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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 김 사장 Nov 17. 2019

이란성 쌍둥이적 독서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


작가 레이먼드 카버와 편집자 고든 리시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도 이런저런 풍문을 듣긴 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던 터였다. 시간이 나면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을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1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얼마 전 휴가를 이용하여 슬슬 읽어보았다. 네 살 터울인 카버와 리시는 경제적으로 궁핍했음에도 문학에 대한 야망이 가득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흡사하다. 하지만 대학에서 멘토를 만나 작가로서의 꿈을 계속 키워간 카버와 달리, 리시는 대학 시절에 만난 작문 강사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듣고 작가로서의 꿈을 접는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리시는 셀 수 없이 많은 소설을 읽었다. 직접 잡지를 발행하며 여러 작가를 인터뷰하는 등 문학적 관계망을 만들어나가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여 그는 잡지 <에스콰이어>에 소설 편집자로 입사하게 된다. 1933년에 창간한 <에스콰이어>는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게재하며 명성을 얻었고 플래너리 오커너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최고 수준의 작가들이 작품이 싣기도 한 잡지였다. 리시의 임무는 침체된 <에스콰이어>에 활력을 불어넣을 소설을 찾는 것이었다. 


잠재력이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일에 리시는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온갖 매체에 발표된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신인 작가와 기성 작가를 가리지 않았다. 그중에서 자신의 눈에 띈 작가를 섭외하여 지면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저 지면만 내준 것은 아니다. 리시는 <에스콰이어>에 실리게 될 소설들에 공격적인 편집을 가했다. 일단 리시의 손을 거친 소설들은 상당 부분 변형되었고 원래의 톤을 찾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리시의 편집에 이렇다 할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리시에게는 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 즉 소설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실력 있는 편집자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중에는 레이먼드 카버도 있었다. 두 사람이 각별해진 건 1967년 무렵이다. 당시 카버는 파산 상태여서 집 전화가 끊길 지경이었고 알코올중독으로 아내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마침 리시와 만난 레이는 <에스콰이어>에 작품을 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소설을 써내려갔다. 늘 새로운 소설을 원하던 리시 입장에서도 레이는 중요한 존재였다.


둘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의기투합했지만 1972년 3월 <에스콰이어>에서 보내온 교정지를 받아본 카버는 기함하고 말았다. 제목을 비롯하여 내용의 상당 부분이 리시에 의해 수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버는 불만을 터트렸다. 아내 메리앤도 절대로 호락호락 넘어가선 안 된다, “제도권에 팔려가려고 애쓰는 창녀”가 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끝내 카버는 리시의 편집본을 받아들였다. 잡지의 고료가 절실했고 리시와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며 어찌됐든 이 소설들을 단행본으로 묶어서 펴낼 때는 내용도 제목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면 단행본 작업은 카버의 바람대로 진행되었을까. 한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는 분량의 단편이 모였을 때 카버는 리시에게 연락했다. <에스콰이어>를 그만두고 크노프(알프레드 크노프가 1915년에 창업한 출판사)에 적을 두었던 리시는, 그동안 발표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여 자신의 원고를 검토해 달라는 카버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했으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크노프에서의 출간도 주선했다. 이 책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판매는 경이적이었다. “단편집으로는 놀랍게도 하드카버 만오천 부가 모두 팔렸고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빈티지 출판사에서는 페이퍼백의 권리를 위해 20,000달러를 지불했다.” 이 책을 읽고 카버의 팬이 된 독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카버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 2007년의 어느 날 <뉴욕타임즈>에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카버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리시에 의해 대폭 수정됐다’는 기사를 게재했고 이는 문단의 스캔들이 되었다. 카버의 두 번째 부인인 갤러거는 고인의 뜻에 따라 최초 원고를 그대로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생전에 카버가 정한 제목은 <풋내기들>이었다.


그리하여 레이먼드 카버가 쓴 <풋내기들>과 레이먼드 카버가 쓰고 고든 리시가 편집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독자로서 이와 같은 이란성 쌍둥이적 독서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거나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문장이 ‘그대로’ 인쇄된 작품과 편집자에 의해 ‘상당히’ 변형된 작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다만 나는 이러한 전개를 들여다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출간할 당시 카버와 리시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카버는 작가 생명을 걸고 리시의 편집본이 출간되는 걸 막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리시는 단호하게 카버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책을 만들었다. 이후에 커버는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출판사와 편집자를 고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마지막 작품집 <대성당>의 책임편집을 또 다시 리시에게 맡겼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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