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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koni Oct 10. 2020

외도’라는 배신 VS ‘외도’ 그 외의 배신

원래 정조란 상대에게 충실한 것을 의미하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놓고 말할 때에는 변치 않는 사랑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그러나 애국심종교그밖에 고귀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정조 역시 의미가 변질되고 모조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결혼 관계에서 정조란 단지 성관계의 배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락했고심지어는 변하지 않는 사랑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뀌었다그리하여 아내가 오래 전부터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데도 남편의 온갖 배신행위에도 끝까지 남편에게 충실했다는 말이 성립되고 사람들은 이 말에서 아무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비록 부정한 성관계가 아니더라도 부부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배신이 일어난다


리처드 테일러, <결혼하면 사랑일까에서 



나보다 7살 어린, 친하게 지내는 남동생이 있다. 그는 9살 연상의 여자에게 적극적인 사랑 구애를 하여 이제 막 신혼 타이틀을 벗은 멋진 동생이다. 결혼 이후의 삶, 부부, 가족심리, 이혼과 재혼, 중년의 삶 등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소설과 심리학 책을 즐겨 읽을 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과 그 지인의 지인들 등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꽤나 파격적인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이라는 삶의 관문을 통과해서 나보다 더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그 동생에게도 연애에 대한 조언을 종종 구하고는 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어린 기혼남에게 최근에 외도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외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외도를 안할 자신이 있는지 전대미문 유혹이 넘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부부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큰 기대가 없었던 다소 뻔한 대답을 예상했던 나는 잠시 고민하고 답변하는 그 동생의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누나~ 나도 결혼 전에 엄청 많이 고민 했거든. 지금의 이 감정이 과연 얼마나 지속이 될까. 나는 과연 결혼에 맞는 사람인가. 근데 외도는 노력하지 않는 부부, 서로 냉담해진 부부에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위기라고 생각해. 외도는 해서는 안되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의 끝은 결국 외도더라고. 그래서 나는 서로 이 좋은 감정, 서로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감정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 지금의 내 아내는 그런 노력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지키기 위해 노력할거야.”


내 생애에 외도는 절대 없다며 나는 지금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현재의 감정에 도취되어 있는 남자보다 부부관계가 틀어지면 외도가 찾아오는걸 시간문제라는 걸 알기에 엄청나게 노력할거라는 그의 진지한 목소리에서 부부갈등의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 말하는 ‘외도’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지속적으로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교류를 하는 행동에 국한했다. 즉,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결혼의 서약을 파기할 생각이 없으면서 다른 이성과 놀아나거나 성매매에 중독자들은 이 책에서 다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제도에 맞지 않거나 심리 테라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도’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이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 전업주부의 비율이 훨씬 높고 맞벌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먼저 회사를 나오게 되는 건 여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외도에 성별을 따로 둘 수는 없지만 바람을 피우는 쪽을 성별은 아무래도 남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 한다는 점에서 이 장에서는 남자의 ‘외도’와 남자를 외도하게 만드는 ‘여자’의 실제 사례를 담았다. 


은아는 관할 구청에 이혼신고를 함으로써 진짜로 ‘이혼녀’가 되버리자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여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혼 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판결없이 조정이혼으로 마무리 되었다. 돈도, 마음도, 그동안의 추억과 시간도 모두 반토막이 난 기분이었다. 결혼 생활 10년 만에 남편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설마’하는 마음에 불법인 흥신소에 의뢰해서 미행을 따라 붙였다. 남편이 회사 여자 동료의 집에 드나드는 사진, 손을 잡고 있는 사진, 둘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 몇 장을 넘겨 받았다. 이미 사진에서 둘의 관계를 눈치 챌 수 있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더 강도 높은 사진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사진 몇 장을 들고 남편을 추궁했다. 남편은 부정하지 않고 여자가 있다고 했다. 이혼을 요구했다. 당황한 은아가 ‘아이’를 앞세우며 협박했지만 남편의 갈등은 이미 끝나보였다. 외도를 발견 한 후 이혼 하기 까지 그 긴 싸움이 오고 가는 동안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반성의 태도만 보여준다면 못 이기는 척 이혼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담담했고 오히려 들켜서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배신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그동안 사랑받지 못했고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취급 받는 거에 지쳤다고 말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만난 마지막 사랑에 남은 인생을 걸고 싶다고 했다. 이혼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소송이 길어지면서는 서로의 팩트는 없고 감정으로 에너지만 낭비하고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은 참담함이 들었다. 결국 10년의 결혼생활은 3천만원도 채 되지 않는 재산분할과 턱없이 적은 양육비, 생활고를 남긴 채 만신창이로 끝났다. 다른 건 몰라도 바람만은 피우지 않을 사람이라고 확신 했던 순진했던 스스로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늙어버린 몸과 단절된 사회경력, 그리고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 당했다’라는 수근거림은 오롯이 은아의 몫이었다. 


위에서 정의한 ‘외도’의 의미에 충실하자면 은아의 남편은 대한민국의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 였을 것이다. 외도 공화국, 불륜 공화국 이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불륜 산악회’ 라는 조직이 따로 있다는 기사가 주기적으로 회자 되는 이유는 이미 대한민국의 많은 부부들의 파탄 후 외도인지 외도로 인한 파탄인지 무엇이 먼저 였는지 판단하게 애매하게 서로 뒤엉킨 모습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볼 수 있다. 

물론 드물게 축복받은 부부생활을 하는 커플들도 있다. 잘 맞는 궁합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충만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서로의 사랑과 노력으로 이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부부들은 스스로를 위험해 빠뜨리면서 ‘짜릿함’과 ‘쾌감’을 맛보겠다고 가정을 위협하는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외도는 현재가 행복하지 않고, 앞으로 불행한 가정생활이 예측되는 남자들이 (혹은 아내들이) 꿈꾸는 인생의 마지막 터닝포인트이자 판타지 소설 일 뿐, “배우자의 원인제공으로 외도할 수 밖에 없었던 그(그녀)가 외도로 인한 이성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좀처럼 현실에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종종 만나서 결혼까지 석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부부, 혹은 십년의 연애 후 결혼해서 수십 년 째 서로를 영혼의 단짝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축복받은 부부들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사실 정말 축복 받은 경우이다. 태어나보니 부모가 재벌이거나 유명인 부모를 둔 ‘팔자 좋은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세 가지 경우의 수로 나타날 것이다. 천생연분, 적극적인 노력으로 부부관계에 최선을 다하며 사랑을 완성 시키는 부부, 그리고 마지막이 외도할 상대가 없거나 들키면 끝장난다는 생각에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겁쟁이의 경우이다. 만약 한 사람은 아내, 혹은 남편으로서 지내는 평균 점수가 기쁨과 행복보다 불행지수가 더 높다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그저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차피 끝난 결혼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인간의 ‘행복’에 대한 부분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부모 세대 보다 오래 산다. 100세 인생의 실현을 눈 앞에 두고 가능한 건강한 신체로 오래, 제대로 살기 위해 운동과 다이어트를 한다. 모든 미디어에서 행복의 중요성을 떠들지만 행복하고 싶어서 ‘외도’를 선택한 남자들에게는 마치 인간의 수명이 60을 채 넘기지 못했던 때와 마찬가지 인양 이율배반적인 도덕 잣대를 들이댄다. 너 혼자 행복하자고 여자도 자식도 버린 후안무치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

‘외도’가 배우자에 대한 배신 행위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상대방의 명백한 유책 사유를 방패삼아서 상대 배우자, 특히 아내의 지인들이 고작 아내에게 하는 위로랍시고 “It’s not your fault (네 탓이 아니야)” 라는 영화 대사를 메아리처럼 읊어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반짝 주위로부터 동정과 안쓰러운 시선, 그리고 내 자신보다 더 에너지를 쏟아가며 함께 분노해 주는 행위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적어도 나의 잘못으로 결혼이 깨지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떳떳함 외에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없다. 오히려 계속 파탄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면서 사건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할 뿐이다. 위의 은아의 사례처럼 처음에는 배신한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상대가 내 칼에 맞아 쓰러지는 걸 보고 통쾌함을 느낄 수 있으나 어느새 양날의 검을 쥐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정말 내가 이 모습을 원했던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자. 내가 남편에게 어땠는지. 독박육아에 집안일에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그런데 바깥에서 나를 속이며 더러운 짓을 하고 다녔냐고 상대방에게 손가락질 하기 전에 내가 어떤 배우자의 역할을 했는지 추악한 진실을 미리 마주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난 이후 상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이혼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남편에게 사랑을 쏟지 않고, 남편을 등한시 하고 대화를 거부하고 모든 관심과 애정의 1순위를 아이로 쏟으면서 아이에게만 충실한 삶을 정답으로 알고 부부 관계를 만들어 이끌어 왔다면 이미 아내가 먼저, 혹은 서로 누가먼저 라고 할 것도 없이 배신했다고 보는 게 맞다. 가정에서 아내가 아닌 엄마로써만 존재한 당연한 결과이다. 불륜을 한 남편에게 부부관계의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본인을 ‘피해자’라고만 생각해서 억울해 하고 관계에 끼어든 제 3자의 인생을 싸잡아서 온갖 말을 담아내는 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행위일 뿐이다. 여기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는 남편의 변(辯)이 있다. 


“이번 생은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라고 은아의 남편 우진은 말했다. 

“물론 좋을 때도 있었죠. 처음 결혼을 약속했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승진을 했을 때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지쳐갔어요. 집에서는 서로 대화가 없고 필요한 말만 했어요. 간혹 씀씀이 문제로 다툼을 한 적이 있어요. 늦은 회식으로 택시를 타고 집에 온 적이 있었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큰 소리를 내며 몰아 세우곤 했습니다. 돈을 헤프게 썼다는 이유에서 였지요. 저는 지금도 제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퇴 후에 사업 실패로 국민연금 외에 마땅한 수입이 없으신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아내는 수시로 제 집안을 비난 했었어요. 이렇게 가난한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둥, 아니면 애 낳기 전에 이혼을 했었어야 한다는 둥 수시로 불만을 말했다니까요. 매달 부모님께 드리는 소액의 용돈에도 늘 은아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남녀는 공평하며 전업주부가 집에서 논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동등한 효도를 주장하는 아내의 요구대로 넉넉한 처가에도 동일한 용돈을 보내드리는 착실한 사위였다고 자부합니다. 아침에 출근길에 잠을 자고 있고 어쩌다가 입이 라도 맞추려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고개를 돌리는 아내를 보면서 남성성을 죽이고 살아야 했지만 그게 제 인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손이 닿는 것 조차 거부하는 아내의 차가운 눈길을 보면서 ‘아... 이번 생은 글렀구나’ 하고 체념했죠. 그러나 제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회사 동료와 가까워 지고 사랑으로 발전 됐습니다. 사회에서 받는 손가락질은 각오 했었어요. 다들 저를 향해 가장을 파탄 냈다는 둥, 아내와 아이를 배신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억욱합니다. 한 사람과 배타적인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 배신인가요? 저는 사랑받지 못하고 좀비처럼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구요! 배신은...사실 아내가 먼저였어요!


실제로 많은 배우자의 ‘외도’로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혼 파탄의 원인을 배우자 및 제 3자의 개입이라고 생각하며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부분 하나만으로 결혼생활의 시비를 가릴 수는 없다. 

여기서 상황을 반전 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 법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사실을 떠나서 ‘과연 나의 행동은 떳떳했나’ 살펴 보는 것 뿐이다. 

부부관계에서 수시로 등장했던 적색등을 알아보지 못한 서로의 탓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외도가 정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파탄한 부부관계의 책임을 제 3자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은아와 우진이 “니가 어떻게 바람을 피울 수가 있어” “당신이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았잖아” 라는 식의 입씨름을 지속한다면 여기서 반전될 수 있는 상황은 없다. 이 가족에 피해자는 은아도 우진도 아닌 그들을 꼭 반 씩 닮은 아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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