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오던 날마다
인과관계를 떠난 무언가를 느끼면 내게 있는 분명한 종교성으로 두려움을 감지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나만 더 슬퍼하면 될 것을, 세상이 함께 울어주는 것 같을 때를 말한다. '나는 그것에 아파하겠노라'하며 내면에 피운 성냥을 다 태울 때즘, 불어오는 비바람에서 함께 울고 분노하는 거대한 타자를 느낀다. 별개인 두 사건이 함께 나타날 때, 그러니까 인간들의 사건들이 '하늘의 흐름'과 겹칠 때 마음을 두드리는 갑작스러운 위안은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유 없이 무섭도록 좋다.
분을 내는 이유도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사실 멈출 길은 찾기 어렵다. 시*비용이라는 말이 유행한 데는 그만큼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런데 간혹 속세를 떠나 모든 것을 초월한 듯 가만히 들여다보는 존재들을 만나곤 한다. 그때마다 작은 분을 느낀다. 분을 내는 이유도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당신은 왜 그것들에서 자유롭냐고. 질투 섞인 의심일까. 호기심을 곁들인 조바심일까. 혹시 당신도 이전에 내가 그러했듯 돋아나는 신경의 잔가지를 매 번 쳐내는 것은 아니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다음 장면을 익히 알기에 매 회마다 넘어오는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질문을 듣지 못하는 곳에서 의문을 표출하면 하나의 분을 내려놓고 백 개의 분을 얻어간다는, 아무쪼록 슬픈 존재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