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은 없습니다.
다만 아름답게 사랑한 후에는 좋은 추억이 남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사랑에 감사합니다.
-샤론 스톤-
내가 퇴사하기 전, 각기 다른 직장에서 알게 된 여직원 둘이 있다. 미혼인 여성은 미혼이었기에 나랑 공통점이 많아서 퇴근 후 함께 우쿨렐레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육아휴직을 막 끝내고 돌아온 기혼 여성은 언니가 없는 나에게 여러 가지 결혼 생활을 들려주며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꿈꾸게 했다.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간간히 소식을 주고 받으며 주로 주말 점심약속을 잡으며 우정을 이어 나가곤 했다. 미혼인 동료와 연애와 싱글라이프에 대한 이야기 꽃을 키우는 것 만큼이나 기혼인 언니의 결혼 이후 고부갈등, 결혼생활의 달고 짠 순간들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도 너무 좋았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선행 학습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브런치 혹은 와인을 곁들인 진솔한 여자들의 대화의 재미와 얻게 되는 지혜는 독서 이상으로 훌륭했다.
나는 서울에서의 마지막 직장의 퇴사 이후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대신 아일랜드로 떠나서 1년간 아일랜드 가정에 머물면서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1년짜리 어학원생의 신분으로 인생을 촘촘하게 살아냈던 경험이 있다. 해외 생활에 대한 동경과 낯선 경험을 통해서 유럽의 문화를 전반적으로 흡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놀랐던 점은 부부가 저녁을 함께 준비하는 ‘저녁이 있는 삶’ 문화였다. 젊은 맞벌이 부부는 물론이거니와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에도 5시 30분이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이후 디저트까지 함께 만들며 부부와 자녀가 오랜 대화의 시간을 갖곤 했다.
외벌이인 남편이 일을 핑계로 집안일을 아내에게만 전담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를 돕는 모습이었다.
공부나 일을 핑계로 각기 자기 방으로 들어가곤 했던 한국의 문화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퇴근 이후에도 끊임없이 메신저로 업무를 주고받으며 고강도 업무에 시달리는 한국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만나본 아이리쉬 부부들은 함께 육아와 식사를 책임지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나를 오히려 더 기이하게 여기곤 했다.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 모두에게 가정은 완벽한 보금자리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와 학교에서 힘들었던 점, 가사의 어려운 점, 이미 고등학생인 자녀들의 연애문제 까지 등을 서너 시간 이야기 꽃을 피우고 가족의 지지와 응원, 격려를 얻으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TV를 틀어 놓지 않으면 집안이 그저 조용하기만 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랐다. 부부의 대화가 길어진다는 건 주로 말싸움을 의미 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나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방 안에서 갇혀 지냈다. 나의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로 아빠는 신문이나 바닥채널을 보고 엄마는 음식을 만들거나 TV 드라마를 보는 식이었다.
촛불을 켜고 온 가족이 끊임없는 이야기 꽃을 피는 걸 1년 365일 지켜보면서 가족의 의미가 재탄생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유럽에 끝에 있는 작은 나라의 삶 속에서 어울리면서 한국의 소식과도 뜸해졌다. 꽤나 자주 어울렸던 미혼/기혼의 그녀들과의 연락 역시 시차 문제를 핑계로, 그 이후에는 너무 오래 보지 않아서 할 말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수개월 이상 연락이 끊겼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고,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는 걸 현지 뉴스로 통해 전해 들었다. 1년이 훨씬 지나서 한국에 돌아온 후,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나서야 미혼의 그녀가 불륜으로 인한 상간녀 소송을 당해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걸 알았다. 같은 시기에 기혼인 그녀 역시 남편의 외도로 이혼소송을 겪으며 만산창이가 되어 있었다.
정확히 정 반대의 입장 이었지만 남자 하나 때문에 인생이 벼랑 끝에 내 몰렸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둘 다 머리 굵어져서 만난 정말 친한 지인들이었기에 어떤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훈수를 둘 수는 없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직접 당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성급하고 오만한 일이었다. 조용히 그들의 말에 위로하고 공감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안아 주었다. 그저 집에 와서 혼자 글로 끄적이며 두 명의 그녀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녀(미혼)에게
지금 네 인생을 걸만한 운명적인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서 이 역경 두 손을 붙잡고 함께 헤쳐 나가겠다며 없는 힘을 쥐어 짜는 네가 너무 안쓰럽다. 이 행복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해. 왜냐?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사랑이기 때문이야. 더군다나 그 타인이 유부남의 아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을 상처가 희생을 밟고 일어선 사랑이라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행복한 너와 그 운명의 남자 인생에 주기적으로 돌을 던질거야. 꿈같은 사랑, 세로토닌이 마구 붐비되던 시기가 끝나고 현실이 찾아오면 레드 라이트가 종종 찾아올거야.
회사에서의 너의 평판, 아내와는 이혼해도 아이는 포기 못하겠다는 남자, 이혼으로 인해 재산이 반 토막이 난 남자와 미래를 계획하는 문제 등의 현실이 닥칠 텐데 정말 감당할 수 있겠니? 아니면 아이까지 포기하고 너한테 오겠다고 한 사람을 너 역시 믿을 수 있겠어? 자기 핏줄을 외면한 남자가 사랑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모든 걸 포기하고 너한테 오겠다는 남자는 결국 너도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너를 비난하지 않아. 모든 사랑에는 의미가 있고 나는 불륜 역시 사랑이라고 생각해. 시대가 더 흐르고 결혼과 이혼 졸혼, 비혼에 더 관대해지고 가족의 의미가 재탄생 될 쯤에는 시대가 좀 더 ‘사랑’에 다양한 정의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네 편을 들어주며 네 사랑을 응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구나. 끝이 보이는 사랑, 조금이라도 빨리 잘못된 트랙에서 빠져나오길 바래.
그녀(기혼)에게
억울해 하고 배신감에 떠는 언니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몰라. 게다가 더군다나 당장이라도 이혼해야 겠다는 첫 마음과는 달리 아빠를 찾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이도저도 못하겠다고 했지? 언니의 인생을 응원하는 마음 만큼이나 언니가 무슨 선택을 해도 나는 언니의 편이 되어 줄거야.
이혼을 강행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도 아이 핑계가 아니라 언니가 심사숙고한 결과가 나와야 해. 아이 핑계로 꾹 참고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면 아이는 그 불편한 기운을 그대로 흡수한 채 엄마 아빠가 불행한 씨앗이 자기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하잖아. 생각해봐. 아이가 어릴 때야 아이 앞에서 꾹 참고 시선을 피한 채, 그래, 부모노릇만 잘하고 아이가 클 때까지 참자고 다짐하면 스스로 아이를 위해 나를 희생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할 수 있어. 과연 아이가 그걸 원할까? 언니가 아이를 핑계로 이혼의 두려움을 핑계 삼는 거 아닐까? 애만 아니었으면 헤어졌다는 말이 언젠가는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될거야.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 누가 나 때문에 참고 살아달라고 했냐, 지긋지긋 하다 라는 아이의 말에 상처받는 엄마가 될 수도 있어.
내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 져야 할 때야. 외부의 시선, 미래에 대한 불안함, 생활에 대한 불안정으로 이혼을 망설인다고 해도 괜찮아. 어떤 이유가 됐든 이혼이 아닌 재결합의 결론을 내렸다면 내가 억지로 참고 산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는 과연 좋은 아내였을까, 남편이 바람 피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 등 분노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자기 반성의 시간을 꼭 거쳤으면 좋겠어. 자책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는 시기를 갖어야 재결합 하든 이혼을 하든 언니는 아직 젊고 누군가를 또 만난다고 해도 결혼실패를 통한 학습이 없다면 불행은 반복되거든.
아마 두 사람 모두 이런 일을 계획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일을 했냐, 왜 사회에서 지탄받는 일을 했냐, 법적으로 책임과 권리가 얼마나 있느냐가 아니다. 이제 문제에 한 발자국 떨어져서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고 가장 나를 위하는 쪽으로 방향키를 틀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