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찐하게 그려낸 <나르코스>를 보고
예전에 콜롬비아를 한달 정도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를 거쳐 남미까지 1년 가까이 여행했음에도 콜롬비아는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나라로 다가왔습니다. 가기 전부터 여러 여행자에게 마약 카르텔 이야기부터, 대낮에도 강도에 털린다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에콰도르에서 콜롬비아로 국경을 넘어가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시체를 목격했습니다! 하늘을 보며 누워있는데, 아무래도 총을 맞은 것 같더군요.ㅎㄷㄷ 대낮에, 시체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과 경찰 옆을 버스로 통과하는데 심장이 절로 쫄깃해지더군요. '아, 내가 드뎌 콜롬비아에 왔구나.' 아주 강렬한 첫 대면이었습니다.
콜롬비아에 입국해 뽀빠얀, 보고타 등 몇 개 도시를 거쳐 '메데인 Medellin'에 도착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죠. 메데인에는 아주 유명한 인사가 둘 있습니다.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둘다 메데인 출신으로, 글로벌한 명성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메데인의 '안띠오끼아 미술관Museo de Antioquia'에 가면 둘의 흔적을 한번에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보테로가 그린 에스코바르의 그림이 있거든요. 마약왕 파블로가 경찰에 쫓기다 지붕에서 총에 맞고 쓰러진 최후를 그린건데, 작품명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입니다. 당시엔 에스코바르가 누군지도 잘 몰랐는데,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에스코바르가 지붕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그림을 보면서 첫날, 입국하면서 보았던 도로변의 그 남자가 오버랩되었습니다. (그림을 다시 보니 이 거대한 배 때문에 기억에 남았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하는 오리지널시리즈 <<나르코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위의 '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죠. 몹시 가난했던 그가 어떻게 세계 마약 70%를 유통하는 마약왕으로 성장하고 또 어떻게 망해가는지를 마치 다큐처럼 생생하고,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에스코바르의 일생과 그를 쫓는 미국의 마약감시반 DEA 요원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중간에 도무지 끌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강해서, 시즌 3까지 30편을 이삼일에 몰아 봤습니다. 덕분에 인공눈물만 몇 통을 눈에 쏟아부었는지 모르겠네요. 나르코스를 보면서 이전의 콜롬비아 여행기억까지 더해지니 재미가 배가 되더군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출신으로 매우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영리함과 배짱으로 마약사업에서 수완을 드러내고 일찌감치 콜롬비아를 아우르는 마약왕이 됩니다. 20대에 최대규모의 마약 카르텔인 '메데인 카르텔'을 결성하고, 전성기땐 전세계 코카인 시장의 80%까지 컨트롤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세계 7위 부자까지 오릅니다. 너무 돈을 많이 번 나머지 주체하지 못해 땅에 묻기 시작했는데, 매년 10% 돈이 그냥 썩어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자산을 300억 달러 (36조) 추정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거의 80조 이상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였던 고 이건희 회장의 자산이 17조였던 걸 감안하면 장난없는 규모입니다. 그렇게 남아도는 돈으로 그는 고향 메데인에 성당과 병원을 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며 인심을 얻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국회의원까지 당선되죠.
차기 대통령까지 꿈꾸며, 막강한 자금력과 군사력을 갖춘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콜롬비아 내에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반대세력은 물론이고, 대통령 대선후보까지 암살할 정도였으까요. 이후 에스코바르는 범죄 행위와 비리가 폭로되면서 의원직에서 쫓겨나는데, 이때부터 광기가 폭주합니다. 그전에는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고 나름 분별있는 사고를 하기도 했는데, 이때부턴 각종 테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게 됩니다. 법원을 폭파하고, 대통령궁 근처에 폭탄을 설치하여 죄없는 아이들까지 죽이게 되죠. 이렇게 에스코바르가 죽인 사람 수는 무려 5000명에 달하는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의 제국도 결국은 서서히 기울어갑니다. 비행기테러, 차량폭탄테러 등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서 인심을 잃기 시작하고, 반대하는 세력이 뭉치기 시작하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세를 잃습니다. 인심을 잃자, 주변에 그를 따르던 수 많던 사람들도 없어지고, 자금 역시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집니다. 에스코바르는 수배자 신세로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 결국 1993년 12월 2일 콜롬비아 특수부대의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한 인간이 거침없고 집요한 욕망이 한 나라까지 흔들어버리는 걸 보면서,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새삼 놀라웠습니다. (심지어 실화라니...) 며칠동안 <나르코스> 푹 빠져 한 인간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하나의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입니다.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하기 마련이란 자연의 이치가 담겨있죠.
콜롬비아까지 통째 먹을 것 같던 에스코바르도 결국 화무십일홍으로 져버렸습니다. 스스로의 광기에 사로잡혀 마지막에는 아주 쓸쓸한 모습으로 도망다니다 결국 죽어버렸죠. 아주 보잘것 없이요. 그걸 보고나니, 희한하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어떤 것도 영원한 건 없다는데, 나라고 예외겠나!! 지금은 건강하고, 또 젊고, 잘만하면 오래오래 잘 살 것도 같은데 사실은 알 수가 없죠. 또 알고보면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하루하루 살 날이 줄어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80조의 재력으로 욕망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던 에스코바르, 그가 가면서 저에게 던져준 '화무십일홍'의 교훈은 꽤 묵직했습니다. 그는 벤처 캐피탈리스트 '나발 라비칸트'의 다음 말로도 대신할 수 있겠네요.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라."
종종, 떠올리겠습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