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koni Oct 13. 2020

이혼 후에도 친구로 남아야 하는 이유

When two people decide to get a divorce, it isn't a sign that they "don't understand" one another, but a sign that they have, at last, begun to.

(Helen Rowland)

두 사람이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건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외도 이혼이건, 성격차이로 이혼 했든 당신이 애만 없다면 상관없다.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붓든 비난을 하든 내 인생에서 그런 악연쯤 하나 생긴 셈치고 분노 에너지를 강력한 동기부여 삼고 앞으로 내 갈 길을 가면 된다. 문제는 둘 사이의 씨앗, 아이를 남긴 채 이혼을 하게 되는 경우이다.


아이 앞에서 소리 지르며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다고 해서 아이가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텐션을 모를 거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독일의 심리 치료사 이자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인 다미 샤르프는 한국에서 번역된 책 [당신의 어린시절이 울고 있다] 에서 발달 트라우마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인이 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에 감당하기에는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했을 때 생긴다. 이것은 주로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극단적인 사건이나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무지나, 선입견, 능력 부족 때문에 벌어진다”

사실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리다면 이혼한 한 쪽의 부모가 아이를 붙잡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원망을 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사춘기를 겪는 시기가 오고 아이와 대화가 좀 된다 싶으면 부모가 아이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며 본인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비양육자인 아빠 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주양육자인 엄마에게서 많이 보이는 모습인데 무심결에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원망을 아이를 붙잡고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 지속적인 발달 트라우마를 키우게 되어 아이의 감정에 지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는 이혼한 가정에서 모든 아이들이 특정한 결핍을 안고 성장한다는 편견 역시 편협한 시선이라고 생각해 왔다. 즉 이혼하지 않은 엄마 아빠 밑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마치 그런 모든 아이들이 상처없고 올곧은 성인으로 자라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지만 학교, 친구, 책, 인생의 멘토 등을 통해 충분히 상처를 극복하고 상처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게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겪은 일을 통해 아이의 발달 트라우마에서 부모-자식의 제대로 된 애정,양육 관계는 아이의 기질에 따라서 때론 절대적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지방의 한 대학의 취업캠프에 멘토로 참여하여 직접 겪은 일이다.

경민은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나와 취업 1:1 밀착 상담을 받은 친구였다. 4학년 2학기의 끝자락, 즉 취업시즌의 된 서리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친구였는데 뭔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경민은 나에게 와서 이력서 쓰는 법이나 이런 저런 회사 직군 및 산업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질문을 해왔다.

처음에는 그의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씩 답변을 해주었다. 그러나 경민은 질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들었음 에도 불구하고 내 옆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연관성이 없는 질문까지 하는 게 문제였다.

“제가 관련 자격증이 없으니까 안되겠죠?”

“A직무는 어떤거에요? (설명을 다 들은 후) 아,그럼 전 A는 안될 것 같고 B직무는 어때요? 돈 잘 벌어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취업을 못하겠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기도 하고 너무 없기도 해요.”

취업준비에 대한 막연한 실체 없이 이런 저런 질문을 해대는 모양이 너무 한참이나 어리광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그가 궁금해 하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직무와 직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력서를 쓰는 학과 친구들과는 달리 여전히 인터넷 사이트를 클릭만 할 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취직이 힘들다는 그의 말은 마치 슈퍼맨도 되고 싶고, 유투버도 되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들렸다. 학교에서 배려한 1:1 취업 멘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민이 맘에 걸렸다.

괜히 다른 아이들보다 맘이 쓰여서 뒷좌석으로 불러서 기본부터 체크했다. 하고 싶은게 뭔지, 하고 싶은 그 일을 위해서 어떤 스펙을 쌓아왔는지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데, 연관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마 다른 취 멘토가 왔다고 하더라도 나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해 보이는 눈빛, 나이에 비해 한참이나 어린 사고, 자신에 대한 과한 긍정과 부정이 한 대화에서 이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민은 민감하고 개인적인 자기의 얘기를 꺼냈다.

“저도 빨리 취업해서 집을 떠나고 싶은데 엄마만 생각하면 화만 나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대한 죄책감도 들고 저를 죄책감 들게 하는 엄마가 더 밉고 막 그래요.”

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 그를 나무랬다. 남의 집안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한 오지랖이 발동된 것이다.

“내가 이런 말 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 정말 안했어야 했다) 사회에 나갈 만큼 나이를 먹어서 남 탓, 특히 부모 탓 하는 것만큼 못난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께서는 경민이 열심히 키워 주셨잖아.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의 몫이고 그대 책임이지. 그게 어른의 삶이야.”

“어이가 없네... 멘토님이 제 부모님을 만나봤어요? 절 알아요?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부모님 편을 들어요?”

그는 갑자기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꺼이꺼이 울었다. 울음이 잦아든 뒤 얕게 한숨을 내뱉으며 털어놓은 그의 유년시절은 참담했다.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슬픔이 전해 졌다.

경민의 부모님은 경민의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혼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별거를 하다가 경민이 중학생이 되어서야 이혼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아버지와는 남이 되어 살았고 어머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인지, 얼마나 가정에 무책임하게 살았는지,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아들 둘을 키우느라 힘들었는지 큰 아들인 경민을 붙들고 하소연을 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엄마에게 애증의 감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안 본 지 오래된 아버지의 전화에는 심장이 떨린다고 했다.  

“차라리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맨날 아프다는 전화, 담뱃값 좀 부쳐달라는 전화에 분노와 걱정이 동시에 들거든요.”

심지어 경민의 직접 ‘트라우마’ 라는 단어를 써가며 부모의 이혼 트라우마로 부모님만 생각하면 가슴속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이혼 이후에 제대로 양육하지도 않은 무책임한 아버지도 싫고, 그런 아버지를 이혼 이후에도 계속 욕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가 엄마와 비슷하게 자기 앞에서 징징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가차없이 헤어져왔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엄마’같은 여자와 얽히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의도치 않게 취준생의 자세한 가정사를 듣게 된 나는, 그저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진정 가슴이 뛰는 일이 뭔지 알아보라는 교과서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가 멘토로 서너 시간을 학교에 더 머무는 동안 자기소개서를 3줄도 채우지 못하고 채용 사이트만 클릭하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진로상담사도, 친 누나도 아닌 내가 더 이상 그의 인생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취업 캠프가 끝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가정사를 털어놓은 경민이의 담담한 말투와 슬픈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물론 이혼 부모를 둔 모든 아이들이 상처가 가득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건 아니다. 부모의 이혼을 겪지 않은 자녀들 이라고 해서 모두 밝고 상처 하나 없이 훌륭한 어른으로 크지 않는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경민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가정으로 받은 상처로 인해서 비뚤어진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의 상처는 또 다른 배우자에게 전이가 되고, 다음 세대에도 비슷한 결핍과 자식을 향해 투사된 분노를 반복하며 다시 가정이 해체 될 확률은 훨씬 커진다.  

즉, 부모가 서로에 대한 원망과 비난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법적으로 서류를 정리해 버린다면 상처는 고스란히 자녀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처를 받은 어린 자녀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어른으로 자랄 확률이 높아지고 그렇게 부모의 불행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있다면 정말 좋게 헤어지자. 게다가 이혼으로 상대방의 재산을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가능한 손해 보지 않고 많이 뜯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 아빠로서, 마지막의 예우와 의리를 남기면서 이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행동임을 알면 된다.

남자는 이혼 이후에 양육비를 보내면서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질수록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커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아이를 제한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꼬박꼬박 들어가는 양육비를 아깝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생각이 옳다는 게 결코 아니다. 양육비가 아이에게 들어가는 최소의 비용이자 살 수 있는 권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최소 수단이라는 지당한 외침과는 별개로 이혼 직 후에 겪는 남자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 이다.

양육비에 대한 법률이 강화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혼 후 양육비 지급률이 30퍼센트를 넘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단순히 이혼 남성이 도덕성에만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이혼 하면서 서로를 한 때 배우자였던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부성애와 법적인 의무만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건 비양육자인 남편과 아이와의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혼까지의 결정이 아무리 많은 분노를 느끼고 그 과정이 험난했다고 하더라도 웃으면서 서로의 손을 놓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에게 바로 임팩트가 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에게 아빠 험담을 하지 않았다고 안심하지 않아야 한다. 주 양육자인 엄마와 함께 자라면서 아이는 본능적으로 집 안의 분위기를 감지하게 되어 있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는 엄마,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된 엄마와 외할머니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아빠의 무책임한 행동들을 통해 아이 역시 아빠를 거부하는 게 엄마를 위하는 길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아이에게 잘못된 부모관과 사랑관을 심어 주고 싶은가? 이혼 후 남은 인생을 가슴 한쪽에 누구를 원망하는 에너지로 삼고 싶지 않으면 온 힘을 다해 상대방을 잘되라고 빌어주자. 나와는 인연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라고 진심으로 빌어주자. 좋은 마음으로 아이 아빠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고 아이가 충분히 아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놓고 꺼낼 수 있도록 호응해주자.

양육비를 제때 지급 하는 전남편에게 매달 꼬박꼬박 보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말자. 법적인 의무인데 당연한 거라고 받는 월급이 얼마인데 쥐꼬리만큼 준다고 생각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헤어진 배우자 역시 이혼으로 재산은 반토막 나고 공동재산 이었던 집도 날라갔다. 젊지도 않은 나이에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도 헤아려 주자. 남자는 그렇게 어린아이 다루듯 마음을 달래줘야 깨닫는다.

전 남편과 좋게 남자. 내 아이의 아빠의 역할을 비워두자. 결국은 아이도 전 남편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좋은 이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