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느슨한 하루
2017년 8월 23일 수요일 | 암스테르담 3일 차
느슨한 오전
어제 술 냄새가 살짝 남은 아침.
침대 위에 몸을 대자로 펴고 흰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눈을 뜨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태블릿에 저장해 둔 예능 '비긴 어게인'을 틀어놓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말랑하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몸과 마음이 고요한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 전까지 뻥 뚫린 침대지만 세상과 살짝 떨어져 나만의 동굴 속에 있었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나른함과 고요함을 한층 더 느끼게 해 주었다.
가볍게 외출 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먼저 어제 잠시 들렸던 배 모양의 건물인 'NEMO Science Museum(이후 과학관)'으로 향했다.
과학관 쪽으로 걸어가다 전시를 하고 있는 작은 건물이 보였다.
별생각 없이 들어갔고 정말 별거 없어서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운하와 사진
과학관 근처에서 밥을 먹기 위해 편의점을 검색했다.
구글맵은 현 위치에서 20분쯤 거리에 '알버트 하인(Albert Heijn)'이라는 마켓이 보여주었다.
마켓에서 샌드위치, 코코아워터, 하이네켄, 사과를 구매 후 마켓 앞 운하를 따라 조성된 공원 벤치에 앉았다.
바람과 물결 그리고 백조가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까지 살짝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운하와 어울리는 건물들이 좋은 배경을 만들었고,
물에 비친 윤슬과 힘차게 날아오르는 백조 모습이 식욕을 돋우웠다.
아점을 먹은 장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섹스 뮤지엄'을 방문했다.
어젯밤 들렀던 홍등가에서도 멀지 않은 장소였다.
섹스뮤지엄에서는 오래된 누드 사진 속 시대의 숨결이 마음에 닿았다.
오래된 서랍을 여는 것 같은 조용한 온기가 있어서 좋았다.
대단한 물건이나 전시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좋았던 점은 아주 오래된 사진 자료들이 많이 전시가 되어있어서 좋았다.
관람을 마치고 국립미술관과 반고흐 미술관으로 걸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엔 꽃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와 골목에 있는 작은 갤러리가 감성 한 스푼을 더했다.
작은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의 모습이 참 예뻤다.
그림의 떡, 반 고흐 미술관
국립미술관 앞에 도착하자 큰 아치형 통로가 나를 반겼다.
그리고 통로에서는 클래식 연주가 한창이었다.
둥글고 부드럽게 울리는 음이 아치를 타고 더 좋은 울림으로 사람들 위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 내 안쪽 어딘가가 살짝 말랑해지는 느낌이었다.
여행 자금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반고흐 미술관을 입장하지 않고 미술관 앞 잔디밭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연인부터 가족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일단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미술관을 들어가는 것보다 바깥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더 여행다운 순간이었다고 느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
어제 만난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은 이미 먹었으니 맥주만 마겠다고 하고 조금 늦게 합류했다.
술자리를 마치고,
뜻밖의 선물처럼 신라면 두 봉지와 독일에서 교환 가능한 €5 바이처를 양도받았다.
작지만 묘하게 따뜻한 순간이었다.
밤길을 따라 숙소로 걸어 돌아오며
오늘 하루가 내 안쪽 깊은 데까지 부드럽게 스며드는 소리를 들었다.
운하 난간에 앉아 물결을 바라보던 그 순간
너라면 그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가장 오래 붙잡았을까?
� 오늘의 경비 정리
아침(샌드위치·코코아워터·하이네켄·사과): €6.50
섹스뮤지엄: €5
저녁(닭가슴살 샐러드·오렌지 주스·맥주): €7.50
주피터: €2.50
캔맥 & 안주: €2.50
총합: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