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무렵에는 주위 친구들이 다들 가방에 두툼한 영한(영영) 사전을 하나씩 넣어 가지고 다녔다.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도 <성문종합영어>를 보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사전을 찾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렇게 한 번 찾은 단어는 노란색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뒀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사전을 찾았을 때 단어에 노란색이 칠해져 있으면, 예전에 내가 찾아봤던 거구나 하며 다른 색깔의 형광펜으로 위에 덧칠했다. 가끔은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반사적으로 사전을 집어 들었는데 찾으려던 단어가 적힌 페이지를 한 번에 척 펼칠 때도 있었다. 골프에서 홀인원이라는 걸 하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이건 사전이 손에 익은 탓도 있지만 책장끼리 서로 달라붙는 일 없이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에서 쉽게 떨어지도록 특수 기법으로 종이를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밤낮으로 끼고 다니며 숱하게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대관절 사전을 누가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막연하게나마 컴퓨터 비슷한 기계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가며 그때그때 만드는 게 아닌가 짐작했을 따름이다.
사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지는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출판사를 차리고 9년쯤 지난 어느 겨울날의 일이다. 그날 출간 작업중에 몹시 불쾌한 일이 있었다. 화가 나서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사무실을 나온 나는 슬렁슬렁 거리를 돌아다녔다.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영화나 볼까. 마침 시네큐브가 가까웠다. <행복한 사전>이 개봉했다는 건 매표소에 도착해서 알았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미야자키 아오이 씨를, 나는 그날 이후로 쭉 좋아해 오고 있다. <행복한 사전>은 사전을 만드는 편집자들의 이야기다. 줄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시시콜콜 적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얘기해 두고 싶다. 사전을 출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년에서 15년, 길게는 20년도 넘는다. 그러다 보니 사전 하나를 만드는 동안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는 편집자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들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 전자사전과 핸드폰 덕분에 사전이 팔리지 않으니 출판사에서는 사전 편집팀을 없애려고 하는 판국이다. 상황이 이런데 사전을 만들다 쓰러진 고령의 편집자는 병상에 누워 노심초사한다. 제 몸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십여 년 동안 만들던 사전을 마무리 짓지 못해 안타까운 것이다. ‘행여 실수가 있지는 않을까’, ‘사전 편집팀이 없어져서 출간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결국 그는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일개 편집자의 죽음이 특별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 장면을 마주하는 동안 나는, 누가 보면 부모님이 돌아가셨나 여길 만큼 펑펑 울었다. 마치 편집자로서의 내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와서 더 이상 책이 팔리지 않으면 나 역시 걱정만 하다가 죽어가겠지. 그날 영화관에는 관객이 고작 세 명뿐이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복받쳤는지도 모르겠다. 책도 안 팔리는 마당에 책 만드는 얘기를 누가 관람료까지 지불해 가며 보러 온단 말인가. 밑도 끝도 없이 세상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시비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런 폭력적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책 때문에 서운했던 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출판사에서 신간을 펴내면 규모가 교보문고쯤 되는 서점의 경우 지점당 열 권을 받는다. 책이 앞표지를 드러낸 채 누워 있는 곳을 ‘매대’, 책등이 보이게 꽂혀 있는 곳을 ‘서가’라 부르는데 신간은 일단 매대에 진열됐다가 잘 팔리면 옆 ‘베스트셀러 매대’로, 팔리지 않으면 서가로 가는 것이 수순이다. 이때 서가로 가는 책은 한 권뿐, 나머지 아홉 권은 출판사로 되돌아간다. 반품되는 책들은 찢기고 때가 타거나 심지어 찌그러지기도 한다. 배송과정에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매대에 놓여 있는 동안 여러 사람이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그리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마도 경험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갔다가, 맨 위에 놓인 책은 표지가 꾸겨졌으니까 싫고 그 아래 책은 책배에 뭐가 묻었으니까 싫어서 결국 맨 아래 놓인 ‘가장 깨끗한 책’을 골랐던 적 말이다. 신간이 나오고 서점의 진열상태를 체크하다가 그, 표지가 구겨졌거나 책배에 뭐가 묻은 북스피어 책을 발견하면 말할 나위도 없는 얘기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결국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로 쓸쓸하게 반품될 거라 생각하면 속상하기까지 하다.
그날 내가 약간 이상해진 건 <행복한 사전> 때문이겠다. 교보문고에 들른 김에 북스피어 신간을 둘러보는데 여봐란 듯이 때가 탄 책들이 눈에 띄었다. 매대 아래에 놓인 몇 권은 누가 읽다 떨어뜨렸는지 상태가 심각해서 재생을 해도 다시 유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처량하기가 나랑 같구나. 뭘 어쩌겠다는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책을 집었다. 그러고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가방에 넣었다. 내가 만든 책이니 집에 가져가봐야 읽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5호선을 타고 공덕역에서 환승하여 6호선 마포구청역 방향 플랫폼에 들어섰을 때 가방 속 책을 꺼내 보았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지만 다 죽어가는 물고기가 입만 빠끔거리는 것 같았다. 여기에 풀어주면 누군가 가져가서 읽어주지 않을까. 나는 아무도 없는 플랫폼 의자 위에 두 권의 책을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잠시 후 열차가 들어왔다. 출입문이 닫히는 동안에도 그것들은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을 꾸리던 엄마가 딸을 입양보내기로 결정하고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하루 종일 신나게 놀던 장면과 부잣집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이별을 예감한 딸이 엄마의 부탁으로 눈을 감고 울면서 백까지 세던 어느 영화 속 장면이 별안간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열차가 출발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