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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는 참 예쁘구나 Feb 19. 2016

당신의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오롯이 당신이 특별해지는 순간

Photo by 히죽히죽G

오후 2시, 마로니에 공원 앞.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리고 따뜻한 햇살. 뭘 하든지 간에 무조건 외출을 해야만 하는 그런 완벽한 날. 사람이 북적북적한 시끄럽기 그지없는 그곳에서 한 남성이 팻말 하나를 들고 서있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백칠십 안돼 보이는 작은 키에 왜소한 어깨를 가진 그 남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검은 목티와 펑퍼짐한 갈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이 턱밑에 나 있었으며 까만 피부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표정이 사회에 백만 가지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드립니다.'라는 팻말만이 그의 옆을 우두커니 지켜주었으며,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 또한 많지 않았다. 각자 자기 갈길이 바빴고, 다수가 혼자가 아닌 짝을 이루며 하하호호 수다를 떨었다. 공원의 벤치 구석구석에는 마이크 하나로 노래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타를 치는 사람도 있었으며 사람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비눗방울 공연을 하는 이도 있었다. 각각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무대가 있고 인생이 있는 그런 마로니에 공원에서 이 남자는 단지 이름을 불러준다는 말만이 적힌 허름한 팻말을 들고 서있기만 하고 있다. 그를 불러주는 이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는 어떠한 큰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꼿꼿하게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시계를 보거나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한 여자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반짝반짝 그를 바라보았다.  무서운 인상의 그가 그녀는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그녀의 인사에 그는 그녀의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눈에 비추어진 그의 눈과 이마는 그의 웃음으로 주름이 새겨졌다.

"저.. 이름을 불러주신다기에 궁금해서요. 아까부터 저기서 유심히 지켜봤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있었던 위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임주은이라고 합니다."

"아주 예쁜 이름이군요."

"감사합니다."

대화 내내 그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서로 말이 없어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제 제 이름을 아셨으니 어떻게 하실 건가요?"

여자는 그의 반응이 궁금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여자의 질문에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걸 놓치지 않던 그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 웃음을 지었다. 

"제 이름은 방관이라고 합니다."

"네? 풋-"

방관이라는 남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져버린 여자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웃겨... 아니, 흠. 정말 재밌는 이름이시네요."

여자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제 이름이 좀 특이하고 재밌긴 합니다."

그는 그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말에 재치 있게 답했다. 그와의 몇 마디 대화로 경계가 풀린 그녀가 먼저 그에게 이름을 불러달라 요청했다. 

"그래요. 방관님. 이제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 한 가지 저도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여자는 궁금한 듯 물었다.

"제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당신도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유가 뭐죠?"

그녀가 또 물었다.

"그 이유에 따른 답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그의 정중한 물음에 여자는 이내 수긍하듯이 답했다.

"좋아요. 시작하세요."


남자가 여자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임주은 씨."

남자가 내민 손을 보다가 이내 잡고는 그녀도 답했다.

"저도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방관 씨."

마주 잡은 두 손을 떼기도 전에 남자는 이어 말했다.

"주은 씨, 또한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어리둥절 했지만 그녀도 그의 말에 다시 응했다.

"저도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방관 씨"

마주 잡은 두 손이 이내 떨어지게 되었고, 그는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끝인가요?"

그녀의 질문에 그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당황스럽고 허무했다.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이런 걸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말했다.

"복잡하지 않은 답입니다. 그냥 저희가 통성명까지 한 사이가 된 것이지요. 조금 특별한."

그녀는 그의 말에 단 1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그런 어려운 말씀을... 쉽게 좀 말씀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웃으며 그가 다정히 말했다.

"아까 저도 사람들 속에서 주은 씨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가가지는 않았죠. 꽤 오랜 시간 동안 저를 바라봐주시더라고요. 놀랍게도 먼저 와주신 것 또한 주은 씨였습니다. 많은 망설임이 있었겠지만, 저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주은 씨가 큰 용기와 노력을 내주신 것이지요. 그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서로의 이름까지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야말로 특별하지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감사를 전했다. 

"주은 씨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저를 특별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주은 씨도 저를 알게 되었고, 저도 주은 씨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잠시 동안이었지만 둘 사이의 특별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서로의 이름까지 알만큼 돈독하게 말입니다. 주은 씨는 저의 첫 번째 관객이십니다. 이로써 주은 씨는 저에게 잊히지 않는 온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주은 씨의 노력으로 인해 얼마 동안은 잊히지 않게 되겠지요."


"사람의 관계에 대한 행위예술 중이셨던 거군요."

그녀의 말에 그는 웃음으로 답했다.

"제가 참 특별한 경험을 했네요. 그죠?"

"주은 씨 덕분에 저 또한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지요. 또한 제가 준비한 이벤트도 첫 성공을 했습니다."

"우아.."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로 인해 주은 씨가 느낀 그 마음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용기를 내어 저에게 다가온 그 노력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의 말을 듣던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경험을 했어요."

그녀의 말에 그는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주은 씨, 사랑하고 받을 자격은 누구에게나 다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관계가 곧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발버둥 치시길 바래요. 저에게 보인 그 용기처럼 말입니다. 저 또한 주은 씨를 만나 다행이었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웃으며 다시 한 번 그의 손을 잡았다.

"멋진 예술 보게 해주셔서, 그리고 경험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저 또한 감사했습니다."

그와 그녀가 소중해진 이 순간. 서로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그렇게 서로를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았다.


오후 2시, 마로니에 공원 앞.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리고 따뜻한 햇살. 뭘 하든지 간에 무조건 외출을 해야만 하는 그런 완벽한 날. 사람이 북적북적한 시끄럽기 그지없는 그곳에서 한 남성이 팻말 하나를 들고 서있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용기 내어 다가와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예술가가 그곳에 서있다. 사람의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자 연기를 하는 그가 그곳 서서 용기 있는 자를 기다린다. 하염없이.



작가의 말 

해보고 후회하는 게 해보지도 않고 후회는 것보다 덜 원망스럽더라고요. 사람의 관계에서 누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랐으면 합니다. 당신의 인연을 응원합니다.

사진출처: 히죽히죽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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