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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이 Jul 03. 2023

난 꽉 막힌 아빠일까

교사라서 그런 건지도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딸이지만 다음 주에 수영장에 간다며 저녁을 굶는다. 다이아트 삼아 굶는 것은 이제 계절마다 주기적으로 겪는 일상이 되어 걱정의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닭가슴살이나 샐러드용 채소를 집에 사다 놓을 뿐.

그런데 수영장을 가겠다는 날이 금요일이란다.

금요일 쉬는 날이냐고 물으니 친구들이 다들 생리결이나 현장체험을 쓴다고 했단다.

생리결을 쓰고 수영장에 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현장체험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연계된 활동이거나 가족의 여행 같은 상황에서 결석을 인정해 주는 것이 현장체험학습의 취지일 텐데 어떻게 여섯 명의 학생 중에 누구도 이렇게 금요일에 가느니 토요일에 가자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일까.

생리결석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생리결석을 인정해주지 않아 산부인과나 청소년과의 진단서까지 제출하던 것이 몇 년 안 된 일이고 그런 과정을 생략해야 한다고 학교 담당자들과 다투기도 했었다. 학생이 생리통으로 거짓말을 할지라도 그건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의 정말 아픈 학생들은 아픈데 억지로 산부인과를 다녀와야 한다며 설득했다. 그렇게 몇 년을 싸워서 얻어낸 게 지금의 간편한 생리결석 서류이고 믿음과 인정이었는데.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엄청 큰일도 아닐 수 있다 학교에 가고 말고는 학생의 선택이고 수영장에 평일에 가는 것은 사람 많은 날이 피하기 위함이니 충분히 그 마음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냥 미인정 결석으로 가는 것이 기록에 남을까 봐, 그건 싫어서 여럿이 생리결을 쓰는 것은 너무 영악한 행동 아닌가.

그러면서 교사들이 학생을 안 믿는다고 말할 것이 있나.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이면서 당당한 게 이미 학교라는 곳의 풍습이 되었나.

이미 딸은 학교의 임원이 되면서부터 학교에 대한 실망이 가득하다.

수업준비를 안 하고 자습서만 읽어주는 교사, 학생회예산을 못쓰게 하더니 체육대회를 학생회주관이라고 말만 붙이고 학생회 예산을 가져다 쓰는 학교, 교복은 수십 년째 한 곳에서만 사게 하는 학교에 대해 이미 불신은 커질 데로 커졌다. 그렇다고 나까지 그래야 하겠는가.

모두가 그러니 나도 그래도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집에서 가장 강조했었는데

이미 딸은 부모보다 또래의 영향으로 사는 존재가 되었나 서글프다.


저녁에 결국은 생리결을 쓰지 말고

생리결 써서 가는 그 수영장 모임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안 된다고

대화를 회피하길래 다시 나와서 이야기를 더 하자고 했으나 딸은 내일 시험인데 왜 그러냐고 한다.


결국 화를 냈다.

한동안 가족에게 소리를 높이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공부, 시험, 그까짓 것들은 아무 상관없다고

내가 사랑하는 딸은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솔직하고 언제나 당당한 딸이 왜

거짓말을 하는 딸이 되었냐고 한탄했다.

한번 그러면 두 번 그럴 거고

그러다 보면 공부를 잘하든 말든

인간답지 못한 삶 아니겠냐고 큰소리를 냈다.


시간이 지난 것이 안타깝다

어릴 때 학생인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딸은 노원구 청소년의회에서 청소년 인권에 대해

발표하곤 했다.

꼴찌여도 좋고 수학을 0점 받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투쟁의 결과인 것들을 그렇게

막 써서 누군가들의 불신을 만들어내는 것들만 안 한다면.



참, 다른 부모들은 어떻게 그럴까도 신기하다.

딸의 말이 전부 진실은 아닐수도 있지만

다들 괜찮다고 했단다.

생리결을 쓰든 가짜 체험학습을 쓰든

그 부모들은 몰라서 넘어간 것일까

아니면 아는데도 괜찮다는 것일까

혹은 단지 나만 꼰대일 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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