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게 있다. 강아지를 데려오고 3일도 안돼서 사랑에 빠졌다. 내가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하니 다들 고양이가 아니고 강아지라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나도 어쩌다 오래 노래를 부르던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랑 같이 살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게 강아지는 결국 내 마음에 본인의 자리를 만들어버렸다. 강아지의 첫 목욕과 미용을 위해 그루밍 샵에 보내 놓고 집 청소를 하다가도 강아지가 보고 싶다고 점심을 픽업하러 갔다가도 강아지 이름을 노래로 불렀다. 겨우 3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안 하던 인스타그램도 강아지의 귀여움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서 시작했다. 강아지에 이입해서 댓글을 달고 강아지 주인들이랑 강아지인 척 이야기하는 게 꽤 흥미롭고 재미나고 덕분에 손에서 인스타그램을 떼지 못하고 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강아지 인 척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는 기분이다. 혀 짧은 소리로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세상을 귀엽게 보는 척 애교도 부려본다. 큰일이다. 과연 강아지의 귀여움을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건지 잊고 있던 인스타그램의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하는 건지 스스로 참 ~ 헷갈린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방식은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거의 비슷하다. 참 그게 싫다가도 놀랍다. 강아지에게 나는 좋아하는 걸 잘해주고 싶다. 강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산책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더 신이 나는지, 간식은 뭐가 제일 맛이 있는지, 어떤 촉감의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하나씩 관찰과 추측으로 강아지의 눈빛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해석을 곁들여서 우리 강아지에 관한 목록을 작성한다. 강아지가 웃는 표정이 있다고 굳게 믿는데 정말 웃고 있는지, 과연 내 관찰과 추측이 맞을까? 강아지만 알겠지. 나는 강아지가 좋아하는 줄 알고 주는 간식도 강아지는 아무 생각 없이 주니까 먹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도 나는 네가 이걸 좋아할 거라며 추측하고 잘못된 배려를 할 때가 많았는데 강아지에게도 그런 건 아닐까 매우 걱정된다. 영양제가 너무 과한 건 아닌지, 닭고기가 너무 퍽퍽한 건 아닌지. 내가 밥과 산책을 열심히 챙겨줘도 강아지는 남편을 더 좋아한다. 꼬리도 남편이 오면 헬리콥터 같이 흔들고 남편이 나가면 풀이 팍 죽는다. 나는 또 질투한다. 아니! 내가 그렇게 잘 챙겨줬는데 왜 강아지가 너만 따라다니냐며 눈을 흘긴다. 장난반 진심반이다. 잘해줘 봤자 하나 소용없지. 일부러 밥도 간식도 몰래 더 챙겨줘 보지만 지금도 강아지는 남편의 발밑에 가있다.
강아지는 사실 개다. 사람이 아니니까 사랑도 통제도 같이 가야 한다고 한다. 나는 강아지에게 아니오라고 잘하지 못한다. 강아지에게 나 스스로에게 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강아지를 훈련시킬 때도 제대로 시킨 걸 하지 않아도 귀여워서 간식을 미리 내밀어 버린다. 강아지는 그저께부터 일하는 내 무릎에 올려주지 않으면 짖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까만 두 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결국에 무릎에 올려준다. 강아지는 입출력이 사람보다 뛰어나다. 많은 걸 입력할 수 있다기보다 이러저러한 걸 하면 간식을 내놓는구나 라는 공식으로 철저하게 움직이다. 입력을 내가 자꾸 헷갈리게 해서 오류가 난다. 멍멍 사람에게도 솔직하게 내 생각을 잘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나는 강아지에게도 마음을 강하게 먹지 못한다. 이러다 강아지가 시키는 대로 사는 건 아닐까.
열흘 동안 남편은 꾸준히 강아지의 배 둘레를 쟀다.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도 나는 상상임신일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임신을 의심했던 강아지는 정말 임신이라고 한다. 처음 병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buy 1 get 5 한 거냐며 농담을 하셨는데 현실이 되었다. 조그만 몸안에 최대 다섯 마리의 꼬물이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임신이라니. 나보다 세상을 더 빨리 살아가는 강아지 앞에서 내가 무슨 훈련을 시키고 강아지 엄마 소리를 듣겠는가. 강아지랑 같이 밥 잘 챙겨 먹고 서로 산책도 시켜주고 덜 아프고 오래 옆에 있으면 좋겠다. 배가 점점 무거운 강아지는 이제 소파로 점프도 어려워한다. 아빠가 누군지는 몰라도 강아지를 닮았다면 귀엽고 소중하고 따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