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Юлія Дубина
그 해의 봄날은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같은반 여자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겨울보다 차가운 날들이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초등학교 6학년, '다섯손가락'이라는 클럽을 만들정도로 친했던 친구들이 하루 아침에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금을 긋는 외롭고 힘든 경험이 시작되었다. 왜 내가 따돌림을 당했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골똘히 생각해보면, 하나의 이유는 당시 내가 유행에 뒤쳐지는 옷을 입고 다녔고, 항상 김치나 볶은김치나 맛없게 구운 식은 햄 등의 같은 도시락 반찬을 싸 가지고 다녔던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부모님은 당신이 잘 모르는 친구의 집이나 낮에 어른이 계시지 않는 친구네 놀러 다니는 것을 절대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동그란 안경에 낡은 청바지와 하얀 면티를 입은 단발머리의 깡마른 여자 아이가 혼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이마의 땀을 닦던 모습이 뿌연 이미지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때, 나는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직전까지 단짝이었던 친구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니가 쟤랑 놀면 난 너랑 안놀꺼야!'라는 다 들리는 목소리로 속닥거릴때, 배신감이 무엇인지 배웠다. 손을 들고 발표를 하면 '쟤가 뭐라는지 안 들려요! 뭐라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선생님께 큰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반 전체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 가뜩이나 소심한 나의 목소리를 더 기어들어가게 하는 아이도 있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니가 저 악세서리 가게에서 하트 목걸이를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나오면 이제 너랑 다시 놀게.'라고 나에게 도둑질을 시키는 한 여자아이의 당당하면서 부드럽고, 또 사악했던 목소리였다. 매주 일요일 아침, 교회에 다니는 내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양심을 팔수는 없었기에 난 왕따를 면할 기회를 거절하고 말았다. 당연히 따돌림은 이어졌다. 학년말, 아이들에게서 받은 롤링 페이퍼에는 '옷이 이상하다.', '밥을 이상하게 먹는다.', '조용하다.', '목소리가 이상하다.' 라는 류의 문장이 가득 쓰여있었다. 작은가슴이 송곳으로 쿡쿡 찔리듯 아팠고 피가 났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1년간 왕따를 경험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난 너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 너희가 나를 제대로 모르고 그런 행동을 하는거야. 사실 나 되게 중요한 사람이다.'
정말 그랬다. 당시 나는 도서관에서 읽었던 안데르센의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를 떠올렸다. 지금 나의 모습은 비록 초라하고, 어딘지 어울리기 어색하고,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어 보이지만 이유없이 한 사람을 따돌리는 다수의 아이들과 분명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우리반에서 내가 가장 인기없고 별 볼일 없는 미운오리새끼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백조처럼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물론 함께 놀 친구가 없다는 것, 도시락을 함께 먹을 친구가 없다는 것, 체육시간에 달리기 차례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 친구가 없다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종종 수치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존재가 가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상하게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나와 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 돌고, 진짜로 할 것이 없어서 책을 읽었고, 공부를 했다. 나는 '찌질하긴 한데, 공부는 쫌 하는 6학년 4반 왕따'였다.
지옥같은 1년이 흘러갔다. 잘해야 열두살밖에 안된 여자아이의 예상은 적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무슨 행운인지 우리초등학교 에서는 나를 포함한 단 2명만 배정된 그당시 학군에서는 갈 수 없는 어느 명문 사립 여자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괴롭혔던 6학년 아이들을 한명도 다시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교복으로 옷이 바뀌면서 나는 더 이상 옷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부드럽고 친절한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고 신나고 따뜻한 중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6년정도 흘렀을까. 대학생이 된 나는 콘택트 렌즈를 끼고, 엷은 화장을 하고, 산뜻한 여대생의 옷차림으로 옆에는 영문학 전공서적을 끼고 꽤 멋진 외모를 가졌던 남자친구와 걸어가던 어느 봄날이었다. 그날, 나는 나를 무척 괴롭현던 아이와 신촌 한 복판에서 영화처럼 마주쳤다. 그애는 한눈에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나는 알아보았다. 5초정도 지났던가? 나를 알아본 듯한 그애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를 도도히 지나치며 나는 '미운오리새끼' 동화를 다시한번 떠올렸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당장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나의 미래만 불투명해 보일때, '이게 나의 끝이 아니야.'라고 습관처럼 되뇌인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떠올리던 6학년의 철저히 외롭던 그 날처럼 말이다. 이런 나의 습관은 매우 긍정적인 힘이 있어서 지금의 내 고통을 잠시 잊고 더 나은 내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멋진 돌파구이자 시작점이 되어준다.
모든 경험은 다 지나고 보면 나에게 교훈을 준다고 했던가. '6학년 4반 왕따'라는 1년간의 이벤트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커다란 마음의 눈'을 알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다. 그렇지만... 다시하라면 그러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