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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랍 애미 라이프 Feb 27. 2024

주부지만 계속 성장하고 싶어

내 삶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빠르다.
때로는 나도 내가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든다.




새벽 5시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핸드폰이 드르륵드르륵 진동을 울려댄다.

일어나라는 소리다.


저녁형을 넘어 밤형 인간의 대표주자급이 될 정도로 게으른 나라는 인간은 아랍에 와서야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그 이유에는 '도시락'이 있다.


날씨가 더워서 인지 이곳 학교의 등교시간은 오전 7시 30분 경이다. 이것도 놀랄 노자인데 애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학교 급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3년간 급식을 먹는 아이들을 본 것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묻어가기 좋아하는 한국 엄마의 특성상 도시락을 싸 보내야 했다.

(이곳 아이들이 급식을 먹지 않는 이유는 '아랍애미라이프' 브런치 북에서 조만간 풀어보겠다.)





분명히 5시에 일어났는데 아이들이 등교를 완료 한 7시 30분까지 나는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다.

머리가 가장 맑은 아침 시간을 이런 단순 노동으로 버리는 게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1년 전부터는 에어팟을 귀에 꽂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어공부를 위한 콘텐츠를 듣는다.


EBS 오디오 어학당이나 영어 대화 연습을 할 수 있는 스픽을 튼다.

영어 실력이 영 별볼일 없는 나는 아침 시간에 이걸 하느냐 안 하느냐로 그날 하루의 말하기 버퍼링에 차이가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영어를 해야 하는 모임이 있는 날이면 좀 더 신경써서 이 루틴을 지킨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오후 두 시 반까지는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아랍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니 이제는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어졌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가정의 일원으로서는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억만장자라는 사람이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인터뷰를 보고 그곳에서 이 허전함의 실마리를 찾았다.


"행복을 좇지 말고 생산적인 삶을 쫒아라."라는 그 억만장자는 사람은 행복이 아니라 생산적인 무언가를 할 때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탁,

마음에 잠겨있는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아랍 스터디를 통해 내 이웃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고

글쓰기 모임을 통해 루틴을 만들며 동기부여를 받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부로서 충실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뭘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 무작정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도전해 보게 되었다. 아직 성과라고 할 건더기도 없지만 나는 지난 몇 년간 글을 쓰며 몸으로 깨달았다.

이렇게 남긴 매일의 기록들이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어준다는 것을. 그 사소한 매일의 힘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바탕이 되어 준다는 것을 말이다.







먼 훗날의 모습을 그려본다.

할머니의 얼굴을 한 나를 아이들이 그녀들의 친구에게 ‘우리 엄마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고 이런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생각과 지혜를 나누며 더 나은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그런 늙은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다.  


아무도 내게 데드라인을, 숙제를, 업무를 넘겨주지 않는 주부이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마감을 주는 이유는 단 하나.


그저 계속해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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