내지만 서로 아이의 훌륭한 엄마이자 아빠에 대한 무언의 인정과 연민, 그리고 지금 내가 싸우고 있는 이 배우자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회상을 통합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 부부의 아이는 상처를 받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의 이혼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이성친구와 아빠를 동시에 보기도 한다. 바로 이런 부분이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정서다.
이혼 배경에 상관없이 전 배우자의 이성친구와 아이가 편견 없이 어울리고 양육자가 너그럽게 상대의 연애 과정을 이해해 주기가 쉽지 않다.
내 주위에서는 헤어진 배우자가 이성친구가 생기거나 재혼할 경우 아이의 혼란스러움을 막겠다며 면접 교섭을 제한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혼하고 각기 다른 감정의 앙금을 품고 살아가는 게 아이를 두고 이혼한 사람들 일 것이다. 배우자와 이혼 했을 뿐 이혼 이후에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위하는 삶을 생의 우선순위로 둘 수 만 있다면야 사실 문제는 꽤나 단순해 진다.
다만, 이유야 어찌됐든 이혼 후 남녀 모두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연애와 재혼 역시 3040 이혼 부부의 또다른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할 해 보면 모든 기준을 ‘아이’가 덜 상처받는 쪽으로만 치우치는 것 또한 정답일 수는 없다.
그만큼 ‘아이’란 존재는 위기의 부부가 이혼을 재고하기로 결심 하게 되는 강한 버팀목 이면서도 이혼 이후의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 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혼의 핵 일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 동창생 이었다가 어학연수 시절 다시 만나서 결혼하게 된 예진/재형 부부의 이야기다. 예진과 재형은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만나자 마자 스파크가 튀어 사랑에 빠졌다. 만나서 결혼까지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문제는 그렇게 결혼을 먼저 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둘은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신혼 생활이 있었다기 보다 싸우고 조율하는 과정에 둘 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었다. 둘 다 서로 다른 이유로 ‘내가 결혼이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가’ 종종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혼할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었고 막연하게 결혼한 지 2년이 지났으니 아이가 하나쯤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가장으로써의 막중한 책임감이 기쁘고도 무겁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예진 역시 서로를 꼭 반 씩 닮은 아이에게 모성을 쏟아보았다.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으나 일이 많다는 남편이 예진의 마음과 상황을 정확히 이해 해 주는 것 같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겨우 억지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궁시렁 거리는 남편을 보면서 화 조차도 나오지 않을 만큼 마음이 닫혔다. 처음에는 아이가 중간에 자꾸 깨서 우는 바람에 시작한 각방 생활은 아이가 좀 더 컸을 무렵에는 엄마 없이는 잠을 못 잔다는 이유로 계속 되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아이를 떼놓고 부부가 잠을 잔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당연하듯 흘러 갔다.
처음에는 꼭 각방을 써야겠냐며 화를 내던 남편도 혼자 안방에서 잠드는 걸 당연시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남편이 바람 피우는 거 아닌가 몇 번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설마 그럴 수 있는 사람’ 이라고 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사소하게 돈 문제나 시어머니 문제로 몇 마디 언쟁이 오갈 경우 아이를 내세우며 아이만 크면 이혼이라는 얘기를 꺼냈다. 그럴 때마다 재형의 더 이상 소리치지 않고 ‘알았다, 미안하다’ 라고 말하며 말싸움을 끝냈다. 물론 진심으로 이혼을 생각한 적은 없었고 평소에 잘 좀 하라는 잔소리의 다른 표현이었다. 아주 가끔은 재형이 바람 피워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간혹 별다른 부부 싸움도 없고 조용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했다. 예진은 배신감과 분노, 절망과 두려움으로 신경정신과의 처방전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모했다.
재형의 입장은 또 다르다. 처음부터 예진보다 더 아이를 원했었고 축복 속에 아이가 태어났다. 부모 도움 없는 외벌이 가장에게 자식이라는 존재는 ‘아이를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부성애를 최대치로 끌어내며 상사의 폭언쯤이야 과감히 견디는 아빠로 만들어 주었다. 파김치가 되어 퇴근한 후 육 스트레스를 퍼붇는 예진이 점점 견디기 힘들었다. 전업주부인 예진이 집안일 까지 요구하는 걸 보고 너무한다 싶었다. 좋아하던 사회인 축구도 할 수가 없었고 모든 생활이 감옥처럼 돌아갔다. 예진과 집에서 서 너마디 이상의 대화가 흘러가지 않았다. 재형의 남성성은 붋법 안마 시술소에서 해결했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예진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가정을 유지하는 비결이 성매매 라고 스스로 합리화 하기도 했다. 예진은 애만 크면 이혼이다, 혹은 내가 은퇴하면 이혼이다 라는 식의 말을 시도때도 없이 했었다. 처음에는 겁이 났고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력감과 억울함으로 종종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다가 예진과 결혼하게 된건지, 애가 생기기 전에 이혼했었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가 이따금씩 몰려왔다.
어느 날 거래처에서 만난 돌싱녀와 관계가 깊어졌다. 재형은 그녀와 함께라면 무너진 인생을 리셋하고 다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혼만 할 수 있다면 모든 재산과 권리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면서도 ‘아이’를 떠올리며 지금이라도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법적으로만 보면 이는 명백한 유책 배우자는 재형임이 틀림없다. 재형이 설사 외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예진의 부부관계 거부 등의 이유를 든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의 입장일 뿐, 현재까지는 대한민국의 어떤 법적 판단도 재형의 태도를 정당화 할 순 없다. 또한 유책 배우자인 재형은 이혼을 먼저 요구할 수 없다. 이는 경제력 있는 배우자가 잘못을 해놓고, 경제력이 업는 배우자, 즉 주로 가정주부를 쫓아내는 '축출이혼'을 막음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데 있다. 또한 배우자의 유책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유지하고 싶다는 상대 배우자가 바로 그렇게 해야 결혼이라는 시스템을 유지 시키고 우리 사회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가해자-피해자 놀이를 하면서 내가 피해자요, 동네방네 떠들어서 망신 주는 게 예진의 목적이라면 많은 생각이 필요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분이 풀릴 때까지 온갖 방법으로 남편을 괴롭히면 된다.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감정을 앞세우는 건 문제를 더 크게 만들어서 결국 나 역시 상처 받게 될 뿐이다. 남편 재형의 ‘이혼하고 싶다’라는 결정에 바로 맞받아 치면서 이혼을 끝내 하고 싶은건지, 할 자신이 있는 건지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다. 원하는 게 이혼 이라면 철저히 증거를 잡고 이혼 전문 변호사와 상의하는 게 맞다. 그러나 정말 경제적으로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아빠 없는 아이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실하다면, 그리고 괜한 자존심 싸움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다면 다른 전략을 짜야 한다.
재형의 외도 문제를 합리화 할 생각은 없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부부가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가정을 쉽게 저버린다면 제대로 유지되는 가정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재형에 대한 당연한 비난과 질책을 잠시 거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또한 필요하다.
예진의 무심한 행동, 아이만 있다면 가정이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던 안일한 태도가 남편으로 하여금 어리석은 외도의 길을 가게 했다는 이해와 자기 반성이 곁들여 진다면 이 또한 지나가는 부부생활의 위기로 넘기고 단단해진 결혼생활을 영위에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이 부부에게 기회는 있다. 그만큼 아이는 이혼 결정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결정짓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지 않다면 상대를 다그치지 말고 불륜이라는 감정에 빠져서 잠시 잊고 있는 아이의 존재를 설득시키며 관계회복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일방적인 비난과 도덕적, 윤리적 의미의 잘못을 따지면서 한풀이를 하는 방법으로는 본인의 또한 이혼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나한테 원수인 배우자가 아이와의 관계마저 포기하지 않도록 이혼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훗날의 후회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