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의 정신적 버팀목
우리 글쓰기 모임의 멤버들은 아랍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분도 있고 기간이 정해진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직장을 다니시는 분도 있고 가정주부인 분도 계시다. 삶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매주 자유주제와 선택주제를 정해 자유롭게 글을 쓰는데 선택주제는 매주 멤버들이 돌아가며 정한다. 주제와 글에 삶의 지혜와 치열한 고민들이 묻어난다. 나는 내가 이 모임을 시작한 것이 작년에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주의 선택 주제는 '나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5가지 이야기'였다.
나는 그 주제를 받아 들고는 오랜 시간 모니터의 빈 화면만을 바라보았다.
작년, 아이가 괴롭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불안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나는 카운슬러의 조언을 받아 집안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그곳에는 단 둘이서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의자를 하나 놓았다.
아이들은 언제든 마음이 두렵거나 불편할 때 나의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우리는 그 장소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역할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안아주면서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랬구나. 너무 속상했겠다. 엄마가 너였으면 그렇게 대처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너는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 현명하게 잘했네. 기특하다.'
처음에는 진심을 다했는데 아이가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자 솔직히 나중에는 좀 앵무새처럼 대응하기도 했다.
마치 네네~ 고객님~ 이런 식이랄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이의 불안증은 개선되어 갔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아이는 가해자 아이를 마주치더라도 공포에 질려하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이를 보듬어 재워 놓고 홀로 앉아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책했다.
왜 그렇게 밖에 대응하지 않았니.
왜 아이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지 못했니.
왜 영어를 그것밖에 못하니.
등등등 날 선 말들로 2차 가해, 3차 가해를 해댔다.
나는 내 자식하나 지키지 못했던 참 무능한 엄마라고.
그래서 그 주제를 받아 들고 한참이나 먹먹해했다.
아이를 위해 내뱉은 말과 스스로에게 들려주었던 말이 참 상반되었었다는 것을 그 주제를 받아 들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날것의 이야기를 적는 게 사실 좀 창피하기도 했다.
멤버들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다들 스스로에게는 채찍질을 하는 말들을 내뱉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주제는 스스로에게 내뱉는 말을 인지하고 이제는 따스하게 안아주자는 의미였으리라.
아이에게 건네었던 그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해본다.
그랬구나. 너무 속상했겠다. 그렇게 대처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너는 정말 최선을 다했구나. 현명하게 잘했네.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