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두 손 한가득 볼을 감싸 쥘 때. '어어' 소리에도 엄마가 무슨 말인지 척 알아차릴 때. 맛있는 사탕을 먹었을 때. 직접 뚜껑을 돌려서 열었을 때. 컵으로 물을 흘리지 않고 마셨을 때. 엄마 아빠가 날 보고 웃어줄 때. 까꿍놀이를 할 때. 의자에 스스로 올라가 앉았을 때. 먹던 컵을 설거지통에 넣고 칭찬받을 때. 뭐라도 한 가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쉽게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그게 좌절될 때는 쉽게 울기도 하지만, 다른 자극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만큼 또 쉽게 풀리기도 한다.
꼼지락거리는 통통한 발과 발가락, 포동포동한 볼, 평소에는 아치형인 눈썹이 일자가 되며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함박웃음, 호기심에 가득 찬 또랑또랑한 눈동자, 오늘 새로 하게 된 말, 스스로 벽을 붙잡고 일어설 수 있던 때부터 손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 계단을 오르내리는 단계까지의 모든 사소한 변화를 지켜보며 나 또한 단순한 행복을 누린다. 참 감사하다. 아이가 햇살처럼 환히 웃을 때는 내 마음에 졌던 그늘에도 볕이 든다. 미처 마르지 못한 축축한 마음도 뽀송뽀송해진다.
아가가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아들은 나를 빼다 닮았다. 날 닮은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보니 반대로 내 얼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이 눈웃음을 지으며 활짝 웃을 때면 갈매기 모양의 눈썹이 일자로 변하면서 둥글둥글하고 순한 얼굴이 된다. 나는 웃는 게 어색하고 이상해서 웃는 얼굴에 자신이 없었는데 우리 아들을 보며 예쁘게 웃는 법을 배웠다. 아가 덕분에 거의 매일 웃을 일이 생기다 보니 웃는 얼굴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돌 때 가족사진을 찍는데 내가 제일 잘 웃는다는 칭찬도 받았다. 살면서 들으리라 전혀 기대치 않았던 말인데,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한 선배님이 내게 하신 말이 있다. 아기를 키우는 건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예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무슨 말인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기를 키워보니 딱 그대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힘든 줄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최근 아는 분과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다가 그분의 지인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관리를 잘하고 다니던 친구였는데, 아기를 낳고 나서는 아이가 예쁘게 나온 사진이면 본인은 맨얼굴에 꾸미지 않은 차림이라도 상관없어하는 걸 보고 놀라셨다고 한다. 일차적으로는 아이를 돌보며 꾸미는 게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서 느끼는 행복과 기쁨이 그걸 신경 쓸 겨를 없도록 훨씬 크니까요. 대답하면서도 새삼 부모의 자식사랑이 얼마나 대단한가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다행히 직장에서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아 평소보다 1시간씩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다. 그리고 밀린 잔업을 육아가 끝난 늦은 밤이나 남편이 있는 주말에 집에서 처리한다. 초근 수당도 없이 집에서 일이라니. 예전 같았으면 불만이 가득했을 텐데, 아이를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기에 그저 다행이었고 감사한 일이었다. 아가에게서 배운 단순한 행복은 1도 아니고 0.1부터 시작하는 행복이었다. 아주 사소하지만 단순한 만큼 확실한 행복. 그 행복은 10 중에 9가 힘들어도 상쇄시키는 힘이 있다. 아무리 힘든 날이어도 그 행복만 있으면 모든 고통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아이는 부모의 강력한 힘이 되고 행복이 된다. 정말이지 우리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