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스킨로션

우리 집 갓생루틴 주인공

by 곰곰

우리 가족은 본인의 쓸모에 매우 예민하다. 자신의 쓸모를 걱정하고 전전긍긍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본인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어한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 여행을 앞두고 뇌졸중이 왔다. 팔 다리가 자유롭지 못하다. 절대 혼자 하지 말라고 한 일들을 하려고 한다. 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려고 한다거나, 옷을 스스로 갈아입으려고 하거나, 화장실을 우리가 없을 때 가려고 한다거나, 워커 없이 걷지 못하고 팔다리에 힘이 없는 할머니가 하기에 위험한 일이다. 할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왜 다 못하게 하냐며 성을 낸다.


그러다 엉덩이 관절이 나가고 손목이 나갔다.


어린 시절 내가 관찰한 할머니는 이렇다. 아프기 전 할머니는 고집이 세고 친구가 많았다. 할머니는 세 자매였고 할머니 친구들 한복집 할머니 애란할머니와 화투를 치러 갈 때 나도 따라다녔다. 할머니는 엄마 학원에서 자판기와 매점관리를 했다. 나는 옆에서 핑클빵 국진이빵 포켓몬 빵을 차례로 얻어먹었다. 할머니는 나의 학습지 선생님들과 상담도 도맡아 했다. 할머니가 아프면서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돈과 사람이었다. 돈 없고 아프니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와 내가 아니라고 백번 말해도 할머니는 여전히 고집이 세다.


할머니와 오래 지내던 요양사분이 계셨다. 할머니는 어느 날 그 요양사 분과 크게 싸웠고 요양사 분은 일을 그만뒀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이불을 펴면서

“옆에 있겠댄 해신디 가부러쩌. 다시 안 왐신데“ 를 반복했다. 요양사 분은 할머니에게 할머니 옆에서 오래오래 있겠다고 했었단다.


할머니는 아침에 꼭 실내 자전거를 탔었다. 가장 가벼운 단계로 30분을 꾸준히 탔다. 일어나 아침을 먹기 전에 3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한 움큼의 약과 엄마와 꼭 같은 영양제들을 차례로 챙겨 먹는다. 그러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이를 닦고 잠시 거실 벽 의자에 앉아있으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정해진 요일에 예쁜 모자와 머플러를 하고 얼른 병원가서 물리치료 받자 했었다. 우리 집에서 아침과 점심의 루틴이 가장 단단했던 사람은, 단연 할머니였다.


내가 할머니라면 할머니처럼 의연하게 아침에 일어나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집에 누가 잘 오지도 않는데 머리를 잘 감고 이를 닦고 스킨로션을 바르면서 스스로에게 정성을 다 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작년부터 치매가 왔다. 할머니는 자꾸 잠을 안 주무시고 이불을 자기 방식대로 접으려고 한다. 워커 없이 한발 짝도 나갈 수 없어서 자전거도 이제 타지 않으신다. 스킨 로션은 꾸준히 챙긴다. 커피도 좋아하지만 위가 약해서 순하고 부드러운 것만드신다. 내 남편의 이름 우리 강아지 이름은 기억한다. 잘 안 움직이는 한쪽 손으로 스킨을 손바닥에 따르기 어렵다며 화장솜을 사달라고 하셨다. 내 남자 친구 (지금의 남편) 는 할머니의 환심을 단번에 샀다. 할머니 팔과 손을 만지면서 "할머니 피부가 너무 뽀송하고 부드럽고 고우시네요"라고 했단다. 단번에 친구에서 박서방이 되었다. 내 이름은 자꾸 까먹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미국에서 온 우리가 토요일에 할머니랑 다같이 꽃놀이를 가기로 약속했다. 할머니는 아침에 못 움직이는 팔로 옷을 다 벗고 앉아있었다. 머리를 감겨 줘야 하는데 왜 안 감겨주냐며, 할머니의 침대는 할머니에게 목욕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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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