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과 노을
주로 걷다가 이따금씩 보폭을 좁게 해 러닝을 한다. 나는 마라토너가 되거나 기록 경신의 목표가 없으므로 소소하게 뛰는 중이다. 비가 멈춘 어느 날 저녁. 붉은 노을이 시야에 들어와 자꾸만 걸음까지 멈추고 저 멀리 풍경을 그저 바라보다 폰카메라까지 들게 된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땐 러닝하며 차오른 숨을 고르느라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2초 정도 힘차게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그 순간 코 끝으로 진동해 오는 바람 냄새, 비 냄새, 나무 냄새, 공기 냄새, 흙 냄새 그리고 나머지는 도시의 매연이겠지만 나는 그 찰라의 냄새에 황홀하리만치 흠뻑 빠져 순간 울컥했다가 다시금 마스크를 올리고 묵묵히 집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언젠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아무런 냄새도 느끼지 못 한채 이 길을 뛰게 될테지만 펜데믹 시대 러닝에 대한 기억과 냄새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