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글을 쓴다

엄마의 공부가 불안한 딸

by 곰곰

한국 시간으로는 아마 새벽 두 시쯤 전화가 온다. 엄마다.

“엄마 나 곧 미팅이야 빨리 말해”

“어휴 엄마는 왜 이렇게 글을 못쓰니. 엄마가 글 쓴가 보냄시난 읽고 어떤지 말해주잰?”

글 읽는 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엄마 글은 왜 귀찮을까.

“시간 어서”라고 하거나

“알안 얼른 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대강 눈으로 훑는다. 가끔 전화도 안 받는다.


엄마는 요즘 꾸준히 글을 쓴다. 내가 괜히 엄마 딸이 아닌 게 둘 다 비슷한 꿈이 있다. 책을 내는 것. 엄마는 철학적인 글을 내고 싶어 한다. 그 철학이라는 게 엄마가 처음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나는 사촌언니를 찾았다.


“언니 아무래도 엄마가 사이비에 빠진 거 같아!!!!”

언니는 본인이 저번에 제주도에서 봤는데 사이비는 아닌 것 같다고 나를 안심시켰으나 내심 불안했다. 그 공부모임이라는데 후기를 몇 번을 찾아봤다.


엄마는 열심히 글을 쓰다 가끔 우울하다고 했다. 사주를 읽을 줄 아는 언니가 자꾸 엄마에게 편인이 들었단다. 공부보다 몸을 움직여야 우울에 빠지지 않는단다. 몸을 움직여야 된다고 필라테스와 헬스를 보내놨더니 손목을 다쳐왔다.


엄마가 보내오는 글은 공부한 내용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이 왜 그리 미덥지 않던지. 공자 맹자 안 해도 엄마 왈로 충분해 보였는데. 하필 그때 내가 읽던 책이 사람이 사이비에 빠지는 이유를 알려줘서 더 그랬다. 그럴수록 내가 더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하는데 자꾸 말과 행동은 다르다.


은퇴하고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엄마와의 전화와 보내오는 글로만 상상하면 축축했다. 오랜만에 본 엄마는 축축 보다 뽀송에 가까웠다. 뽀송하게 살이 오른 아기는 아니다. 나이 든 나무에 햇살이 든 모습이었다. 엄마는 팔다리를 못 움직이는 할머니의 피부도 뽀송하게 지키고 할머니가 지키고 싶은 우아함도 (어느 정도) 지켜준다. 그러느라 엄마 본인의 우울과 화를 감당하지 못해 할머니와 밥상머리에서 대판 싸운다. 할머니를 돌보고 남는 시간을 책상 앞에서 알차게 공부에 쓰고 있었다.


옆에 있어도 그 공부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대강 책들을 보니 동의보감, 명리학, 동양철학 그리고 서양 철학도 몇 권 보였다. 요즘에 배수아 작가 책을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엄마의 공부 열정은 사주명리학에도 뻗쳤다. 엄마는 헤아릴 수 없는 본인의 삶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잘 연락도 안 받는 딸의 삶을 조금이라도 가늠해 보고자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건 아닐까? 가끔 나도

“ 엄마 나 올해는 뭐랜? 건강한댄? 어떵한댄?

마음이 약해질 때 칭얼댄다. 남자친구 부모님과 상견례 때는 사주 이야기는 꾹 다물었다. 남자친구 어머니는 사주에 기대는 걸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생일도 남편 생일을 물론 다 알고 있다.


여전히 엄마가 사이비에 빠질까 걱정한다. 글을 매일 쓰는 걸 보니 엄마가 어느 날 본인의 이름으로 책을 낼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남들도 엄마의 이야기를 엄마의 글로 더 많이 듣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부터 이렇게 엄마를 글로 써보며 이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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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