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이 다시 결합될 때, 우리는
이 세상이 한하게 빛난다는 것을 안다.
이런 결합이 소설책에 등장하고, 영화나 오래된 연구 자료에 나오면 우리 뇌는 흥분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관계에서 결합이 일어나면
우리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관계를 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파트너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수월하게 결합된다.
- 수잔 존슨,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中에서
폭력에 의한 이혼이 아니었다면, 게다가 나의 전남편이 남편으로서는 빵점 일 지언 정, 아빠로서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면 이혼 직후부터 이혼 후 시간이 꽤 지난 무렵이 될 때까지 재결합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 처음에는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재결합 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치가 떨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자에 대한 분노보다 빈 자리가 느껴지는 시간이 찾아오게 된다. 더군다나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가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들과 함께 홀로 서기 위해서는 남편 못지 않은 경제력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남편에게 받는 양육비는 말 그대로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 일 뿐이기 때문에 스스로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이혼 후의 삶이 이혼 전의 인생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갖춰야 하거나 갖출 자신이 있어야 한다.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일단 일을 저질렀는데 비루한 일상은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아이 뿐 아니라 나의 경제적 풍요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혼은 절대로 감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따라서 이혼 후 혹은 이혼 과정 중에서 다시 살아볼까를 고민하는 단계라면 사실 이혼 결정 자체를 잘못 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대로 이혼해도 괜찮은 걸까, 과연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잘 살아볼 수 있을까, 아빠 없는 아이의 심리 상태는 괜찮은 걸까. 이런 걱정이 시작 된 단계라면 사실 이혼을 그대로 강행하든 다시 합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남는 법이다.
옥희는 남편의 외도로 남편과 심하게 싸우다가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들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너무 괘씸해서 머릿속으로 이혼해야 겠다는 생각을 스치긴 했지만 진짜 이혼을 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진 않았다. 일단 별거 하면서 생각도 좀 정리하고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 생각 이었다. 결혼 이후 소득없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옥희가 처음 ‘이혼’ 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그리게 되자 아이들 이라는 존재가 가장 큰 위안이자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아는 남편은 다른 건 몰라도 아빠로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남편이 상간녀랑 주고받은 다정한 카톡과 SNS의 수상한 사진 몇 장을 손에 넣었다. 이혼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친 이혼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남편이 아이들과 통화를 원하는 남편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엄마 아빠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눈치 챈 아이들이 불안한 증세를 보일 때마다 옥희도 덩달아 초조하고 많은 미안함을 느꼈다.
친정으로 간 지 2주가 넘어가자 친정 부모님도 옥희에게 은근 슬쩍 압력을 넣었다. 남자 외도 한 번에 이혼을 결심하는 옥희를 오히려 이기적으로 여기는 듯 싶었다. 남편이 싹싹 빌면 모르는 척 용서해주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친정 엄마를 보면서 역시 출가외인 이라는 말을 통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친정으로 이혼소장이 날라왔다. 소장에는 그동안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남편과 시댁을 얼마나 방치했는지 구구절절 묘사되어 있었다. 옥희는 기가 막혔다. 눈물을 흘리며 친정에 와서 무릎을 꿇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그 사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차에 태우고 돌아다닌 소문이 친정에까지 들려왔고 옥희도 반소를 하며 남편과 법정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초반에 양육권을 주장하던 남편이 슬쩍 주장을 내려놓고 양육비를 많이 줄 수 없다고 했다. 가정 조사관이 친정에 두 번이나 방문하면서 아이들을 관찰했다. 아이들은 불안에 떨며 아빠를 찾았다. 남편에게 아이들과 화상 통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남편도 혼란스러운 것 같아 보이긴 했다.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남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낼까 고민했다. 지금 이라도 감정 소모전을 그만두고 다시 합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생각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 사이 서로의 금융내역이 조회됐다. 남편에게 제대로 말하지 않고 친정 부모님께 몰래 드렸던 최근 2년치의 입출금 내역에 남편은 분개하는 듯 보였다. 함께 살았으면 알고도 넘겼거나 몰랐으면 더욱 좋았을 크고 작은 비밀들이 변호사에 의해서 고스란히 까발려 졌다.
옥희 역시 외도 이외에도 남편들의 부정이 속속들이 드러나자 지금껏 애 낳고 함께 살아왔던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더할 나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마음의 동요를 접고 치열하게 재산과 양육비 싸움을 벌이고 몇 번의 변론기일 연기와 조정을 통한 뒤 상처만 가득 남기고 이혼도장을 찍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몰라보게 자랐다. 간혹 아이들 입에서 엄마 아빠랑 살 때 제일 행복했었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찢어진다. 이혼 후가 훨씬 행복하다는 여자들도 더러 있다고 하지만 옥희의 경우는 아니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마트에서 하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버겁고 그깟 외도 눈 딱 감고 넘어가는 게 모두를 위했던 길이 아닌건지 혼란스럽다.
만약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언어 및 신체적 폭행을 당했거나 남편이 도박, 술, 게임, 성매매 중독에 빠져서 표면적으로 남편과 아빠로써 자격 없는 행동을 꾸준히 해온 경우 이혼은 여자에게 탈출구를 제시해 준다.
그러나 옥희네 부부 이야기처럼 발생한 외도 자체의 문제가 부부생활을 위협한 게 아니라 부부간의 자존심 싸움이 이혼이라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의외로 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피해는 오롯이 아이에게 돌아간다.
헤어진 부부가 재결합을 생각하는 것도 아마 둘 사이에서 영원히 떼어 놓을 수 없는 ‘아이’라는 존재 때문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부부의 재결합을 생각했을 때, 단순히 ‘아이’만을 위해 서로의 존재를 꾹 참고 견뎌야 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파국과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이혼 후, 상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라앉고 이제 타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 할 때쯤, 어느덧 필요이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남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경우라면 한 순간에 아빠를 잃고 가끔 보는 아빠를 어색해 하는 아들, 목욕탕에 늘 혼자 가야 하는 아들, 부쩍 자신감이 없어진 아들을 보면서 참담하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꼬박꼬박 면접 교섭권을 행사하는 이제는 전 남편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보면서 묵은 감정이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그리움만 남아 있다. 바로 그 순간이다. 재결합에 대한 얘기가 솔솔 나오는 시점, 애를 봐서라도 다시 한번 잘 살아볼까?
재결합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내려줄 수 없다. 정답으로 만드는 건 자신과 상대방이 얼마나 재결합에 대한 의사가 강한지, 그리고 한번 깨진 그릇을 어떻게 이어 붙일지에 대한 치열한 반성 없이는 실패가 반복될 뿐이다.
사실 깨진 그릇은 도로 붙일 수 없다. 끝을 본 관계는 끝을 내는 게 맞다. 끝을 내야 시작이 만들어 진다. 또한 재결합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첫 이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상처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