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에도 등급이 있다

몽글몽글 뭉쳐있지 말고 내려라 좀

by 쓴쓴

유난했던 2018년 올해 여름의 더위도 언젠가는 잊힌다. 짧았던 장마, 비켜가는 태풍, 녹아내릴듯한 폭염도 피부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우리가 떠올릴 감각은 아마도 '매우 뜨거웠던 어느 해의 여름' 정도로 단어만 남아서 남겨질 심상이라곤 '죽을 만큼' 일 것이다.


그러나 더위에도 등급이 있다. 누군가는 나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잠시 여름을 잊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여름을 이겨내어 생을 보전해야 한다. 내일을 맞으려면 더위를 삼켜내야 하는 이의 등급과 시원한 바람에 생을 보존하는 이의 등급은 태양의 오름과 함께 황급히 구분 지어진다.




이번 주 어느 하루는 살 이유를 찾지 못해 또 방황했다. 익숙해질 만도 한 이 우울한 동반자는 그림자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 받아들여야 한다. 내리쬐는 빛이 강렬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고, 영혼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그늘이 생겨야만 흐려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하루, 폭식으로 심적 허기를 메워보려는 욕망을 겨우 억누르고는 귀찮은 손을 들어 식빵에 잼을 발라 먹었다. 곡물식빵. 곡물이 들어가 더 고소하고 담백한 건강식품입니다. 대충 그렇게 쓰여 있었다.


더 '건강'한 제품을 사려면 얼마나 더 주고 사야 할까. 괜한 고민을 거듭했다. 곡물. 다이어트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이 식품은 다른 식빵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 값어치를 가지는 게 합당할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이룬다고 누군가 말했다. 이 빵에는 무엇이 담겨있을지, 그래서 나는 무엇으로 누구의 것으로 채워져 있을지 상상했다. 이 식빵은 누구의 몫일까. 식빵과 구름이 겹쳐 보였다.


누군가의 더위를 지불해 편하게 잼을 발라먹으면서도 흐려지지 않는 그림자가 원망스러웠다. 오늘은 구름이라도 가득 꼈으면. 그래서 하루종일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었으면 했다. 흐르는 땀방울 위로 조그만 빗방울 하나라도 내려주지 않는 하늘이 괜히 야속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