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코에서 카트를 지키고 서있는데 내 옆에 할아버지가 폴더폰을 떨리는 손으로 닫고 있었다. 그 장면이 마치 영화 속 슬로 모션으로 지나갔다. 하얗게 센 짧은 머리에 마른 목과 말린 어깨, 그리고 잘 구부리지 못하는 양 손가락으로 폴더폰 위아래를 눌렀다. 폴더폰은 천천히 닫히다 자석의 힘이 닿는 그쯤 휙 닫혔다. 그 장면을 나는 잠시 슬퍼했다. 나에겐 저 할아버지에 대한 서사도 없다. 저 연약하고 힘없는 손의 이미지가 나의 수많은 '혼자'와 관련된 두려움을 툭 건드렸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해한 나의 인간관계의 패턴은 이렇다. 혼자로 남겨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자꾸 남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남이 원하는 걸 가져다주면,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이 행동이나 말을 좋아하면 나도 계속 좋아해 주지 않을까? 그럼 우리 쭉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지? 남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스스로의 형태는 흐물흐물해지다 희미해진다. 나는 내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긴다. 나를 찾는 게 나를 좋아한다는 동의어가 아닌데 필요를 마음으로 오해한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인간관계란 내가 뭘 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일은 번번이 정답이 없는 오답이다. 결국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 그 경험들이 쌓여 자꾸 스스로와 모두의 마음을 의심한다. 의심의 갈래는 두 갈래다. 하나는 내가 잘해줘도 너는 떠날 사람이라는 의심,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의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유 없이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하는 말에 갸우뚱할 때가 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왜 날 이뻐하는 거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러니까 이상해, 그럼 너도 나를 언젠가 떠날 거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진짜이긴 한 거야? 이 의심들은 실체 없는 불안이 된다. 나는 언젠가 혼자가 될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 그 불안과 두려움은 다시 관계 속의 빨간 불을 자꾸 상상하고 추측하게 한다. 스스로의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낸 빨간 불들을 데이터로 쌓아가며 신뢰한다. 과연 그 빨간 불은 오답이 아닐까? 그렇게 의심하고 불안해하면 나는 혼자로 남지 않는걸까? 혼자로 남겨지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면서 혼자이려고 의심하는 아이러니다. 스스로 인간관계를 힘들게 만드는게 결국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두번째 아이러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한다. 이모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항상 옆에 있는 게 아니고 나는 외동이니까 엄마랑 할머니가 없으면 세상에 혼자라고 강조한다. 이 말을 들을 때 스쳐가는 이미지가 있다. 나는 혼자 서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나는 혼자 하늘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으로 멈춰있다.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며 두 발을 쿵쿵 디뎌봐도 혼자가 된다는 건 두렵다. 나의 선택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건 좋아한다. 내 속도로 혼자 보고 싶은 걸 보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듣고 싶은 걸 듣는 시간들. 이 시간들은 무섭지 않고 많은 경우 소중하다. 내가 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와 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다 떠나고 선택할 수 없이 혼자 있어야 한다면 무섭고 슬프다.
혼자 남겨진다는 두려움과 상실로 인한 고통과 슬픔에 대한 두려움은 나에게 동의어다. 사람은 나이가 들거나, 마음이 변하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의 이유와 상황들로 나를 떠날 수 있다. 코스트코에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나이 들어서 일어날 자연스러운 상실을 상상하게 한다. 강아지 왜 안 키우냐고요? 강아지는 나보다 높은 확률로 먼저 세상을 뜨기 때문에 남겨진 내가 얼마나 슬프겠는가. 선생님도 남편도 슬픔보다 과정에서 오는 행복을 더 생각해보라고 한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올 행복보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고통의 크기가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키우지 않으면 기쁨도 없지만 오지도 않은 슬픔과 고통이 무서워서 또 다른 상실이 올지 모를 선택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내 시선은 항상 더 슬픈 쪽으로 기울어 있다. 내가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을 음미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이 날 떠날 날이 오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웃어주는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해하겠지. 오늘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들이 여전히 내 옆에 있다. 정말 무서운 건 어떤 상실이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인연을 맺고 살았으면 어느 순간에 갑작스레 감당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대견하고 대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