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은 항상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강요한다. 그런 불안과 죄의식에 붙들려 있는 상태에서는 잠재의식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다.
- 조셉 머피 -
사랑이라고 믿는 대다수의 불륜이 ‘좋은 이별’로 끝나지 않고 “파멸” 이라는 형태로 끝을 맺는 것은 단 하나, 타인의 희생과 고통을 전제로 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이었으나 부모와 배우자, 무엇보다 자식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외도’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고 빠르게 결정 내릴 경우 둘의 관계는 어쩌면 “진짜 사랑”으로 남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정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기에 깨닫게 되거나 둘 앞에 닥쳐올 현실적인 문제 들로 인해 법률혼 관계로 가지 못할 경우 둘은 최악의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상처주고 시작한 관계, 모든 것을 걸었던 상대가 결국 헤어질만한 흔한 사랑, 열애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아 손을 놓게 되었을 때 왜 만났던 것인지, 귀신에 홀린것처럼 멍청한 선택을 했던 자신을 원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모든 걸 걸고 서로에게 덤벼든 존재에게 결혼을 깰 때와 똑같은 이유로 원망과 비난의 삿대질을 해대며 망가진 자신의 현재와 날려버린 기회비용에 대한 원망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 들이 말하는 외도는 ‘미성숙한 어른이 저지르는 철없는 짓’ 이라는 목소리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매 나온다.
내가 서른 살이 막 되기 전 외국계 회사에 다닐 때 엄청 센세이션한 일이 일어났다. 회사 대표와 말단 계약직 여직원과 추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사 대표도 삼십대 중반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사람이었긴 하지만 아이가 둘인 기혼 남성이었고 아름다운 외모로 많은 남성의 관심을 받았던 여성이었다. 내가 아는 건 둘이 결국 회사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그 둘이 결혼해서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산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자, 이 둘은 사랑일까? 정답은 본인들만 알 것이다.
이렇게 아주 드물게 불륜으로 이어진 관계가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기어이 둘 사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사랑’으로 만들어 낸 경우이다. 물론 그러고 나서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처럼 동화의 끝맺을 맺을 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포기한 가치와 지켜야 할 가치를 분별했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켜나갔다는 점에서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설사 그들이 해로하지 못하고 다른 난관이 부딪혀 이혼을 한다고 해도 적어도 그 책임을 서로에게 묻지 않고 본인이 선택한 인생에 대한 반성으로 남을 것이다. ‘외도’라는 행위 자체가 미성숙하다고 보기 보다는 외도라는 행동이 불러올 파국이 얼마나 클지 한치 앞을 내다보지 않고 현재의 감정만 생각하는 무지함이 파국의 원인인 경우가 크기 때문이다. 범준과 현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비극적인 관계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범준은 현정을 알아 가면서 비로소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대화 없이 사는 부부 였지만 그게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이미 익숙한 결혼의 일상이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부부관계에 자존심이 상처받은 뒤로는 동거인처럼 지냈었다. 행복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하고 싶지도, 할 명분도 없었다. 그러다가 현정을 만나면서 현재의 삶에 대한 민낯을 마주했다. 아무런 애정 없는 결혼생활과 남은 인생 남자로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는 애정과 인정에 대한 욕구 및 현정과의 절절한 사랑에 도취되었다.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들도 처음에는 말렸지만 진중하고 묵직한 범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범준이 현정에게 빠른속도로 이끌리며 이끌린 만큼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행복하지 않다, 이렇게 불행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단 아이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고 미안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길지는 않았다. 낳아두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미안함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줄기차게 이혼을 요구한 끝에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하루 아침에 적어도 단란하게 남들에게 보여지던 가족이 붕괘가 되었다. 처음 며칠은 행복했다. 빨리 이혼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현정과 해복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별거 후 몇 달 째가 지나자 아이들이 자꾸 눈 앞에서 아른 거렸다. 그토록 이혼 하고 싶었지만 막상 아내에게 이혼소송장과 동시에 상간녀 소장을 받게 되니 인생이 지하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휴대폰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 울음소리와 아이들에게 이혼가정 자식이라는 오점을 안겨주고 싶냐는 아내의 목소리에 혼란스러웠다.
현정은 상간녀 소송장을 받게 되자 범준을 방패삼아 함께 버텨주기를 원했는데 그러려면 또 애들 엄마인 아내를 직접 공격해야 하는 형국이라 주춤 거렸다. 범준은 그제서야 외도 전에는 몰랐던 가정의 ‘안정’이 그리워졌다.
위의 단편적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범준의 미성숙함은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결심했다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이혼을 통해서 본인이 얻게 되는 상실감, 죄책감, 구설수 및 비난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감정만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다가 또 다시 감정적으로 결정을 번복하며 주위 모든 사람들을 상처 주었다는 데에 있다.
어쩌면 범준은 현정을 만나 본인의 결혼생활을 더 불행하게 연출했을 지도 모른다. 현재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새로운 자극에서 인생의 정답을 찾았을 것이다. 인생의 오답처럼 보이는 선택지를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남 탓 하지 않고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애초에 불륜을 저지르지 않거나, 불륜을 저지른 후에 대처 방안이 이토록 미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 3때 ‘경제’라는 수업을 사회탐구영역의 한 과목으로 배웠다. 수능에 출제되는 문항 수도 워낙 작았기에 고 3 수험생들의 입장에서는 관심도나 집중도가 큰 수업시간은 아니었다. 특히나 수능시험이 출제되는 범위가 아닌 부분의 교과서 진도를 나갈 때면 나를 포함한 반 친구들은 다른 과목 문제집을 풀곤 했었다. 선생님도 아는 척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곤 하셨다. 지금은 성함도 잊은 유독 하얗고 동그란 얼굴만 기억나는 그 선생님께서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얘들아, 수능이 30일도 안 남았네. 다들 긴장되고 두렵지? 여차여차 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질거야. 학교 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답과 오답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다가 이젠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내 마음대로 쓰는 무한 자유를 맛 보게 되는거지. 수업을 땡땡이 쳐도, 학사 경고를 맞아도 그 누구도 너희들에게 비난을 하지 않아. 물론 그 뒷감당도 너네들이 하는 거지.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어른의 삶이거든. 그래서 말인데 부화뇌동 하지 말고 줏대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 지금은 너네들이 내 말을 몇 프로나 이해할지 모르겠지만......(한숨을 쉬고) 수업 좀 째는거? 그럴 수 있어. 과 동기들이 PC방 가자, 놀러가자, 무슨 공부냐 이런 주위의 유혹이 많이 들어올거야. 선생님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니네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지각을 하라는 거야.”
평소에 어떤 농담도 없이 묵묵히 교과서 진도만 나가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수능 이후에 펼쳐질 희망 가득한 대학시절에 대해 설명을 길게 늘어놓자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몰래 다른 과목의 수능 시험 갈무리용 문제집을 풀던 애들도, 대놓고 엎어져 잠을 자던 친구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경제 선생님은 마치 우리 모두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눈을 맞추는 것처럼 천천히 시선을 돌리시더니 말을 이어 나가셨다.
“ [얘들아, 날씨 좋다, 수업 그냥 째자, 원래 1학년 때는 학점 펑크나도 계절학기 들으면서 메우면 된대] 이런 말들에 그저 흔들리면서 생각 없이 휩쓸리지 말라는 얘기야. 학사경고 맞는거, 수능 다시 보는 거, 편입 하는 거, 심지어 자퇴하는 것도 좋아. 문제는 너네들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저야 한다는 거다. 20살 되니까 마음대로 술 담배 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지?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지 못할 때 어른의 삶은 급속도로 망가진다. 제발... 무슨 짓이어도 좋으니 생각하면서 행동하길 바란다. PC방 가느라 전공과목을 째더라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건지, 이 수업을 빠짐으로 인해서 너희 인생에 어떤 결과가 초래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소리야.”
장황한 설명을 마친 선생님께서는 휘둥그레 하는 우리 표정을 보더니긴 한숨을 쉬고 다시 진도를 나갔다. 당시에는 대학 입시에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선생님 말씀의 진가를 발휘한 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이후 였다. 이직을 하거나 퇴사를 할 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인지한다는 것, 그것이 어린아이와 가장 다른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내 행동에 따른 나비효과를 미리 예측하고 마음속으로 ‘고-스탑(Go-stop)’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작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결혼과 이혼에 있어서 ‘책임진다’라는 행위는 관계의 핵심이자 처음과 끝이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져버렸을 때 결혼생활은 이혼 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이게 되고 마찬가지로 책임 없는 이혼으로 모두를 불행에 빠뜨린다.
따라서 외도한 그들이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을까 물음에 대한 대답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결심에 따른 실천이 있었는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럭저럭 문제 없이 굴러가던 가정을 ‘외도’로 통해 깨버리고 ‘외도’를 통해서만이 인생의 후반전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못 가 모든 게 끝나버린 어둠속에서 홀로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외도를 통해 불행의 길로 스스로 걸어들어 간 것인가, 불행한 결혼생활의 끝,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동앗줄을 손으로 잡은 건지 제 3자가 추측하는 건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의미가 없다.
결혼, 재혼, 삼혼 등 몇 번의 관문을 거친다 한들 내 불행의 원인을 타인으로 지목하는 한 사랑과 관계의 실패는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