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koni Jun 20. 2021

15. 적당히 아는 게 병이다.

뭐든 살짝 아는 게 문제다. 아예 모른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사람이 자연스레 겸손해진다. 그런데 뭣 좀 슬슬 안다고 생각하니까 테니스에 관해서 온갖 잡 정보들에 둘러싸여 나름의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코치님은 서브를 이렇게 가르쳤는데, 유튜브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할 때도 있다. 나의 코치는 분명히 발리 스윙을 ‘이렇게 가르쳤는데’ 누구나 알 만한 테니스 전문가는 발리 스윙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어쩐지... 우리 코치가 잘 못 알고 있는 거 같아. 저 유튜버 말대로 해봐야지. 우리 코치는 그냥 듣보인데, 저 사람은 유명하잖아?


이렇게 중얼거리며 스윙을 멋대로 바꿨다. 내 안의 교만함과 근거를 알 수 없는 평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막상 레슨 수업이 시작되자 담당 코치의 코칭과 어젯밤 잠들기 전 영상속의 유튜버의 조언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뒤엉키면서 자세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졌다. 일단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코치가 가르쳐 준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세를 잡다가도, 공이 네트에 걸리거나 하늘을 향해 붕 솟으면, 또 이게 아닌가 싶어서 우왕좌앙 스윙을 바꾸고, 자꾸 스텝이 꼬였다. 


- 허허, 몇 주 동안 꾸준히 잘 따라와 주더니, 오늘 컨디션이 안좋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네요?

-네?

-지금 자세가 다 무너지고 있잖아. 내가 언제 발리를 그렇게 가르쳤어. 라켓을 세워야지. 눕히면 안되지, 그립이랑 발은 또 왜 그래. 왼발 뭐하는 거야. 왼발. 왼발도 앞으로 나와야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너무 많은 정보들의 시비를 가릴 여유도 없이 나는 단편적으로 지식을 얻었다. 담당 선생님에 대한 불신은 그동안 힘들게 땀흘려 쌓아올린, 알량하게 그지 없는 테니스 실력마저 한 보 퇴보 시켰다. 

운동 후에는 항상 땀흘린 기쁨으로 뿌듯 했었는데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만 말이 빠져 들어가는 뻘에 갇혀서 손을 허우적 대다가 엉덩방아를 찢고 주저 앉았을 때처럼 찝찝함이 남았다. 

운동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테린이 모임] 이라고 이름붙인 카톡방을 열었다. 사실 테린이는 나 하나고 10년 이상 테니스를 꾸준히 친 동생 예지와 예지의 대학 동기인 Y까지 세명의 친목 방이었는데, Y는 테니스 선수출신인 현직 주니어 테니스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나 :  얘들아, 나 다른 코치 선생님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예지 : 왜요? 엄청 열심히 가르쳐 주신다면서요.]

[나 : 그건 그런데, 발리 설명이 좀...이상한 것 같아. 그냥 의심 없이 열심히 배우다가... 유튜버로 테니스 동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거든. 근데 임팩트 면에 대한 설명이 좀 다르더라고. 뭔가 내 코치의 설명이 잘못 된 게 아닐까?]


예지와 내가 라켓 사진에 마크 까지 표시해 가면서 서로 발리 임팩트 면에 대해서 서로 오르니 그르니 썰전을 펼쳤다. 그때 대화를 쭈욱 ‘읽씹’하던 Y가 한마디 했다. 


[Y : 그냥 네 코치 말만 믿고, 코치가 하라는 대로 해. 가르치는 방법이야 너무 다양하고, 정답도 없어. 네가 코치 보다 잘하는 거 아니면 의심을 거두고 그냥 선생 믿고 따라가]

[나 : 아...]

[Y : 원래 살짝 아는 게 병이야. 코치를 욕하려거든 적어도 코치만큼 대등하게 칠 수 있을 때 지적해]



맞다. 하긴 나는 유튜브로 테니스 코칭 동영상을 찾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코치 선생님께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차근차근히 정석대로 제대로 밟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20분, 30분의 레슨후에 칼같이 수업을 끝내는 코치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 테니스 코트 이름도 없이 운영되고 있던 코트 였는데 항상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레슨을 해 주시는 분이었다. 

테니스를 길고 오래 할머니가 되어서도 치려면 바른 자세로, 해야 한다고, 느리게 가는 게 가장 빨리 가는 길이라고 말해주셨던 분이다. 서브를 가르치면서도 집에서 수건을 둘둘 감아서 매일 100번씩 연습하라고, 서브 할 때 공을 자꾸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폼이 망가지니, 제대로 뒤에서 라켓을 돌릴 수 있을 때까지 허공에 대고 계속 스윙연습을 혹독 하게 시켰는 분.

이 분의 레슨 스타일이 힙한 유튜버 코치들과 다르자 내가 자꾸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의심을 거두자 나의 테니스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졌다. 퇴보 됐던 실력이 다시 제자리에 오르고,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지인이 인정할 정도로, 테니스 코치님의 얼굴에 미소가 띌 정도로 실력이 올라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시절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