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사랑을 구하자.
그러면 다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 불륜 中에서 -
내 남편을 유혹한 여자, 유부남을 꼬여낸 인성 쓰레기, 혹은 가정교육에 문제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다고 가정하는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남편의 외도를 겪은 여자들이 생각하는 첫 번째 반응은 부부관계에 대한 회고와 자기 반성, 부부상담이 아니다. 이혼과 상간녀 소송을 떠올리며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로 괴로울 것이다. 인터넷에 외도, 불륜, 상간녀 등을 주제로 검색해 보면 생각보다 남편과 비슷한 일을 겪은 여자들이 인터넷 공간에 모여 남편의 불륜녀, 즉 상간녀를 향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비하 발언을 쏟아낸다.
“남편한테 꼬리 치는 년이에요. 제가 만나 봤는데 그런 짓 하게 생겼더라구요.”
“그 부모에 그 딸년이라고, 자식 교육을 엉망으로 시키니까 유부남이나 만나고 다니죠.”
“이미 남편한테 마음도 떴지만 죽어도 이혼 못해주죠. 그 간년이(상간녀를 비하하는 말) 좋으라구요? 평생 상간녀 소리나 들으면서 만나라고 하세요. 법적으로 모든 권한은 내가 갖을 테니”
비속어를 섞어가며 상간녀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을 포함해서 저주를 퍼부어 댄다. 유명한 성경 구절 ‘간음하지 말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도 이 타이밍이다. 기독교 신앙을 철썩 같이 믿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 쯤이야 어렵지 않게 어기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유독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에는 비 종교인 들까지 한 마음이 되어 들먹인다.
모두가 돌을 던져 마땅한 만인의 적 ‘그녀’의 민낯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주위에서 쉽게 스쳐지나가는 여자이다. 술집 여자가 아니어서, 성매매 업소에서 볼 수 있는 여자가 아니어서 아내들은 더욱 분노하고, 분노하는 만큼 맘껏 욕하고 비하한다.
유독 한국에서는 불륜을 두고 감히 ‘사랑’이라는 순결한 단어를 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불륜도 사랑이고 불륜에도 종류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유부남과 끝이 보이는, 비극으로 끝난 확률이 99%에 달하는 파국의 사랑을 선택하게 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이다.
그녀는 능력도 외모도 평범한 사람이며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이웃이다. 이혼 가정의 자녀도 아닐뿐더러 문제 될 것 없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 했다고 불륜의 트라이앵글에 빠지지 않는 다는 점에서 불륜녀의 가정 환경을 운운하는 것은 아내들의 자기 연민에 불과하다. 남편의 바람난 여자의 외모와 집안환경을 폄하해 봤자 나의 정신 건강 및 이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인 나보다 외모와 능력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면 상대의 조건에 주눅 들 것이고, 객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상대인데 남편이 사랑에 빠졌다고 한들 자괴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게 온다고 했어요” 패션회사 재무팀 과장으로 일하는 현정은 담담한 얼굴로 털어놓았다. 35살의 미혼 이었던 현정은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면서 더 이상 가슴 뛰는 사랑을 불가능 할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에게는 사랑보다 그 사람의 직장, 집안, 재산 등 배경을 보고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뭣도 모를 때 결혼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 될 때쯤 자연스럽게 결혼 생각을 접었다.
사랑 없이 조건을 보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삶을 살기에 너무 이 세상이 아깝다고 생각을 했다.
새로 들어온 인사팀 차장 범준이 그 즈음 회사로 새로 들어왔고 야근을 하면서 몇 번 탕비실에 마주쳤다. 범준은 두 아이의 아빠이고 충실한 외벌이 가장으로 보였다. 몇 번의 야근 하면서 저녁을 먹었고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었다. 완벽한 가장의 모습의 범준의 모습에서 불행의 그림자가 보였다. 너무 일찍 결혼한 것에 대한 후회, 애정 없는 결혼 생황에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반성,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결혼생활을 버텨 나가고 있다는 노곤한 그의 인생 얘기에 숨길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소위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품절남이 됐다는 대한 푸념과 함께 범준이 얼마나 괜찮고 멋진 사람인지를 그에게 설명했다. 그 대화가 시작이었다. 대화의 시작으로 현정과 범준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인지하고 그렇게 둘은 해서는 안 되는 관계에 뛰어들었다.
현정은 처음에는 강한 죄책감을 느끼고 떳떳할 수 없는 관계에 스스로 수치심을 느꼈다.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관계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과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아이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정이 범준에게 이별을 꺼냈을 때, 범준은 주저없이 가족을 버리고 현정을 선택하고 싶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현정과 남은 40여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면서 현정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현정은 잠깐 혼란스럽다가 결국 범준의 손을 잡았다. 이제 현정은 죄책감은커녕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당당해져서 사랑이 불 타 올랐다. 도리어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현정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력있는 싱글녀 이다. 연애도 해볼 만큼 해봤다. 그러나 현정이 범준에게 느꼈던 강한 이끌림은 “현정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라는 남자의 태도에서 비롯됐다. 현정을 만난 이후로 범준은 현정이 걱정할 만한 행동, 즉 이혼할 생각이 없으면서 현정을 꼬셔서 놀기만 하는 이중 잣대를 보이지 않았다. 현정은 오히려 불륜을 막고 당당히 만나기 위해 기존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는 모습에서 사랑의 위대함을 느꼈다. 사랑도 해볼 만큼 해보고 연애의 시작과 끝을 수도 없이 수도 없이 맞닥뜨린 계산적인 도시녀가 당신의 남편과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느낀 것이다.
가족을 버리면서 까지 현정을 택하는 데에서 절대적인 사랑과 따뜻함을 느꼈다. 너무나 늦게 만난 사랑에 생긴 여러 가지 장애물들 (부모의 반대, 주위의 시선, 구설수, 소송)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사랑을 증명이자 영광의 상처라고나 할까.
어리석게도 사랑이 끝난 이후가 돼서야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피어난 꽃은 결국 떨어져 시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행동은 유부남인 당신의 남편과 미혼이었던 현정이 함께 저지른 일이다. 정말 현명한 아내라면 미성숙하고 파렴치한 행동으로 단언하며 그 둘을 함께 괴롭히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둘의 사랑에 기름을 부을 뿐이다. 좋은 끝을 맺고 싶거나 남편의 마음을 가정으로 돌리고 싶다면 오히려 상간녀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결국 대다수의 불륜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 훨씬 전에 비극을 맞는다.
위의 현정은 훗날 존재를 걸었던 사랑이 끝난 후에 어그러진 인생을 추스르는 방법으로 심리 상담을 선택했다. 만났다는 사실에 대한 얘기를 다소 담담하게 털어 놓을 수 있었다. 여러 번에 걸쳐서 상담사는 왜 범준을 만났는지를 물었다. 현정은 명확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요즘처럼 조건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애정을 품기 불가능한 시대에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범준에게 운명을 느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다음은 또 다른 입장의 ‘그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여서 더욱더 비난을 받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진은 연년생의 초등학생 딸 둘을 두고 있는 워킹맘이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남편을 대신해서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인 가장이다. 부부 생활에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기혼 남녀가 그러하듯 그렇다고 쉽게 이혼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저 이따금씩 인생에 허무함과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 남들처럼 신랑에게 의지하고 싶은 솟구칠 때면 혼자 조용히 울기도 했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 둘을 바라보며 또 회사에서는 묵묵히 그녀의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여자라서, 엄마라서, 워킹맘이 어서 일을 등한시 한다는 취급은 받고 싶지 않았기에 더욱 악착같이 업무에 매달렸고 성과도 인정 받았다. 그러다가 같은 부서의 한 유부남 동료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도 아이가 둘이었고, 같은 상사 밑에서 일하느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비슷했다.
여진은 어느 날 아침 문득, 출근 준비를 하다가 그를 만날 생각에 예전처럼 출퇴근의 지옥철이 괴롭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가히 여진 혼자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상대 남자도 동시에 그렇게 느꼈고 둘은 곧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빠졌다.
둘 모두 상대 배우자에게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의 가정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함께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자 쪽에서 갑자기 아이를 핑계로 가정을 져버릴 수 없다며 주춤 거렸고 여진은 신랑에게 이혼을 통보했다가 없던 일로 말을 주워 담아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여진은 모든 것을 걸 것처럼 절절했던 사랑이 이렇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고 결국 상황에 떠밀려서 불륜관계가 정리됐다. 뒤늦게 아무것도 모르는 신랑과 아이에게 미안해 졌다.
아무도 모르게 끝난 이 관계를 교훈 삼아서 부부관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도 모를, 끝까지 아무도 몰라야 할 관계로 여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이다.
미혼과 기혼 할 것 없이 불륜을 경험하는 그녀는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제 있는 ‘그녀’가 멀쩡한 내 남편을 건드린다는 시각을 거두어야한다. 견고한 부부사이 였다면 김태희, 전지현이 유혹하더라도 유혹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은 좋을지 언 정, 타인에게 남성성이 돋보인 것 같아서 자신감에 상승을 미쳤을 지언 정,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는다. 제 3자인 그녀에게 모든 비난을 퍼부으며 이미 끝나 있었던 관계의 탓을 제 3자를 향하는 것 또한 외도만큼이나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